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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떼! 초모랑마!] ④ 3800미터의 라마교 사원

유재규

입력 : 2009.06.04 14:39|수정 : 2009.06.04 16:38


해발 3860미터, 텡보체엔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오후 3시 반쯤...숙소 옆엔 빵집이 있었다.

나한텐 '그림의 떡'이었다.

그래도 아직 해가 있어서 머리가 심하게 아프진 않았다.

텡보체엔 커다란 라마교 사원 '텡보체 곰파'가 있다.

1912년에 만들어진 사원. 히말라야에선 가장 큰 사원이다.

내가 잤던 롯지도 이 사원이 운영하는 곳이다.

셀파족은 신앙심이 투철한지 베이스 캠프로 가는 트레킹 도중엔 곳곳에서 라마교의 가르침인 '옴 마니 파드메 옴'이 새겨진 바위들을 만날 수 있다.

신의 축복을 비는 말이다.

 

내 가이드였던 셀파 왕디는 이 바위를 지날 때 반드시 시계 방향으로 돌고 가라고 했다.

나중에 의미를 물어보니 라마교 신자들은 이 바위에 신이 깃들어있다고 믿는단다. 그리고 신은 마음의 오른쪽에 있다고 믿기 때문에 바위를 오른쪽에 두고 도는 거란다.

역시 신의 축복을 비는 행위란다.

사원이나 '초르텐'(돌탑)엔 때로 종이 매달려있기도 하다.

왕디는 종을 볼 때마다 오른손으로 돌리라고 했다.

마찬가지 의미다.

4시부터 이 사원을 개방한단다. 안으로 들어가봤다.

1600년대에 이 곳에 사원이 세워질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라마의 발자국이 남아있다.

갈색 법의를 걸친 라마교 스님들이 있고, 불상들이 여럿 있다.

우리나라의 여느 사찰과 크게 다르지 않다.

향 냄새가 좋다.

척박한 환경이기에 절대자를 희구하는 인간의 욕구는 더욱 절박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커다란 사원이 지어지고, 곳곳에 '옴 마니 파드메 옴'으로 도배된 서낭당같은 초르텐이 즐비한가보다.

입장료는 없지만, 국장님이 대표로 약간의 돈을 사원에 기부했다.

30분 정도 둘러봤을까?

숙소로 돌아왔다.

텡보체에선 '아마다블람'이란 봉우리가 잘 보인다.

6,856 미터.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는 형상으로 히말라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꼽힌다.

                      


에베레스트 트레킹 도중 묵는 롯지의 방에는 따로 난방 시설이 없다.

침낭을 뒤집어 쓰건 담요를 뒤집어 쓰건 알아서 보온을 하고 자야 한다.

유일한 난방 시설은 식당에 있다.

식당 한 가운데 옛날 학교에 있던 난로가 있다.

그래서 트래커들은 로지에 도착하면 버틸 때까지 난로 옆에서 버티며 수다를 떨거나 책을 읽다 방으로 들어간다.

네팔의 전력사정이 좋지 않고, 고산 지대는 더욱 나쁘기 때문에 9시에서 10시 사이면 롯지의 전기가 나간다 --;;

그전에 들어가서 자야한다.

난로는 야크 똥이 연료다. 이게 생각보다 화력이 좋다.

카라반을 하다보면 집집마다 앞에 뭔가 보도블록처럼 생긴걸 말리고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난로에 땔 야크 똥을 말리는 거다.

식당에 한국인 부부 트래커가 있었다. 은행에서 정년을 맞고 임금 피크제 대신 은퇴를 선택한 분이다.

내 표정을 보더니 고맙게도 고소 증세로 고생하지 않냐고 물어보신다.

난 사실 별 준비 없이 출장을 왔다.

다녀온 선배들은 베이스캠프에 가면 원정대가 모든 걸 갖고 있으니 가벼운 맘으로 몸만 가면 된다고들 했다.

맞는 말이다. 원정대는 많은 걸 준비해온다. 웬만한 약은 다 있다.

문제는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과정이었다.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가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다이아목스'라는 이뇨제와 아스피린, 약간의 두통약을 갖고 간다.

난 물갈이 할 것에 대비해 설사약만 가져왔지만, 물갈이같은 건 없었다. --;;

정작 필요했던건 아스피린과 두통약이었다.

난 밤이 무서웠다.

어두워지면 어김없이 고산병이 찾아왔다.

고산병을 예방한답시고 쉴새없이 물을 마셔댔기에 잠이 들면 얼마 못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잠이 깼다.

다시 잠이 들면 두 세시간 지나서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이 나를 괴롭혔다.

머리의 혈관들이 다 터져버릴 것만 같은데 아무 약도 없으니 말 그대로 끙끙 앓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끙끙 앓다가도 신기한게 해가 뜨고 날이 따뜻해져 발걸음을 옮기면 또 머리 아픈건 가셨다.

이 분은 나에게 아스피린과 다이아목스의 복제약을 선물해줬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저녁은 어김없이 찐감자를 시켰다. 역시 입맛이 없어서 반도 못 먹었다.

다음 목적지는 4,280미터 페리체.

페리체 가는 길도 그런대로 평탄한 편이었다.

그러나 나의 몸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힘겹게 4천미터를 넘어섰다.

4,080미터 소마레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역시 메뉴는 찐감자였다.

꾸역꾸역 먹다가 생각이 나서 다이아목스 복제약을 하나 먹었다.

갑자기 속이 뒤틀렸다.

튀어나가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손으로 막는 수밖에...

 

텡보체에서 만났던 타이완 여자애 2명과 국장님이 놀랜다.

토하고 나니 그래도 속이 괜찮아졌다.

가는 길에 박영석 대장과 2007년 남서벽 신루트에 도전하다 눈사태로 세상을 떠난 2명의 산악인 기념비가 있다.

참배하고 그럭저럭 괜찮은 상태로 페리체에 도착했다.

난 이제 고산병과는 헤어졌다 생각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완벽한 오판이었다.

  [편집자주] 보도국 문화부의 젊은 피, 유재규 기자는 종교계와 대중문화, 문화재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2005년 SBS에 공채로 입사한 뒤 국제부를 거쳐 사회2부 사건팀을 거쳤습니다.  따뜻한 시선과 섬세한 시선으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하는 유 기자는 최근엔 박영석 원정대의 에베레스트 남서벽 도전을 현지에서 동행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