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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사람들] 돌아온 거리의 천사, '수와 진'

입력 : 2009.07.06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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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18년 만에 돌아온 수와진의 형 안상수! 안상진입니다.]

80년대 포크음악의 대표주자.

심장병어린이돕기 자선모금공연으로 친숙했던 쌍둥이 듀오, '수와진'!

1987년, '새벽아침'으로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했었다.

하지만 느닷없이 찾아온 사고로 3년 만에 활동을 접어야만 했던 비운의 형제 수와진.

[안상수(형) : 충격적이었고, 도저히 뭐. 저희들에게는 다가올 수 없는, 그런 시련이 올 줄은 정말 몰랐었고….]

숱한 좌절을 딛고 18년 만에 다시 팬들 곁으로 돌아왔다.

지난 토요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때 아닌 콘서트가 열렸다.

주인공은 쌍둥이 듀엣형제가수 '수와진'.

오랜만에 보는 그들의 모습에 사람들의 따뜻한 시선이 쏠린다.

[조민구/강서구 등촌동 : 글쎄요, 한 15년 전쯤에 한 번 봤었어요. 뭐 나이는 좀 들어뵈는데 멋있네요.]

무명시절부터 해오던 심장병어린이돕기 모금공연을 위해 주말마다 휴게소를 돌며 다시 노래한 지, 이제 한 달 반.

[안상수(형) : 1차 목표가 지금 30명. 휴게소를 통해서 30명을 수술하는 행사거든요.]

상행선은 형 상수 씨가, 하행선은 동생 상진 씨가 맡는다. 

무더위와 싸우며 7시간 동안을 쉬지도 않고, 노래하고 또 노래하면서도 그들이 행복한 이유가 있다.

형제가 다시 함께 뭉쳤기 때문이다.

[안상수(형) : 자선공연은, 둘이 같이 하는 거는 거의 19년 만이죠.]

[안상진(동생) : 다시 시작해서 좋다는 거죠 뭐. 다른 거 없어요. 그냥 좋아요.]

올해로 데뷔한 지 22년, 그러나 공백기만 무려 18년이다.

데뷔곡 '새벽아침'과 뒤이은 '파초'의 히트로 승승장구를 하던 그들에게 생각지 못했던 시련이 닥친 것이다.

[안상수(형) : 89년 1월 1일날, 딱 1월1일인데 그때 동생이 부산 후배들 만나러 여의도를 갔다가 여의도에서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해가지고 머리를 다치면서 뇌수술을 하게 됐죠. 뇌출혈이 한 군데가 아니고 여러 군데가 났기 때문에 안 죽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고 할 정도로 큰 수술이었어요.]

동생 상진 씨의 사고로 데뷔 3년 만에 그들의 가수생활은 중단됐다.

인기 최고의 자리에서 추락한 그 때가 인생의 가장 암울한 시기였다.

[안상진(동생) : 방송생활을 하다가요. 인기를 좀 얻고 있는 그 상황에서 아무것도 못한다고 생각을 하니까 뭐 사람이. 그래서 매일 술이었죠. 술마시고, 나는 이제 노래 못하는구나 하고 술마시고. 그러니까 폐인이 되더라고요.]

형 상수 씨는 솔로앨범을 내고 활동을 계속했지만 동생은 그런 형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안상진(동생) : 한마디로 야속했죠. 웬만하면 같이 할 수도 있는데, 저렇게 꼭 혼자 해야 될까. 당시의 생각이 그랬죠.]

완쾌되기까지 무려 10년이 넘게 걸린 상진 씨.

형제는 힘든 시절을 함께 겪으면서 얻은 게 더 많다.

[안상수(형) : 정말 힘이 들었고. 그런데 그것보다는 그 어려움을 통해서 다시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시간을 줬다는 것, 저희들에게.]

두 형제는 재기를 위해 녹음실에 들어섰던 그날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안상진(동생) : 19년만에 음반을 녹음 했기 때문에 감정을 몰랐어요. 녹음할 땐 몰랐는데 딱 나와서 끝마치고 식사를 하는데요. 아 왜 그래 눈물이 나던지….] 

[안상수(형) : 있어야 될 자리에 없었잖아요. 그러다가 제 자리를 찾아 돌아오고, 영원히 못 돌아올 것 같았는데 그 자리에 다시 서게 됐다는 그 어떠한 느낌이 강하게 작용한 거죠.]

이제는 어디를 가나 어느 무대에 서나 혼자가 아닌 둘이 함께다.

[안상진(동생) : 이 노래를 이렇게 부르니까 내가 진짜 있을 그 공간이다. 멜로디 나갈 때 화음 넣어주는 그게 제가 하는 역할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제 자리에 왔다는 걸 느껴요.]

[안상수(형) : 옆에 또 동생이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일단은 마음이 편하고….]

몸도 아팠지만 마음이 더 아팠던 시절.

아픔을 딛고 다시 돌아온 쌍둥이 형제 수와진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다시는 함께 할 수 없을 줄 알았던 노래를 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과 또 다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노래 할 수 있게 됐다는 기쁨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