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사장은 광고회사를 나와 같이 일하던 팀원 5명과 함께 회사를 차렸다.
단 한 명의 이탈자도 없었다. 최사장의 리더십을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마음맞는 사람들끼리 자본금 5억원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2년 후 수중에 남은 건 1억원 뿐이었다.
KBS에 '수호요정 미셸'을 납품했지만 시청률이 좋지 않았다.
최 사장이 보기에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은 예쁜 작품'이었는데 시청자들은 외면했다.
= 어린이들을 위한다는 것은 단지 말 뿐이었고 내가 만족하는 작품을 만들려고 해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은 프로페셔널이 아니라 마니아 정도 밖에 안되겠구나…. 그래서 철저하게 애니메이션을 보고 소비하는 수용자들의 시각에 맞추자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해서 만들어진 것이 뽀로로였습니다.
'소비자 눈에 맞추자'라는 건 늘 듣는 신선할 것도 얘기인데, 이날은 유독 가슴에 와닿았다.
물론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걸 만드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지만 '프로'의 세계는 달라야한다.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의 음악을 도맡아온 작곡가 히사이시 조의 에세이 <감동을 만들 수 있습니까>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과 완성된 작품이 사람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는 것, 이 두 가지는 일맥상통하면서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프로는 사람들의 요구에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일을 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요구에 영합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최 사장의 말을 듣고 나는 살짝 뜨끔했다. 시청자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기사를 쓰고 인터뷰 내용을 고르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했다. 요즘들어 부쩍 느끼게 되는건데 변화 없는 반복은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그게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 쌓이면 자신이 바보가 되어가는 줄도 모른다. 자각 증상조차 없는 정신적 암의 말기 증상이다.
= 뽀로로는 유아용 애니메이션이죠. 유아용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교육적인 가치를 많이 드러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우리 아이들을 보니까 굳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이렇게 이렇게 해" 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충분히 사리분별하고 판단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보자.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살짝 얹으면 어떤가…. 이런 식으로 접근을 했죠. 그게 저희한테는 차별화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기존의 유아 애니메이션은 교육+엔터테인먼트라고해서 메인은 교육이죠. 그런데 저희는 거꾸로 엔터테이션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최 사장에게 시나리오 쓰는 모습을 좀 촬영하고 싶다고 했다. 최 사장은 뽀로로의 시나리오를 직접 쓴다.
= 작가들이랑 얘기를 하다가 작가들이 그렇게 답답하면 직접 써보지 그러세요 라고 투정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내가 생각하는게 과연 어떤 이야기였고 어떤 시나리오였는지 보여줄 필요가 있겠다 싶었어요.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그럼 한번 써보자해서 쓰게 된거죠.
저녁 8시가 다된 시각, 혼자 사장실에서 시나리오를 쓰게 하는게 미안해 물어봤다.
- 평소 몇시쯤 퇴근하세요?
= 새벽 한 두시 쯤 들어갑니다.
- 아니 그 때까지 뭐하세요?
= 시나리오 씁니다. 혼자 있는 이 시간이 저한테는 가장 즐거운 시간입니다.
이것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이런 시간을 가진게 언제였던가. 늘 돌아오는 정기 야근말고 밤늦게 혹은 새벽 시간에 혼자 사무실에 남아 일하는 즐거움을 맛본지가 언제였던가.
= 의무감에 따라서 하는 것보다는 정말 내가 이 일이 좋아서 하면 모든 일의 성과가 달라질 것이라 생각되거든요. 그래서 저는 사람을 뽑을 때도 일을 얼마나 잘하냐 못하냐도 보지만 가장 많이 보는 것은 일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있는지 봅니다. 정말 이쪽 일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있으면 조금 모자란 실력들은 금방 보충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요.
최 사장과 인터뷰하면서 드문 경험을 했는데, 질문을 던져놓고 기다리던 멋진 답변 대신 모범답안을 듣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허투루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젊은이들에게 조언 한마디를 부탁하자 나온 마지막 답변에서도 외유내강 프로페셔널의 단단함이 느껴졌다.
= 나름 성공하셨다는 분들을 보면 한가지 공통점은 이 일 하고 저 일하는 분들이 아니라 다들 한 우물을 파신 분들이더라고요. 제 주변을 보더라도 잘 된다는 업종을 좇아 계속 움직이시는 분들이 있고, 그것과 관계없이 본인이 선택한 것에 대해 끝까지 하는 분들이 있는데 결국 보면 반드시는 아니지만 대부분 한 우물을 판 전문가들이 승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뭔가 하겠다는 꿈을 가지면 정말 단기간에 이루려고 하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꾸준하게 노력을 하고 계속 공부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그 노력의 댓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직원들한테도 얘기를 하는데, 지금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한다고 혹은 조금 못한다고 우쭐해하거나 침울해할 필요없다고 얘기합니다. 지금은 야구 경기를 1회를 치른 것 뿐이지 9회까지 가려면 여러가지 고비가 있는데 그 때 마다 흔들리지 말고 이 페이스로 계속 가라. 그러다보면 분명히 언젠가는 대가가 되어 있을거다...라고 얘기합니다.
![]() |
[편집자주] 날카로운 문화적 감각과 통찰력이 묻어나는 인상깊은 칼럼으로 네티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주형 기자는 1995년 SBS에 공채로 입사해 문화부와 SBS스페셜 등 호흡이 긴 기사와 방송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