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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반두비 - 당당한 당돌함

남상석

입력 : 2009.06.19 15:48


남상석의 영화이야기[반두비]는 신동일 감독이 지난 2005년 [방문자]와 2006년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 이어 세 번째로 내놓는 장편영화입니다.

외국인 이주노동자와 여고생의 뜨거운 우정과 풋풋한 로맨스를 다뤘는데요.

'반두비'는 벵골어로 '참 좋은 친구'를 뜻하는 말이랍니다.

영화가 세인의 입에 오르내린 것은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영등위)가 내린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판정 파문 때문인데요.

영등위는 지난 5월 21일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내렸고 제작사측은 15세 관람가로 재심의를 요청했는데 영등위 전체회의에서 다수결을 통해 결국 청소년 관람불가로 결론이 났습니다.

이에 대해 제작사와 감독 측은 청소년 성장드라마로 청소년들이 꼭 봤으면 하는 영화인데 안타깝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등급 분류 이유로 여고생이 퇴폐마사지업소에서 일하는 장면 등의 묘사가 적나라하고, 욕설과 비속어가 많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인데요.

영화사측과 영화계 인사들은 속사정으로 현 정부와 특정 언론에 대한 비판과 야유가 더 거슬렸기 때문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여고생 민서(백진희)는 노래방을 하는 엄마(이일화)와 엄마의 남편이지만 아빠로 인정하지 않는 약간 한심한 백수 기홍(박혁권)과 함께 사는데 학원비 마련을 위해 주유소 알바 등 힘겹게 '뺑이' 치고 있습니다. 효과 만점이라는 원어민 영어 학원을 다니기 위해서죠.

그러던 어느 날 버스 안에서 방글라데시 출신의 이주 노동자 카림(마붑 알엄)을 만나게 되고 엮이게 되는데, 카림은 고용허가 기간이 만료되고 있지만, 뼈 빠지게 일한 공장 사장이 고의부도를 내버리는 바람에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경에 빠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버스 옆자리에 앉지도 않던 민서는 카림을 알아가며 우정을 느끼고, 이 우정은 점점 더 발전하게 되는데 주변의 편견과 맞서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영화 곳곳에 은밀하게 혹은 노골적으로현 정권과 기득권층에 대한 야유와 비난이 장치되어 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김이 빠질 것 같아 언급 안하는데 참 재미있고 웃기고 어떤 부분은 후련하기까지 합니다.

아마 이런 장치들 때문에 심위위원들께서 이 영화를 청소년들에게 절대 보여줘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촛불소녀'가 이런 애들일 것이라며 공포감까지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에게는 '호러영화'?)

백진희가 연기한 민서 캐릭터는 참 흥미롭습니다. 고등학생답지 않게 당당하고 때로는 당돌하기까지 하고, 어른들이 못하는 일까지 저질러 대리만족을 안겨주는데 보면 볼수록 귀엽고 예쁩니다.

특히 엄마의 남편에게 쏘아붙이는 독설은 정말 갈 데까지 가더군요. 기홍의 캐릭터가 조금만 소심했더라면 아마 유서를 남기고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났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민서 캐릭터는 얼핏 [주노]의 여주인공을 연기했던 엘렌 페이지를 연상시키더군요.

하지만 주노보다는 말수가 훨씬 적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황소의 뿔을 뽑으러 그냥 뚜벅뚜벅 걸어가던 최영의 선생님'처럼 영어강사를 응징하고 악덕 사장 집에 들어가 소동을 벌일 때 민서의 걷는 모습은 프로그래밍된 데로 행동하고 제거하는 무서운 여자 터미네이터가 주는 오싹함이 느껴집니다.

선진국 출신으로 영어강사를 하며 태껸을 배우고 '스위트'한 한국 여자들과 데이트를 즐기는 미국인과 밤낮으로 일하느라 취미도 여가도 즐기지 못하는 카림을 대비시킨다거나, 깜깜한 밤 바닷가에서 "나는 그냥 행복해지고 싶었어."라는 카림의 절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고, 카림과의 우정과 애정을 쌓아나가는 민서의 계산하지 않는 순수한 당돌함이 싱그럽습니다.

적은 예산으로 찍은 저예산 영화라 그런지, 감독의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장면 전환 시 툭툭 끊기는 거친 느낌이 드는데 자주 반복되다보니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을 빼고는 소녀의 당돌한 태도와 우리 사회 안에 들어와 있는 이주 노동자들을 우리는 항상 바깥으로 착각하고 있지 않나 하는 자성의 기회를 제공하는 볼만한 영화입니다.

더불어 인간의, 인간 사이의 보편적 공통성을 우리 사회의 특수성에 녹여 넣어 성찰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신동일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봅니다.

(영화 마지막 부분쯤에 감독이 예상치 못한 배역으로 카메오 출연을 하는데, 연기는 다소 어색하더군요.^^, 반면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로 잘 알려진 양해훈 감독이 연기한 주유소 사장 아들 연기는 훌륭합니다.)

  [편집자주] '영화를 보는 편안한 시선'  남상석 기자는 2002년부터 영화계를 출입해 온 베테랑 문화 담당 기자입니다.  1993년  공채로 입사해 사회부와 정치부 등을 거쳐 오랜 기간 보도국 문화부에서 내공있는 필력을 과시해 왔습니다. 영화와 영화인들을 좋아하며  '평론가처럼 어렵지 않은.. 관객의 한사람 같은 친근한 눈높이의 영화평'으로 개인 블로그도 큰 반향을 얻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