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목요일에 서울중앙지검은 PD수첩 수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조능희 CP 등 제작진 5명을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표적 수사"라는 MBC측 주장과 "의도적인 왜곡 방송은 처벌 대상"이라는 검찰측 주장은, 언론의 자유에 대한 진지하고 냉정한 논쟁이라기보단, 벌써 우리 사회의 이념적 소용돌이 속에 푸욱~ 담궈진 느낌입니다.
헌법적 가치에 대한 무거운 얘기는 별론으로 하고, PD수첩 수사발표 이후 검찰청에서 벌어진 일화를 소개할까합니다.
수사 결과 당일 발표문 내용 중에 개인적으로 단연 관심을 끌었던 내용은 PD수첩 제작에 참여한 김모 작가의 개인 이메일을 공개한 부분입니다.
검찰은 "PD수첩의 왜곡방송 의도를 추정할 수 있는 증거"라고 발표했지만, 개인적으론 그야말로 검찰이 '괜한 짓'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D수첩과 같은 시사보도 프로그램인 SBS 뉴스추적에서 일했던 경험으로 비춰볼 때, 책임 CP도 아닌, 담당 PD도 아닌, 단지 프리랜서 작가의 개인 메일로 프로그램 제작 의도를 추정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또 향후 예상되는 사태가 눈에 선한데도, 굳이 이메일을 공개한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역시 신문들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춤추듯 기사를 써 댔고, 이메일 당사자 김 작가는 검찰 수사팀과 특정 신문사를 형사고소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쉽게 예상됐던 수순인데, 이 다음에 보여준 검찰의 대응은 '괜한 짓'을 너머 '이해할 수 없는 짓' 수준이었습니다.
수사 결과 발표 다음날인 19일 오후 4시쯤,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검찰청 현관 앞에 한국방송작가협회 소속 작가 40명쯤이 모였습니다.
검찰이 김 작가의 이메일을 공개한 것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함과 동시에, 서울중앙지검 출입기자단과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모인 겁니다.
40여명이 기자회견 오는데 그냥 올 수 있겠습니까? 자신들을 취재하는 카메라가 즐비할텐데 당연히 뭐라도 준비해야겠죠? 이들은 검찰 수사를 비판하는 내용이 적힌 종이피켓을 준비했더군요.
그리고는 정치검찰을 규탄한다는 구호 3번 정도 외쳤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이제 이들 중 대표자 몇명이 검찰청 현관을 통해 기자실로 들어가 기자회견을 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참고로 서울중앙지검 기자실은 검찰청 청사 1층에 있습니다. 출입기자들은 패스를 갖고 있어 출입이 자유롭지만, 일반 민원인들은 1층 현관에서 출입증을 발급받아 들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기자실에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검찰이 기자실 출입을 막은겁니다.
출입 기자들도 "기자실 출입을 막는 경우가 어디있냐"며 서울중앙지검 간부들에게 따졌지만, 검찰은 요지부동입니다.
이들의 기자실 출입을 막은 검찰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작가들이 예고도 없이 검찰청 현관 앞에서 불법 집회를 했다는 겁니다.
불법 집회를 한 사람들을 검찰청 안으로 들여보낼 수 없는 만큼, 검찰은 이들의 기자실 출입을 막는 게 아니라 검찰청 출입을 막는다는 겁니다.
기자는 이 소릴 듣고 크게 웃었습니다.
어이 없어 웃었습니다. 기가막힌 논리에 웃었습니다. 말문이 막혀 웃었습니다.
검사님들, 검찰청에 고소장 내러온 사람들이 종이피켓 들고 구호 세번 외친 걸 정말 이걸 불법집회라고 생각하신단 말입니까?
혹시 검사님들 고소하러 온 것에 빈정이 상한신게 아닌가요?
검사님들, 정말 왜 이러세요?
추가 : 헉..이 일이 있은 지 사흘만에 기자실 출입을 막은 총 책임자분이 검찰총장에 내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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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법조팀의 현장 반장으로 맹활약 중인 정성엽 기자는 2002년에 SBS로 둥지를 옮겨 사회부 검찰 출입기자와 정치부, 뉴스추적팀 등에서 취재력을 과시해왔습니다. '제대로 정확히 보고 쓴다'는 좌우명을 가진 정기자는 최근에는 삼성그룹 후계자인 이재용씨의 이혼소송 사실을 발빠르게 취재, 특종보도해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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