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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동안 '노무현 식' 정치 실험을 계속 시도했다. 언제나 저항에 부딪혔지만 피해가지도 에둘러가지도 않았다. 대통령 노무현, 그 5년의 공과를 되짚어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 우리 사회의 권위주의, 서열주의를 뒤흔들었다. 그는 참여정부 첫 장관으로 이장과 군수 지낸 김두관을 행정자치부 장관에 임명한다. 이어 40대 여성 변호사 출신의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부 장관으로 기용한다. 당시 강금실 장관은 검찰 청장보다 사법고시 기수가 11기나 낮은 파격적 인사였다.
강 장관의 임명을 놓고 검찰의 원성이 수그러들지 않자 그는 직접 검사들과의 대화에 나선다. 당시 분위기기가 격해지면서 아슬아슬한 말이 오갔고, 긴장감이 나돌았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을 권력으로부터 해방시키려했고, 권력의 오른팔이라는 국세청과 국가정보원도 독립시켰다.
권위주의 타파라는 집념은 청와대 업무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인사를 대통령이 먼저하는 것, 흔히 '독대'하거나 소수 사람과 의논해 일을 결정하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고 한덕수 전 총리는 회고했다.
2003년 하반기, 대선자금 수사가 시작됐다. 검찰의 칼날은 여야를 가리지 않았다. 야당은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을 입었고, 노 전 대통령도 측근인 최도술, 안희정 씨가 대선자금 문제로 구속되면서 다시 위기에 처한다. 노 전 대통령은 다시 한번 재신임을 통해 이를 돌파하려 했으나 헌법상 문제로 무산됐다.
야당은 노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했지만, 두 달여 뒤 헌법재판소는 그를 살려냈다.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국회 과반수를 석권하며 다시 한번 그는 지지기반을 다졌다.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신문법, 과거사법 실시해 개혁 정치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2005년 이후 부동산 정책 시작되며 서민들의 마음 흔들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부동산세를 올려 집값을 잡겠다는 정책이 일반 국민들에게도 큰 부담이 된 것이다. 그는 직접 해명에 나섰으나 서민들 불만은 그치지 않았다.
한반도 전작권 환수 돌려받도록하겠다면서, 이와 반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하는 등 오락가락한 정책도 보수, 진보 양 진영으로부터 원성을 샀다.
계속된 국론분열과 숨가뿐 개혁정책이 국민들 힘들게 만들었고, 지지율은 20%이하로 떨어졌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 그는 걸어서 남북분계선을 넘었다. 2박3일간 열린 회담 결과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 해주경제특구 등을 설정하는 등 남북경협확대라는 성과를 낳았다.
진보로 시작해 실용으로 끝난 임기라고 평가됐다.
(SBS인터넷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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