봉하마을에 160만 명 찾아 추모…화포천 사업 재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10일 생전에 그토록 애정을 쏟았던 고향인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지난 5월 23일 고인이 사저가 바라 보이는 봉화산 부엉이 바위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지 49일만이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봉하마을은 거대한 '울음바다'로 변했고 영결식 날까지 100만 명이 넘는 추모객이 마을에 설치된 분향소를 찾아 그의 명복을 빌었다.
영결식 이후에도 봉하마을 분향소에는 미처 분향하지 못한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모두 60만여 명이 헌화 분향했다.
'봉하 전례위원회'는 10일 오전 0시께 참여정부 인사와 비서진 등이 마지막 분향을 끝으로 철거된 봉하마을 분향소가 사상최대 조문객을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5월29일 영결식 직후 봉화산 정토원에서 거행된 49재 중 첫번째 재인 초재를 시작으로 10일 열린 마지막 재에도 참여정부 인사는 물론, 일반 추모객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졌다.
49재 의식이 열리는 날에는 한꺼번에 300~1천 명이 정토원을 찾았고 주말에는 하루 최대 1만 명이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이 모셔진 정토원 법당에서 절을 올렸다.
장의 기간 노 전 대통령의 급작스런 서거로 충격을 받은 권양숙 여사는 결국 병원신세를 졌다.
권 여사는 지난 달 8일 심신쇠약에 따른 급성 편도선염 등의 증세로 양산 부산대병원에 입원해 1주일동안 안정을 취했다.
이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의 49재 중 세번째 재인 삼재에는 병원측이 만류해 참석하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 지지자와 일반 시민들의 추모물결 속에 '고 노 전 대통령 아주 작은 비석 건립위원회'는 고인의 서거 한달만인 지난 달 23일 장지를 결정했다.
건립위는 노 전 대통령이 태어난 생가와 어린 시절 좋아했던 봉화산 사자바위, 퇴임 이후 생활했던 사저, 각별한 애정을 쏟았던 화포천, 자살한 부엉이바위까지를 볼 수 있는 봉화산 사자바위 아래를 고인이 영원한 안식을 취할 장소로 선택했다.
한마디로 '고인의 일생을 아우르는 곳'인 이 곳에 건립위는 높이는 40㎝에 불과하지만 가로, 세로 2m 정도의 너럭바위를 비석 겸 봉분으로 삼아 검소하면서도 초라하지 않은 비석을 세우기로 했다.
묘역 조성에는 전국 각지에서 기증된 돌과 모래 등을 사용해 그가 생전에 추구했던 지역균형 발전의 철학을 기렸다.
봉하 전례위원회는 노 전 대통령이 전직 국가원수이면서도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않은 첫 경우여서 참조할 만한 전례절차가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전례위측은 "장의 전반에 걸쳐 행정안전부와 유교예법 전문가, 장의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어가며 조율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고 묘역조성의 예법과 관련해 고충이 컸다"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일시 보류됐던 김해 화포천 생태공원화 사업이 장의기간에 재개됐다.
생가복원, 오리 농법 등 봉하마을 관광지 조성사업도 고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차질없이 이뤄지고 있다.
한편 장의기간에는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봉화산 부엉이바위 일대에서 경찰의 현장감식과 현장검증이 열려 고인의 서거경위에 대한 집중조사가 벌어졌다.
고가 사다리 등의 장비가 투입돼 지난달 1일 실시된 감식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쓰러진 채 발견된 지점에서 10여m 떨어진 부엉이바위 아래 2곳에서 섬유흔을 발견하기도 했다.
또 같은 달 2일 봉화산 일대에서는 경찰이 노 전 대통령과 마지막 산책에 나선 경호관을 대동해 고인의 행적을 확인했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지난 달 5일 노 전 대통령이 경호관을 정토원에 심부름 보낸 뒤 스스로 투신해 삶을 마감했다는 최종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수사를 종료했다.
(김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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