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생활·문화

한국만화 100년을 빛낸 캐릭터들

입력 : 2009.06.01 09:46


우와! 내일, 6월 2일이면 한국만화가 100살이 된다니 정말 놀랍지 않으세요?

아, 인사가 늦었네요. 저는 둘리랍니다. 1983년 4월 22일 김수정 화백의 손에서 태어난 저도 벌써 스물일곱 살이니 이제 '아기 공룡'이라고 불리기 민망한 나이가 됐죠.

그래도 올 1월부터 제가 나오는 TV 애니메이션이 새로 방송된 거 아세요? 이제 '만화영화'보다 '애니메이션'이라는 말이 잘 어울릴 정도로 세월이 지났는데도 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답니다. 이 정도면 아빠와 딸에게 함께 사랑받는 캐릭터라고 하기에 손색없죠.

저 둘리가 우리 만화 역사를 들려드리겠습니다.

한국 만화가 100살이라는 나이를 거저먹은 건 아니에요. 엄마, 아빠의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고 지친 사람들을 웃기고 울렸으며 어르신들을 대신해 사회에 따끔한 일침을 놓았던 것도 우리 캐릭터들이었으니까요.

그럼 한 번 한국만화의 세상으로 들어가 볼까요? 호이!

◇정의를 위해 싸우는 우리의 영웅 = 1909년 6월 2일, 대한민보 창간호에 나온 서양식 정장 차림의 이 신사분이 바로 우리 만화 캐릭터들의 시조랍니다. 관재 이도영 화백이 탄생시킨 한국 최초의 만화인데, 첫 만평인 만큼 한민족의 단결을 고취하고 바른 언론을 이끌자는 말씀을 하셨네요.

요즘 젊은이로서는 떠올리기 어렵겠지만, 우리 캐릭터들은 만화의 태동과 함께 나이를 먹기 시작했어요. 우리 전래동화나 설화, 해외 동화 속에서 걸어나와 만화에서 숨결을 얻은 캐릭터도 많지만, 작가의 머릿속에서, 손끝에서 탄생한 경우가 많아요.

김성환 화백의 고바우 영감, 꺼꾸리군과 장다리군, 김용환 화백의 코주부, 신동우 화백의 날쎈돌이, 박기정 화백의 혈기왕성한 권투선수 훈이, 김경언 화백의 의사 까불이 등은 1950∼1960년대에 태어난 캐릭터인데 아직도 이름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많지요.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은 SF만화의 효시인 김산호 화백의 라이파이죠. 세계 정의의 용사가 가슴에 'S'자를 새기고 날아다니는 미국의 슈퍼맨밖에 없는 줄 아셨나요? 'ㄹ'자를 달고 뛰던 라이파이는 우리만의 영웅으로 기억될 거예요.

1960년을 전후로 전국에 2천여 곳이 운영될 정도로 만화방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어요. 만화잡지와 단행본에서 뛰어다니던 우리는 이곳에서 많은 청소년과 함께했답니다.

◇형, 동생 같은 캐릭터들 책 속에 '쏙' = 1970년대 들어 더욱 친숙한 친구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길창덕 화백의 꺼벙이는 순수한 눈빛에 커다란 땜통 자국을 한 평범한 우리의 동생이고 일자 눈썹의 순악질 여사도 길 화백에 의해 태어났습니다.

이상무 화백의 까까머리 말썽꾸러기 독고탁, 고우영 화백의 우직하고 듬직한 임꺽정, 박수동 화백의 고인돌, 허영만 화백의 각시탈, 김원빈 화백의 한민족 영웅 주먹대장, 신문수 화백의 인간적인 로봇 찌빠도 이맘때 탄생했어요.

특히, 만화영화 속 캐릭터들은 말 그대로 살아 움직였죠. 한인철 감독의 철인 007, 김청기 감독의 로보트 태권브이와 황금날개, 임정규 감독의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는 영원히 사랑받을 우리의 영웅들이죠.

1980년대 들어 우리는 대표 선수들을 꼽아 보기도 벅찰 정도로 황금기를 맞았어요. 아무리 넘어져도 굳세게 달리던 하니(이진주), 불의에 굴하지 않고 주먹을 쥔 까치(이현세), 투박해도 정의롭고 호쾌한 머털이(이두호), 어설프지만 미워할 수 없는 친구 영심이(배금택), 그리고 저 둘리도요.

사실 정부에서는 우리가 어린이들의 바른 마음을 해치는 불량아라는 근거 없는 비난도 했지만, 우리가 진심 어린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은 분명하죠. 우리가 뛰놀 수 있었던 만화잡지도 엄청나게 많았고요.

아름다운 순정만화와 선 굵은 남자들의 만화가 동시에 꽃을 피웠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더 주목받은 만화들도 많이 나왔죠. 든든한 선배들 덕에 젊은 작가들도 꿋꿋이 만화가의 길을 걸을 수 있었어요.

굳센 의적 임꺽정(이두호), 못난이와 황진이(김동화), 타짜 고니(허영만), 고구려의 슬픈 왕 무휼(김진), 외로운 여고생 신혜(강경옥), 색다른 성인 누들누드(양영순), 절대 무공의 고수 백일홍(권가야) 등 다양한 캐릭터들이 숨을 쉬었고 김혜린, 황미나, 한승원 등 순정만화 작가들 손에서 태어난 멋진 남녀는 애틋한 사랑을 나눴죠.

◇책, TV, 컴퓨터 속 다정한 연인 = 일본 만화가 개방됐던 1998년은 우리 만화가 큰 아픔을 겪은 해로 기억될 거예요. 그 많던 잡지가 순식간에 사라졌고 우리 청소년의 정서를 앞서 이끌었다고 자부했던 작가들은 붓을 쉽게 들지 못할 정도로 우리 만화가 설 자리는 줄어 버렸어요.

그래도 우리는 거기서 멈출 수 없었죠. 책으로, TV 애니메이션으로, 인터넷의 웹툰으로 우리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매체는 모두 찾아가기 시작했어요.

특히, 웹툰에서 탄생한 캐릭터들은 단행본뿐 아니라 여러 상품에 새겨지면서 시장에서도 사랑받기 시작했답니다. 또, 이런 만화들은 어린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20∼30대의 희로애락을 그려 독자층을 넓혔다는 점이 특징이죠.

낭만주의자 파페포포(심승현), 순수하고 착한 이웃 승룡이(강풀), 우리 시대 젊은이의 표상 캣츠비(강도하), 20대 남자의 보통명사가 된 성게군(정철연), '귀차니즘'의 선두주자 스노우캣(권윤주)… 다들 한번쯤 들어본 이름이죠?

좋은 아이디어만 있다면 만화 자체로도, TV 드라마로 옮겨져서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궁'(박소희)에서 활약한 여고생 황태자비 채경과 황태자 신도 있죠.

이렇게 우리 캐릭터는 이렇게 오랜 시간 맥을 이어 왔답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사랑하는 만큼, 여러분도 우리를 잊지 않으실 거란 사실 다 알아요. 독자에게 말을 걸고 웃음을 주며 눈물을 닦아 주는 우리 캐릭터들이야말로 만화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더 자세한 게 궁금하세요? 2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한국만화 100년전'에서 우리를 만나실 수 있답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