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한 기자가 되지 않으려면...
저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풋내기 기자입니다. 하지만 채 5년이 안되는 시간동안 굵직한 일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 동안 수많은 사건들을 꽤 가까이서 지켜봐왔지만, 전직 대통령 투신이라는 사상 초유의 일은 솔직히 상상도 못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시겠지만.. 이번 일로 참 많은 생각을 하게되었고, 또 하고 있습니다. 제 출입처가 검찰과 법원이다보니 그 어느 때보다 생각의 깊이가 깊습니다.
쉽게 정리되지 않는 많은 것들을 그냥 흘려 보낼 수 없어서 한 동안 쉬었던 블로그를 다시 열었습니다. 지금 쏟아놓지 않으면 나중엔 정리하기 힘들 것 같아서요.
그 동안 취재와 보도를 하면서 씨름하던 내용들을 한 번 두서 없이 늘어놓아 보겠습니다. 혹 명쾌하게 정리를 하지 못하더라도, 그냥 <고민의 시작> 쯤으로 여겨 주십시오. 뭔가 속시원한 해답을 기대하시기엔 제 내공의 깊이가 너무 얕은 것 같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파를 타던 날,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을 찾은 안희정 최고위원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병원 앞에서 안 최고위원이 기자들에게 했던 말의 전문입니다.
대통령을 지켜드리지 못했습니다. 대통령을 모셔왔던 참모로서 죄인이 됐습니다.
대통령을 지키지 못해서 너무 억울합니다. 지난 1년 여동안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노무현 대통령과 노무현 정부에 가해졌던 사회적 폭력과 눈치에 대해서 저는 분노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신이 원하신 결과가 이겁니까,
대한민국 검찰, 당신이 원한 결과가 이겁니까,
조중동 당신들이 원한 결과가 이겁니까!
한없이 분노합니다. 대통령을 지켜드리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검찰 수사가 스포츠 중계입니까?
전직 대통령이든 평범한 시민이든 누구에게나 인권이 있고 대한민국 헌법은 그 인권을 보장하라고 존재합니다.
검사들의 의심은 사실인양 매일매일 언론에 대서특필하고, 보도하고 그래서 그것이 재판 결과에 어떤 결과가 나온든 누구든 책임지지 않으면서 언론과 검찰은 핑퐁게임하듯 주고받으면서 전직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고 시정 잡배로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에 대한 모욕입니다. 대통령 개인에 대한 모욕이 아닙니다.
봉하마을에 자주 못가 최근 심경에 대해선 모릅니다. 이틀 전에 걱정돼 전화했는데 수행하는 비서관들이 대통령 편히 계시니 걱정말라는 소리 듣고 맘을 위로받았습니다만 이런 일이 있을 줄 몰랐습니다.
군데군데.. 뉴스나 신문에서 듣고 읽으신 내용이 보이시죠?
보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안 최고위원의 마음 속 울분이 느껴지실 겁니다. 많은 분들이 이와 비슷한 심정으로 분향소를 찾고 계시리라 짐작합니다.
안 최고위원의 말을 듣는 동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후려 맞는 듯 했습니다.
... 검사들의 의심은 사실인양 매일매일 언론에 대서특필하고. 보도하고 그래서 그것이 재판 결과에 어떤 결과가 나오든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면서 언론과 검찰은 핑퐁게임하듯 주고받으면서...
제가 뜨끔했던 건, 실제로 비슷한 생각으로 고민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물론 아직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습니다. 저 뿐 아니라 많은 선배들도 그래왔으리라 생각합니다.
수사권이 없는 언론은 소위 말하는 '실체적 진실'을 밝힐 강제적인 수단이 없습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퍼즐 조각을 맞추고, 각자의 입장을 듣고 가려내면서 어떤 것이 진실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 결론을 얻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는 경우도 있고, 작정하고 달려드는 경우 물증이 있는데도 속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오보를 내게 되는 경우가 있지요.
물론 이 때문에 때때로 기자들이 소송을 당하기도 하고, 언론중재위원회 등으로부터 제재를 받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지만 보도 내용이 언론의 본래 목적인 공익에 부합하고, 취재 내용이 사실로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라면 법적인 책임을 면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부러 오보를 내는 기자들은 없지만, 고의성 여부와 상관없이 오보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의 피해를 어떻게 보상할 것이냐는 문제가 생깁니다.
저의 고민도 '간혹 발생하는 피해에 대한 보상이 충분한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정정보도>와 <반론보도>라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이미 언론 보도대로 소문이 나고, 그래서 낙인이 찍힌 사람들에게 이런 방법들이 그다지 속시원한 해결방법이 되는 것 같진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폐단을 예방하거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요. 아마도 법원 판결 이후에 기사화가 된다면 이런 문제가 조금 줄어들긴 할 겁니다.
헌법상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인권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고, 어떤 사람이든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재판을 받아야 하니 그게 헌법 정신에도 부합할지 모르죠.
하지만 검찰이 수사를 하고, 기소를 하고, 법정 공방이 진행되는 기간을 생각해 보면, 6개월에서 1년이 넘게 걸리는 그 기간동안 공판에 대한 보안이 지켜지지도 않겠지만 수 많은 매체와 매일같이 치열한 속보 경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본다면 '내용을 알고도 오래 묵혀두라'는 요구는 현실성 없는 대안입니다.
물론 외국의 경우, 법원 판결 이후 보도가 더 비중있게 다뤄지고 그래서 우리도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이야기가 있기는 하지만, 어느 나라가, 어느 단계에서, 어떻게 보도를 하는지를 아직 꼼꼼히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늘 생각만 하다 바쁜 일과에 묻혀 지나가곤 했었는데.. 늦지 않은 시간에 정리를 한 번 해봐야겠습니다.
검찰 수사 단계에서 많은 기사가 나오는 것은 <속보>가 생명인 언론의 속성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전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그렇지만, 뉴스를 보는 사람 역시 정확한 소식을, 최대한 빨리, 될수있으면 자세히 듣고 싶어 하니까요.
그렇지만 속보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확성이기 때문에, 앞서 말씀드린대로 실체적 진실을 가려낼 강제성이 없는 언론은 양쪽의 주장을 최대한 공정하고 공평히 담아 전달하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이 완벽한 방법인가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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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찌됐든, 검찰 소환이 대서특필 되고 조사를 받는 동안 관련 내용이 보도가 되고, 법정에서 공방을 벌이고, 재판 결과가 나오고..
굳이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처음 보도가 될 때만큼 비중있게 보도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긴긴 재판 끝에 무죄 혹은 일부 무죄가 나오더라도 그 내용이 비중있게 소상하게 보도되지는 않죠.
물론 그렇게 되는데는 사람들의 관심도를 반영하기도 하고, 뉴스가치도 떨어지기 때문이겠지만, 이런 작금의 보도 태도에 문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비단 우리나라 언론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사건기자 때부터 험한 아이템들을 하다 보면 개인적으로 협박하고, 욕하는 전화와 메일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안되는 억지가 대부분이지만.. 그런 일을 반복적으로 겪다보니 어느 날엔가는 그런 생각도 들더군요.
'만약 누군가 작정하고 저를 무고하게 고소하고, 그래서 그것 때문에 검찰이나 경찰에 불려가서 피고소인 내지는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았는데, 누군가가 이 내용을 알아내 보도하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보도된 내막이 사실인지와 상관없이
"에이..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겠어?"하고 낙인 찍고 만다면.. 난 어떻게 해야할까?'
제가 유명인사가 아니니 그렇게 될 일도 없겠지만, 그다지 상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딱히 뾰족한 방법이 있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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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의 차원에서 생각해 본다면, 권력을 이양받은 정치인들이나, 많은 혜택과 특권을 누리며 지내는 소수의 사람들이 적당히 타협하고 유혹에 흔들리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비판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니까 '결과도 안 나왔는데 왜 의혹을 제기하느냐'고 따지는 건 지나치게 감정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니면 말고' 식의 태도로 무책임하게 의혹을 제기하거나, 자칫 매너리즘에 빠져 보도 이전에 하게 되는 고민의 정도와 깊이가 줄어들게 되면 그 피해가 상상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역시 유아적인 태도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이유를 아무도 알 수 없으니, 검찰 수사와 보도 내용이 실체적 진실에 얼마나 접근했는지도 이제는 확인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이었는지와 상관없이 이런저런 상황으로 답답했을 노 전 대통령의 마음이 어렴풋이 짐작이 됩니다.
정치적 평가가 어떻든, 꿋꿋하고 당당하게 이룬 그 분의 성공신화가 이렇게 참담한 비극으로 끝이 난 것이 너무도 속상하고 가슴이 아픕니다.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이 비단 저 뿐만은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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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안 최고위원의 절규가 마음 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건, 그런 고민의 가운데서 이런 큰 일을 당해서 일 겁니다.
당장 명쾌한 해답을 얻어낼 수 없는 문제지만, 남은 기자생활 동안 대안을 얻어내려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게 쥐어진 큰 칼을 무책임하게 휘둘러대지 않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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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겸손과 존중'이 취재의 좌우명이라는 김요한 기자는 2006년 SBS 보도국에 입사해 사회2부 법조팀에서 활약 중입니다. 섬세하고 끈질긴 취재력과 함께 수준급 실력의 '드럼' 연주까지 보도국의 팔방미인으로 꼽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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