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 백신, 유정란 이용해 제조
신종 인플루엔자 A(H1N1)의 출현으로 세계적 대유행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예방 백신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말 그대로 '신종(新種)'이므로 세계 어디에도 백신은 없는 상태인데, 우리 정부는 상황이 악화할 경우 160만 명분의 백신을 비축하는 계획을 검토 중이다.
그렇다면 인플루엔자 백신은 무엇으로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 국내에서 생산은 가능한 걸까. 이 모든 의문을 풀어줄 열쇠는 '닭'이 쥐고 있다.
◇"아낌없이 주는 닭" = 인플루엔자 백신은 닭의 알, 즉 계란으로 만든다. 그것도 부화할 수 있는 유정란이어야만 한다.
질병관리본부의 전염병 전문가들에 따르면 계란을 쓰는 이유는 흔히 '독감'으로 불리는 인플루엔자가 원래 새가 걸리는 전염병이었기 때문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처음 둥지를 틀었던 곳이 새의 몸이므로 새알을 활용해야만 바이러스가 잘 배양된다고 한다. 다양한 새알 중에서 계란을 쓰는 이유는 대량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새알이기 때문이다.
닭은 고기와 알을 식용으로 제공하는 것은 물론 위험한 전염병으로부터 사람의 목숨까지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인 셈이다.
게다가 백신용 유정란을 낳는 닭의 수명은 5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6개월째에 접어들면 모두 도살처분하고 1개월간 양계장을 청소·소독하기 때문이다.
◇청정시설서 무공해 닭 사육 = 인플루엔자 백신을 만들려면 우선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청정 지역에 있는 특수 양계장이 필요하다.
이곳에서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온 암컷 병아리를 항생제 등의 약품을 전혀 쓰지 않고 암탉으로 키운 뒤 백신용 유정란을 얻는다.
이 유정란을 열흘간 부화시킨 뒤 알 윗부분에 필요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접종하고 사흘간 배양한다. 다음엔 감염 부위를 채독기로 추출한 뒤 초고속 원심분리기에 넣고 바이러스 입자만 분리해 낸다.
다음 단계가 가장 중요하다. 바이러스가 사람 몸에 이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독성을 제거하고 항원성만 갖도록 하는 '불활화 (不活化)' 작업이다. 이어 바이러스를 도즈(dose:1회 접종분량)당 15㎍(마이크로그램ㆍ100만분의 1 그램) 비율로 희석해 최종 원액을 제조한 뒤 주사기 등에 채워 넣으면 백신이 완성된다.
◇신종플루 백신도 즉시생산 가능 = 신종플루 백신도 국내 기술만으로 곧바로 생산에 들어갈 수 있다.
전남 화순에 국내 유일의 백신 전용 공장을 가동 중인 ㈜녹십자는 이미 영국국립생물기준통제연구소(NIBSC)에 신종플루 균주를 요청, 3주 내로 균주를 공급받기로 한 상황이다.
정수현 녹십자 전무는 "균주가 확보되면 신종플루 백신 완성품이 처음 나오기까지는 이론적으로 두 달가량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녹십자는 현재 화순공장에서 9월까지 500만 명 분 생산을 목표로 계절 인플루엔자 백신을 만들고 있지만, 정부가 요청한다면 언제든 신종플루 백신 생산 체제로 전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결국 계란" = 정부가 신종플루 백신 생산을 놓고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현 상태에서 신종플루 백신을 제조하려면 계절플루 백신 생산을 불가피하게 중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계절플루 백신 생산에 쓸 만큼의 유정란만 확보된 상태이므로 신종플루 백신을 만들려면 앞으로 생산하는 유정란을 모두 신종플루 백신 제조용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 이 방법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되면 청정 양계장을 하나 더 신설해 유정란 공급량을 늘려야 한다.
신종플루가 올가을에 유행할 계절플루보다 독성이 약할 수도 있는 만큼 첫 번째 방법을 선택한다면 정부로선 큰 모험을 해야 하는 셈이다.
문제는 새로운 백신을 생산하려면 유정란을 공급할 청정 양계장부터 새로 지어놓고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도중에 백신 생산계획이 철회되면 막대한 시설 투자비를 감수한 양계농만 손해를 보기 때문에 정부의 보장과 지원이 필요하다.
따라서 정부가 먼저 백신을 모두 구입할 것을 보장하면 백신생산업체도 양계농에 대해 유정란 전량 수매를 보장하는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
현재 녹십자에 유정란을 공급하는 곳은 전남 화순에 위치한 청정 양계장 1곳이 유일하며 현재는 공급량 전체를 계절플루 백신용으로 쓰게 돼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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