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개성공단 입주업체 가운데 처음으로 모피가공업체인 스킨넷이 공단 철수를 완료했습니다.
SBS 경제부에서 '개성공단' 부문 취재 책임을 맡고 있는 저는 서울 구로에 있는 스킨넷 본사를 찾아가 김용구 스킨넷 대표에게 그동안 못다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김 사장은 언론에 '첫 철수 업체'라면서 대서특필되자, 그동안 끊겼던 바이어들의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며, 오히려 인터뷰 요청을 반길 정도였습니다.
[김용구/스킨넷 사장 : 하지 못한 얘기가 많습니다. 일단 개성공단은 사업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신변위협의 공포가 너무 심하거든요. 그런데 언론 인터뷰에서 이 얘기 했다고 북측 총국 간부가 다음날 개성에 있는 공장에 찾아왔습니다.]
김 사장에 따르면 총국의 이 간부는 공장에서 고성을 질렀다고 합니다.
[김용구/스킨넷 사장 : 철수 요청서에는 '주문감소'를 사유로 적었는데, 한국 언론에는 '신변 안전'을 사유로 밝혔다며 따졌어요. 당장서울에 있는 사장한테 전화 걸어라. 분위기가 험악해져서 일단 개성에 있는 우리 직원에게 한국 언론이 과장 보도를 했다고 변명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다음날 이 간부는 다시 공장을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기자회견을 다시 열어 정정보도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김용구/스킨넷 사장 : 왜 남측언론에서는 신변안전 때문에 철수했다고 자꾸 얘기하느냐, 남측 기업이 안 들어오지 않느냐, 언론에 가서 얘기를 해서 신변안전이라는 말은 삭제를 해달라….]
정정보도는 일반적으로 기자회견이 아닌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타당한 이유가 있을 때나 언론중재 위원회를 통해 요청하게 돼 있는 남측 시스템을 잘 모르는데서 비롯된 행동으로 추정되는 데요,
어쨌든 사족을 치우고, 이런 북측의 태도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전문가의 자문을 구해보기로 했습니다.
[조봉현 연구위원/기은경제연구소 : 지도총국의 고위 관계자가 그러한 행동을 보인 것은 평양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평양에서도 매우 당황해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총국, 즉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이라 해서 개성공단의 북측 관리기구를 말하는데요, 사실상 정치적 실권은 전혀 없고, 개성공단에 관한 경제적, 행정적 처리를 담당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나름, 북측 기관 치고 시장경제에 익숙한 편이지만, 남측 언론보도에 대한 반응 같은 정치적 대응은 평양의 직접지시를 받는다는게 북측 전문가들의 분석 결과입니다.
따라서 총국이 예민하게 반응했다는 것은, 평양이 예민하게 반응한 것이고, 그만큼 개성공단에서 우리기업들의 철수가 이어질까봐 걱정하고 있다는 반증도 된다는 것이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에 의해 경제적 수익원이 매말라 버린 북측이, 매년 3천만달러의 고정수익을 보장하는 개성공단에서 기업들의 연쇄 철수 사태가 빚어질까봐 당황해했다는 해석이죠.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그나마 긍정적인 신호가 감지된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A 입주업체 : 일단 북측이 철수 도미노 사태 같은 것은 바라지 않는다는 긍정적인 신호인 것 같네요.]
스킨넷은 이런 북측의 예민한(?) 심기를 건드린 탓인지 몰라도, 마지막날 봉변(?)을 당했다고 합니다.
직원 한 명이 마지막까지 남아 회사 짐을 정리하고 총국에 1년7개월치 퇴직금 9천6백달러를 전달하고 빠져나오려 했는데요,
총국은 "우리는 1년 7개월은 2년으로 간주한다"며 2년치를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고 하네요.
또 마지막 불만 섞인 으름장도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총을 들이댔냐. 칼을 들이댔냐. 왜 신변안전 얘기가 자꾸 언론에서 나오냐"
이 직원은 결국 3백달러를 다음날 다른 업체 직원을 통해 보내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개성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게 김용구 사장의 진술입니다.
사실 개성공단에 대한 취재를 이어오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북측이 좀더 '돈'의 관점에서 이해를 했으면 하는 부분입니다.
김용구 사장 뿐만 아니라 다른 입주업체 사장들을 만나 보면, 대부분 애초에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요즘과 같은 사태의 책임이 남측 정부에도 상당부분 있다는 입장이고 가급적 사업의 공간을 제공해주고 있는 북측에 대해 꼭 '우호적'인 것은 아니라도 상당히 이해를 해주려는 태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일종의 상거래에서 불문율이 되는 '역지사지'의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신변안전'과 '돈'에 대한 북측의 태도는 이런 기업들마저 등을 돌리게 하고 있습니다.
업체 사장들이 '신변안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꼭 무서워서 그러는건 아닙니다.
현대 아산 직원 유모씨 억류사태와 지난 3월 통행차단에 의한 일시 직원 고립 사건 등으로 인해 남측 직원들이 불안해 하며 개성에 머무르기를 꺼려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것보다는 일단 바이어들이 더욱 사시나무 떨 듯이 떠는게 심각한 문제입니다.
삼성, LG 등 대기업 바이어들과 이들에게 OEM상품을 공급하는 입주업체들에겐 '납기'가 생명보다 더 중요한데, '신변안전'으로 대표되는 불확실성이 등장하게 되면 납기가 지켜지지 않을까봐 불안해진 바이어들이 주문을 취소하게 되는 것입니다.
'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꼭 자본주의적 상거래 관행이 아니라 할지라도, 전통적인 관점에서 일방의 계약 파기, 변경은 양자간 신뢰를 일시에 허물어버릴 수 있습니다.
임금, 토지사용료 등은 이미 계약이 끝난 상황이고, 입주업체들은 북측이 말하는 계약을 변경해야 할 환경변화에 어떠한 기여도 한 바가 없습니다.
따라서 남측 정부가 잘못했다 하여, 입주업체들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것은 옳은 '상도'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북측에게는 '합숙소 건립 약속이행', '개성공단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 보장' 등의 새로운 과실을 요구하는 전략이 상식적으로나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서나 합당할 것입니다.
개성을 떠난 스킨넷은 지난 1년 7개월간 1억8천만원을 개성에 투자했습니다.
물론 개성에서 거둔 이익이 썩 만족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중국 생산기지에서 물품을 가지고 남측으로 들어올때와 달리 관세 면제 혜택이 주어지는 덕에 최종적으로는 3억원 흑자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북측이 영업환경을 개선해줘 3억원이 10억원이 됐다면 이 업체가 철수를 고려했을까요?
10억원을 벌었다면 북측의 임금 인상 요구에 응하지 못할 것도 없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남아있는 대부분의 업체들은 스킨넷 보다 못한 실적에 허덕이고 있지만, 아직 몽땅 희망을 잃어버린 것은 아닙니다.
물론 북측 입장에서야 정치적인 불만을 피력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입주업체들에게 만큼은 정치와 상관 없이 다시 희망을 돌려주는 것이 업체들을 위해서나 북측을 위해서나그리고 민족을 위해서나 합당한 처사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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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김형주 기자는 현재 경제부에서 노동부를 출입하고 있습니다. 2004년 공채로 입사한 김기자는 이전에는 사회2부 사건팀에서 활약했습니다. 훤칠한 키에 핸섬한 외모로 인기가 많은 그는 취재현장에서 만난 인간 군상들과 사회 부조리 등 보고 느낀 많은 것들을 담은 개인 블로그도 운영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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