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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선택' 고심하는 이용훈 대법원장

입력 : 2009.05.18 16:59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에 따른 일선 판사들의 반발이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사법부 수장인 이용훈 대법원장의 고민도 깊어가고 있다.

특히 지난 13일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신 대법관을 '엄중 경고' 조치를 하면서 공식 절차가 끝났는데도 단독판사 등 소장파들의 신 대법관 및 법원 수뇌부에 대한 비판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들이 윤리위 결론과 거취 문제에 대한 신 대법관의 행보뿐 아니라 이 대법원장의 '물렁물렁한 결정'도 직접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대법원장으로서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한 상황이 됐다.

적극적으로 사태 해결에 나서자니 이미 결론이 내려진 사항을 되돌릴 수 없고, 사법부 수장으로서 소장판사들이 들고 일어서는 현 사태를 수수방관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처지라는 것이다.

따라서 신 대법관이 스스로 용퇴하지 않는 한 대법원장이 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신 대법관에 대한 처분을 다시 한다거나 일선 판사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것인데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써먹을 카드가 별로 없다는 점도 그의 운신의 폭을 더욱 좁게 만들고 있다.

대법원장이 만약 일선 법관의 반발을 받아들여 신 대법관에게 사퇴를 종용한다면 다음 비난의 화살은 신 대법관을 제청한 대법원장 자신에게 향할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그를 보좌한 법원행정처 고위 간부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사법부 조직이 뿌리부터 흔들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신 대법관 사태가 이미 정치권이나 일반 시민단체 등에서는 이념적 싸움으로 바뀐 상황에서 정치권 논란이 가열되면 차기 대법관 제청을 하는 데 있어 대법원장의 영향력이 위축될 수밖에 없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법부 독립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더욱이 전임 정권에서 임명됐다는 이유로 '정치적인 외풍(外風)'은 더욱 거세질 가능성도 높아 대법원장이 '신 대법관 사퇴' 카드를 쉽게 꺼낼 수는 없다는 관측이다.

신 대법관도 스스로 물러날 수 있는 타이밍을 잃었다는 법원 안팎의 지적을 떠나 그 또한 자신의 갈 길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가 일종의 대법원장 보호막으로 그가 물러날 때는 여론의 화살이 대법원장을 직접 겨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지만 이 대법원장으로서는 확산하는 판사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릴만한 '패'도 그다지 없어 보인다.

14∼15일 서울중앙지법ㆍ서울북부지법ㆍ서울남부지법ㆍ서울동부지법 등 4개 법원에서 판사회의가 열렸고, 18∼19일에는 모두 9곳의 고ㆍ지법에서 판사회의가 진행 중이거나 열리는 등 일선 판사들의 반발은 갈수록 번지고 있다.

또 대법원이 사태 해결을 위한 이 대법원장의 약속에 따라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9월까지 결과물을 내놓겠다고 밝혔지만 일선 법원 판사들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냉담한 반응이다.

재경법원의 한 판사는 "TF를 통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게다가 17일 대법원 법원행정처 판사들이 18∼19일 회의를 여는 일선 법원 단독판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논의 내용의 수위를 낮춰달라는 취지의 당부를 했다는 사실까지 알려진 점도 법원 수뇌부 입장에선 곤혹스런 대목이다.

일선 판사의 불만이 법원행정처 판사들의 엘리트주의에 어느 정도 근거한 만큼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대법원장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카드이자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일선 법원의 부장판사들밖에 없다는 말이 법조계 안팎에서 나온다.

실제로 고법ㆍ지법 부장판사는 현재까지 목소리를 내지 않은 채 사태를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와 관련, 재경법원의 한 판사는 "이제는 부장판사들이 나서서 법원 수뇌부와 젊은 판사들 간의 '간극'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가 한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양쪽 모두 파국으로 치닫는 '치킨게임' 양상으로 비화되고 있는 만큼 부장판사가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문제의 본질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문제이며, 이 대법원장이 인사정책에 대한 쇄신책을 즉각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즉 법원장이 각 법관에 대해 평가하고 그 결과가 고등부장 승진과 직결되는 현행 인사제도에서는 '사법부 독립'이 지켜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인사 문제에 대한 대책이 나올 때 소장판사들이 집단행동을 그만둘 수 있는 명분도 생긴다는 분석도 있다.

재경법원의 한 판사는 "신 대법관 거취 문제는 피상적인 부분"이라며 "갈수록 관료화되고 있는 사법부의 인사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강도 높은 대책이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태가 진정될 기미가 없는 상황에서 이 대법원장이 내놓을 '솔로몬의 선택'이 무엇이냐에 법조계 안팎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