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형 존엄사'은 오래전부터 있었다…가족들 치료비 감당못해 어쩔수 없이 시행
대법원이 지난달에야 회생 불가능한 환자의 연명 치료를 중단하도록 하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존엄사가 합법화된 가운데 이미 '생계형' 존엄사는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뒷얘기가 나오고 있다.
25일 의료계에 따르면 뇌사에 가까운 상태에 놓인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생명을 연장할 경우 치솟는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가족들이 어쩔 수 없이 존엄사를 시행한다는 것이다.
대형종합병원이 아닌 규모가 작고 윤리위원회가 없는 등 법률적 지식이 부족한 지역병원에서 보호자가 강력히 요구하면 환자를 집으로 보낸 뒤 보호자의 판단에 따라 호흡기를 떼는 방법이다.
물론 이 경우 살인 또는 살인방조 등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지만 제3자의 고발이 없는 한 경찰이 인지해서 처벌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의 존엄사가 음성적으로 이뤄져 왔다.
실제로 10여년 전 한 대학병원에서 한 달 가까이 치료를 받다 '뇌사' 판정을 받은 한 남성 환자의 가족은 병원 측과 협의를 거쳐 환자를 지방의 소형 종합병원으로 옮긴 뒤 곧바로 집으로 데려와 호흡기를 뗐다는 것이 의료계 한 관계자의 전언이다.
가족들은 호흡기를 떼는 즉시 사망할 것으로 판단하고 장례준비를 했지만, 이 환자는 최근 공식적 존엄사가 시행된 김모(77) 할머니처럼 호흡기를 뗀 이후에도 열흘 넘게 생존했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수차례에 걸친 암 수술로 회복이 불가능해진 90대 남성 환자의 링거줄에 약물을 투입해 사망에 이르게 한 '적극적 존엄사'가 있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당시 환자 가족에게 들었다는 한 시민은 "가족들이 담당의사에게 무릎을 꿇다시피 하며 존엄사를 요구했고, 의사는 어린 손자까지 포함한 가족 전체에게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고 존엄사를 시행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서울시내 보건소에서 일하는 한 공중보건의는 "의사가 살인방조 판결을 받은 '보라매병원 사건'이후 의사들이 존엄사를 꺼리게 됐지만 지금도 개의치 않고 뇌사 상태의 환자를 퇴원시키는 병원이 꽤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연합의 한 관계자도 "존엄사법을 입법청원하기 위해 의사들을 상대로 조사를 했는데 비공식 존엄사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회복할 수 없는 환자의 호흡기를 떼어내는 것만이 존엄사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자연 치유되지 못하고 조만간 사망할 것이 충분히 예견되는 병에 걸린 환자가 병원치료를 거부하고 집에서 투병하다 자연사하는 경우다.
지난해 8월에 숨진 박모(당시 64세)씨는 2005년 식도암 판정을 받아 수술까지 했지만 2007년 말 암이 재발했다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권유받았지만 "더는 현대의술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하고 싶지 않다"며 병원을 떠났고 결국 집에서 죽음을 맞았다.
박씨의 부인(60)은 "넓게 보면 남편 같은 경우도 존엄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온갖 검사와 치료, 수술 등을 받으며 구차하게 생명을 유지하느니 당당하게 죽겠다는 것이 고인의 뜻이었으며, 결국 큰 고통 없이 편안하게 가셨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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