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콩을 들다 (감독: 박건용, 주연: 이범수, 조안, 전체관람가)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에서 감동을 주는 명장면들이 많이 나왔었는데 그 가운데 비인기종목의 대표 격인 역도에서 장미란 선수와 부상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투혼을 보여준 이배영 선수가 인상적이었죠. 장미란 선수는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챔피언의 몸매 5인' 가운데 한명으로 선정되기도 했죠.
모두 살빼기에 미쳐 S라인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 기록향상을 위해 살을 찌워야하는 것을 포함해 고된 훈련 등 정말 아무나 할 수 없는 길을 가는 그 모습이 아름다웠고,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에도 무뚝뚝하다가 세계 신기록을 깨고 나서 환한 웃음으로 좋아하던 얼굴이 참 예뻤습니다.
[킹콩을 들다]는 역도를 소재로 한 또 하나의 [우생순] 신화를 노리는 스포츠 영화입니다.
올림픽 금메달을 통해 인생역전을 노리며 피나는 노력을 해온 이지봉은 88년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이 유력했지만 막판 부상으로 아쉽게 동메달에 그치고 선수 생활도 마감하게 됩니다. 나이트클럽 웨이터 등으로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다가 스승의 도움으로 전남 보성의 한 여자중학교에 새로 창설되는 역도부 감독을 맡아 내려오지만 대충 선수들 뽑아놓고 형식만 갖춰놓고 본인은 정작 낚시나 하러 돌아다닙니다.
하지만 역도부에 들어온 아이들은 제각기 뚜렷한 이유가 있고, 그 가운데 영자(조안)는 가난한 살림에 유일한 혈육인 할머니마저 저 세상으로 떠나보냅니다. 그러다가 선생은 아이들의 열정에 감동하고 열심히 운동하고 보살펴 훌륭한 역도선수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전형적인 스포츠 멜로, 아니 스포츠 신파 영화입니다. 요즘에도 이런 방식의 전개도 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아예 작정하고 투박하게 영화가 전개됩니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어느 부분에서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흐르더군요. 이 영화의 소재와 주제가 보편적이어서 남녀노소 두루 감동을 주는 측면이 있습니다. 초반 전개는 산뜻합니다.
학생 역을 맡은 배우들의 앙상블도 좋고요. 꿈 많고 엉뚱한 소녀들의 모습이 귀엽습니다. 이범수도 연륜과 연기력으로 중심을 잘 잡아나갑니다. 우현, 박준금 등 조연들의 감초 연기도 좋습니다. 특히 두세 달 집중 연습을 통해 역도를 익혔다는 어린 배우들의 연습이나 경기 장면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완성도에서는 여러 부분에서 아쉬움이 느껴집니다. 이지봉 코치가 영자와 첫 만남의 무뚝뚝함에서 두 번째 만나는 장면(배고픔에 못 이겨 남긴 우유를 몰래 먹다가 걸리는 장면)에서 밥을 같이 먹자고 하는 따뜻함으로의 전환이 어색합니다. 중간 단계나 계기 부분이 편집에서 잘려나간 것인지 너무 급작스럽게 마음을 여는 부분에서 영 어색하더군요.
또 후반부의 신파도 조금만 수위를 낮췄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입니다. 슬퍼서 울고 맞으면서 우는 소녀들의 울음 소리가 너무 빈발하다보니 슬쩍 짜증이 날 정도더군요. 소녀들의 공동의 적인 중앙여고 코치의 악랄한 폭력에 대한 반작용으로 관객의 감정이입을 이끌어내는데 이 인물도 좀 더 입체적으로 묘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고요.
전체적으로 러닝타임이 길게 느껴지는데 이를 줄이면서 전반부의 다양한 에피소드의 비중을 좀 늘리고 후반부의 신파의 길이와 강도를 줄였더라면 좀 더 깔끔하면서도 강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을텐데하는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난한 시골소녀들이 남자들도 하기 어려운 역도라는 운동을 선택해 꿈을 펼쳐보려 하고, 실패한 인생이라고 낙심한 퇴물 역도선수가 이들의 진정한 스승이자 부모로 나서며 역경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는 감동을 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무엇엔가 미쳐서 고통을 참아나가며 몰두할 때 아름다워 보이니까요.
특히 요즘 어려운 경제상황 때문에 낙담하고 힘들어하는 분들이 보신다면 조금이나마 위안과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지봉 코치가 학생들에게 해주는 말에서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곱씹어볼만한 명대사들이 몇 개 나옵니다.
역도 이야기인데 제목에 왜 킹콩이 등장하는지 궁금했었는데 영화를 보고나니 제목의 의미가 깊으면서 슬프더군요. (*뚱뚱하다고 학교에서 왕따 당하지만 꽃미남 교회 오빠와 애틋한 로맨스를 키워가는 '빵순이' 현정을 연기한 전보미 양은 돌아가신 탤런트 전 운 씨의 손녀랍니다. 그러고 보니 체구가 할아버지와 비슷하네요. 배역을 위해 평소보다 15킬로그램을 찌웠다고 하네요. 연기 순발력도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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