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이 차리고 부녀자들이 친 4억원대 '도리짓고땡 줄도박'
고니와 휘발유의 결정적 차이
'사는 게 예술이다.' 영화 <타짜> 속 어느 플롯의 제목입니다. 영화 초반 96년 서울 근교 야산엔 타짜 곽철용이 차린 하우스도박장이 등장합니다. 타짜 고니(조승우)는 동료 고광렬(유해진)과 함께 그 도박장을 찾습니다. 그에게 손해를 입히면 그의 친구이자 악명 높은 타짜 아귀(김윤석)를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죠. 곽철용에게 고용된 타짜 박무석과 절체절명의 한 판이 벌어지고, 고니가 큰돈을 따는 바로 그 순간, 경찰이 들이닥칩니다. 하지만 고니 일행은 도박장이 있는 언덕 아래, 분주한 불빛이 춤추는 서울의 야경을 향해 유유히 도망칩니다.
최동훈 감독을 스타감독으로 만든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에도, 하우스 도박장면이 등장합니다. 영화 초반부 교통사고가 나면서 검거된 뒤, 경찰에게 진술하는 형식으로 영화 속 스토리텔러 역할을 하는 얼매(이문식)를 기억하시죠? 한국은행을 턴 다른 일당을 쫓는 차반장(천호진)은 얼매를 일부러 풀어주고 뒤쫓는 검거기법을 쓰는데요. 얼매는 그의 예상대로 휘발유(김상호)가 있는 도박장을 찾아갑니다. 결국 뒤를 쫓던 경찰이 도박장을 덮치고, 휘발유는 비닐하우스를 대여섯 개나 뚫는 괴력으로 도주극을 펼쳐보지만, 결국 차반장의 손에 붙잡힙니다.
고니는 도망쳤는데, 휘발유는 왜 잡힌 걸까요? 휘발유가 찾았던 도박장엔, 입구에서 단속 경찰을 감시하는 '문방'이 없었던 게 틀림없습니다.
▲ 영화 <타짜>의 한 장면
'문방'을 뚫어라
한 달 전 쯤 경기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상습도박판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타짜> 처럼 완벽한 역할 분담을 해서, 지난해 11월부터 대형 도박판을 벌이고도 경찰단속을 피해온 조직이 있다는 거였죠. 군산 백학관파라는 조폭들이 경기도로 원정을 와서, 수원 남문, 역전파 조폭과 손잡고 도박 사업을 벌인 다는게 첩보의 개요였죠. 인구가 많다보니 상습 도박에 빠진 주부도 많았다는 게 수도권을 '원정지'로 택한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이들 조직. 반 년 가까이 경찰 단속을 요리조리 피해왔습니다. 도박조직 입장에선, 앞서 말씀드린 '문방'을 잘 키운 덕이었죠.
단속을 피하기 위한 조건은 크게 두 가집니다. 경찰에 붙잡힌 일당 총책 가운데 1명은 첫 째 조건으로 도박장의 '입지'를 꼽았습니다. 그는 저녁이면 인적이 끊기는 외진 야산만을 골라 도박장을 차렸습니다. 그 중에서도 진입로가 딱 하나뿐인 곳에만 천막을 쳤습니다. 다음 조건은 바로 잘 훈련된 '문방'. 하나 뿐인 진입로에 '문방' 서너 명만 잘 배치해두면, 단속이 와도 도주할 시간을 벌 수가 있는거였죠.
문방은 도박판이 열리기 전엔 먼저, 도박꾼 수송책의 역할을 합니다. 도박꾼을 차로 천막에 실어주고 나면, 야산 어귀로 나와 차를 주차해 놓고 경찰 단속을 감시합니다. 3~4명이 진입로 곳곳에 일정한 간격으로 서서, 무전을 주고받으며 근무를 한다죠. 경찰이 나타나면 차를 세워두고 무전을 친 뒤에 야산으로 달아납니다. 마지막 문방이 있는 곳으로부터 도박장 까지는, 뛰어가도 1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인 탓에 도박장에 경찰이 도착할 때 쯤 그곳엔 아무도 없는 상황이 연출되는 겁니다.
이들의 검거를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하던 경기경찰청 광역수사대 폭력팀은, 이달 초 경기도 화성의 한 야산을 덮치게 됩니다. 하룻밤에 65명의 형사가 투입돼, 거의 60명을 1:1로 붙잡았죠. 그 전에 정보원이 잠입해 찍어둔 동영상도 언론에 공개되면서 방송 3사 모두 이 사건을 보도했죠. 입지와 문방을 이용한 치밀한 은폐 수법. 어떻게 '일망타진'은 가능했던 걸까요?
첩보를 받은 형사들은 도박이 열렸다는 야산 공터들을 일단 둘러봅니다. 돈뭉치를 만드는 데 쓴 노란 고무밴드가 수북한 곳일수록 큰 판이 열린 곳이었다고 추정을 합니다. 이렇게 한 곳을 골라 다시 도박판이 열리길 기다랍니다. 하지만, 수십 명의 형사들이 야산에서 숙영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도박판이 열린다면 결국 어딘가에서 출동을 해야 만합니다. 이 때 앞서 말씀드린 '문방'을 따돌리지 못한다면 눈앞에서 허탕을 칠 수밖에 없죠.
이런 딜레마의 답을 찾은 사람은, 일선 당당형사 차민석 경사였습니다. 그는 문방을 따돌리기 위해 샛길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죠. 마지막 문방 뒤쪽으로 바로 들어가면, 도박에 정신팔릴 사람들은 꼼짝없이 쇠고랑을 채울 수 있다는 계산이었죠. 결국 형사 수십 명이 톱으로 낫으로 수풀을 쳐서, 도박장으로 직행하는 '검거용 지름길'을 만들게 됐죠. 검거 작전은 성공이었습니다. 도박꾼들은 무전소리 한 번 못 듣고 사방에서 나타난 경찰에게 붙잡혔습니다.
경찰에 붙잡힌 어느 총책은 "그날따라 이상하게 무전이 안 울렸다"고 하더군요. '고니'를 꿈꿨지만, '휘발유'가 됐다고나 할까요?
▲ 지난 3월, 경기도 용인시 한 야산에 차려진 실제 도박장 (경기경찰청 제공)
도박조직의 수익구조 = 분업 + 수수료
도박판을 운영한 조폭들은 경기도 수원과 용인, 화성 등지를 돌면서 10차례 넘게 대형천막을 치고 도박꾼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발전기와 환풍기까지 동원해 큰 판을 벌였죠. 모이는 방식부터 머리를 많이 썼습니다. 천안이나 인천, 서울에서 부녀자들을 승합차로 이동시켜 도심 장례식장 처럼 큰 주차장에 1차 집결을 시킵니다. 그리곤 실제 도박이 벌어지는 야산 깊은 곳으로 2차 이동을 하는 식이었죠. 이렇게 적게는 30명, 많게는 150명이 가로 10미터 세로 5미터짜리 천막에 모여 '도리짓고땡 줄도박'을 했습니다.
게임이 시작되면 운영자 가운데 '딜러'라는 스태프가 네 가지 패를 만듭니다. 하나는 '총책'이라는 운영자에게 주죠. (이 때 밑장빼기 같은 기술을 써서 판을 조작하기도 하는데요. 타짜들이 딜러로 고용돼 조작을 한다면, 영화처럼 사기도박을 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검거된 조직엔 타짜가 없었다고 해요.) 그리고 나머지 도박꾼들이 고르도록 세 가지 패를 만듭니다.
이른바 '줄도박'에선 <타짜>에 나오는 것 처럼, 100미터 달리기 경기장처럼 트랙을 만들어서 그 곳에 돈을 던지도록 돼 있죠. 그 중에 '찍새'라는 스태프가 패를 고르면, 거기에 사람들은 직접 돈을 던져서 배팅을 하는거죠. 배팅이 끝나면 '상치기'라는 또 다른 운영진이 등장해 배팅내용과 액수를 확인하고, 돈을 걷어갑니다. 그리고 다섯 장의 패 중에서 10또는 20까지 4장으로 짝을 맞춘 뒤, 남은 한 장의 끝 수를 갖고 겨루는 겁니다. 이렇게 총책과 겨뤄서 돈을 따거나, 잃는 식인 거죠.
근데 왜 이렇게까지 역할이 세분화 된 걸까요? 모든 역할이 사실, 게임 진행비용을 징수하기 위한 아이템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찍새, 상치기 등등 스태프들은 총책이 아닌 도박꾼이 승리하면 일정한 수수료를 뗍니다. 보통 한번 판을 열면 저녁 8시쯤부터 새벽 5시까지 100번은 족히 게임을 합니다. 이렇게 '회전'이 빠르니, 10차례 남짓 도박판이 벌였는데도 오간 판돈만 4억 원에 가까웠습니다.
매 게임마다 누군가는 이길 테니, 조폭들은 수수료 수익만 하루 천만 원 넘게 챙긴다고 하죠. 도박판의 수익 창출구조는 바로, 세분화된 역할과 구체적으로 징수항목이 명시된 수수료였던 거죠. 여기에 돈 잃은 사람에게 5% 선이자를 떼고 돈을 빌려주는 '꽁지'나, 라면 또는 커피를 무조건 만 원에 받고 파는 '박카스'도 이들에겐 무시 못 할 수익원이었습니다.
앙심을 잠재우기 위하여
그런데 애초에 도박판이 있다는 첩보는 누가 준걸까요? 이 도박판에서 크게 돈을 잃은 누군가일 거라는 생각, 다들 하실 겁니다. '앙심'은 때때로 훌륭한 수사 첩보가 되는 셈이죠.
도박판 운영 조직도 누군가의 '앙심'이 쌓이면, 공멸이 온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도발을 막으려면 회유를 해야겠죠. 돈을 모두 잃는 사람이 생기면, 그들은 대출책 '꽁지'의 즉석 대출로 이들을 달랩니다. <타짜>에서 부인 병원비를 탕진하고도, '개평'을 들고 다시 도박을 하러가던 대학교수를 기억하시나요? 돈을 잃은 도박꾼들이 '한탕심리'와 '신고의식' 사이를 오갈 때마다, 무한한 '신용'으로 거부하기 힘든 유혹을 하는 거죠. 또 한가지 피할 수 없는 규칙. 도박판이 끝나기 전엔 하산을 할 수 없다는 규칙도 있죠. 가진 돈을 모두 잃어도 그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판이 끝나면 신고를 해도 소용이 없죠. 운영자들은 도박꾼들에게 하산규정을 두고 미리 약속을 받아놓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검거된 사람들을 보니, 90%는 가정주부였습니다. 대부분 도박 전과를 가진터라, 경찰은 이들을 상습범으로 분류했습니다. 주부들은 보통 서로를 누구 엄마로 부르곤 하죠. 도박으로만 만나다보니 아예 서로의 실명은 모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경찰도 피의자 신문조서를 쓰는 내내, 확인을 해야 했다며 애로사항을 토로했습니다. 누구엄마가 누구 씨가 맞는지 자꾸 물어봐야 했으니까요.
말씀드렸듯이 이번 사건엔, 영화에 등장하는 ‘타짜’는 없었습니다. 사기도박은 아니었던 거죠. 게임미다 총책과 도박꾼의 배짱대결이 자주 펼쳐졌습니다. 심지어 ‘총책’도 가진 돈을 모두 잃는 웃지 못 할 게임도 허다했다더군요. 하지만 그 천막에서 밤을 샌 사람 모두, ‘타짜’만큼 거대한 수익을 노렸던 건 사실입니다. 압수품 가운데는 도박꾼이 현장에서 만든 승패확률 통계표까지 있었습니다. 통계표 주인은 해가 뜬 뒤에 현금 뭉치를 두 손에 들고 하산하는 자기의 모습을 상상했을지도 모릅니다.
운영조직은 도박꾼들에게 늘 단속은 불가능하다고 홍보를 했습니다. 하지만, 도박판이 10번을 넘길 즈음 이들 대부분이 검거됐습니다. 이 날 도박장에 없었던 사람도 입건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붙잡힐 가능성이 큽니다.
도박이 흉악범죄는 아닙니다. 검거된 부녀자 대부분은 벌금형에 그치겠죠. 도박이 뉴스가 되는 이유도, 사실 도박꾼들의 행각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기심 때문일 겁니다. 그래도 영화를 따라하진 마세요. 야심한 밤 야산 속 천막에서, "딱 한번"은 금새 "상습"이 됐거든요. 도박의 추억은 짧지만, 상습도박 혐의는 깁니다.
▲ 상습도박 혐의 등으로 검거된 부녀자 등 도박꾼들 (경기경찰청 제공)
경찰 보도자료 속 도박장 용어
▶ 창고장 : 도박에 필요한 장소를 선정하고 천막을 치고, 도박꾼들을 불러 모으고, 문방을 고용하여 경찰단속에 대비하는 등 도박개장에 필요한 모든 사항을 총괄하며, 매판마다 총책이 승하면 판돈의 5%, 찍새가 7끝 이상의 패로 승하면 판돈의 10%의 고리돈을 받으며, 천막치는 조와 문방에게 일당지급.
▶ 총책(총) : 딜러 옆에 앉아 딜러가 돌린 3개의 패중 하나를 선택하고 양쪽으로 앉은 찍새들이 선택한 패와 겨루어 승하면 찍새들의 돈을 먹고, 패하면 찍새들이 건 만큼 돈을 주고, 매판 승할 때 마다 5%씩 창고장에게 고리돈을 떼어줌.
▶ 찍새 : 딜러의 양쪽으로 두개의 줄을 따라 앉아서 총책이 선택한 패를 제외한 다른 패에 돈을 걸어 총책과 도박을 하는 도박꾼, 7끝 이상으로 총책에게 승하면 10%씩 창고장에게 고리돈을 줌.
▶ 딜러 : 창고장이 고용하여 도박판에서 화투패를 돌리는 사람으로 총책이 승할 때 마다 5-10만원의 고리돈을 떼어줌.
▶ 상치기 : 도박판에서 총책이 승하면 찍새들이 건 돈을 모아 총책에게 가져다 주고, 총책이 패하면 총책의 돈을 찍새들이 건 만큼 돈을 나누어주는 역할, 총책이 승할 때 마다 5-10만원씩 고리돈을 떼어줌.
▶ 꽁지 : 도박판에서 돈을 모두 잃은 도박꾼에게 선금을 떼고 돈을 빌려줌.
▶ 박카스 : 도박꾼들에게 컨디션 등 피로회복제와 김밥, 라면, 커피 등을 1만원씩 받고 판매.
▶ 문방 : 도박꾼들에게 연락하여 불러모으고, 도박장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대기 하면서 승합차량으로 도박꾼들을 도박장까지 태워다주고, 도박이 시작되면 도박장 앞과 길목에서 경찰단속에 대비 감시하는 역할.
▶ 천막 : 도박개장에 필요한 천막을 치고, 발전기, 난로, 의자 등 도박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준비, 설치하는 역할.
▶ 똥 : 고리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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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사회2부 사건팀의 최우철 기자는 2007년에 SBS에 입사한 새내기 기자입니다. 특유의 적극성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사건 현장의 이면에 숨어 있는 '작지만 빛나는' 진실을 찾아 내겠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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