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대법원이 존엄사를 인정한 것은 치료가 더 이상 불가능한 환자가 자기결정권에 근거해 품위 있게 죽을 권리를 갖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인간의 생명이 무엇보다 중요하기는 하지만 의학적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 없는 경우라면 평소의 의사결정에 따라 치료 중단을 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환자가 의식이 분명한 상태에서 존엄사 의사를 밝혔을 때와 환자의 평소 언행 등을 통해 연명 치료 중단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을 때만 존엄사를 인정할 수 있다고 선을 그어 그 범위를 명확히 했다.
존엄사 의사는 전적으로 환자 개인의 결정에 의한 것이어야 함을 강조해 가족이나 주변에서 환자의 뜻과 상관 없이 존엄사를 남용할 수 있다는 위험을 경계한 것이다.
식물인간 상태로 인공 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는 김모(여.77) 씨의 가족이 연명 치료를 중단해달라며 소송을 낸 이번 사건에서도 김 씨의 분명한 의사 표현이 없었던 상황에서 존엄사 의사를 어떻게 추정할 수 있느냐가 가장 첨예한 쟁점이었다.
대법원의 판결로 환자의 의사에 반해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길은 열렸지만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해 논란은 여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존엄사 허용과 그 범위에 대한 논란은 지난해 6월 김 씨 측이 소송을 제기하면서 사회적인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이번 대법원 판결이 본격적인 논란에 불을 당긴 셈이다.
이번 사건에서도 김 씨의 상태를 회복불가능하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김 씨의 존엄사 의사도 가정(假定)에 불과하다는 일부 대법관들의 반대 의견이 있었으며, 종교계 등을 중심으로 존엄사 허용을 둘러싼 윤리적 공방도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전국의 병원에서 연명 치료를 중단하겠다는 환자 측의 요구가 잇따를 것으로 보여 연명 치료 중단을 판단할 세부적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서 환자에게 존엄사 의사가 있을 때는 반드시 소송을 거치지 않고도 치료 중단을 허용할 수 있다면서도 환자가 사실상 사망의 단계에 이르렀는지에 대해서는 전문의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의 판단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대법원의 언급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존엄사에 대한 판단을 개인과 가족에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연명 치료 중단의 기준과 절차, 남용시의 처벌 방안 등을 세밀하게 규정한 입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어서 존엄사의 세부 기준을 둘러싸고 진통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