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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자금 암초에 낙마한 오자와 민주당 대표

입력 : 2009.05.11 16:34


'정권교체'를 내걸면서 일본 제1야당인 민주당을 이끌어오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66) 대표가 11일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이란 암초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대표직을 사퇴했다.

자신이 존재 이유로 내걸었던 정권교체를 자신의 손으로 이뤄내겠다는 꿈을 끝내 이루지 못한 채 대표직에서 낙마한 것이다.

그는 지난 2007년 7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정권하에서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60석을 획득하면서 참의원에서 최초로 야당이 제1당이 되는 성과를 낸 이후 줄곧 조기 총선을 주장하며 대여 공세를 주도해 왔다.

한때 아소 다로(麻生太郞) 현 총리를 제치고 차기 총리 선호도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여권의 실정과 세계적 경제위기라는 호재를 만나 정권 교체는 시간문제인 것처럼 정치권에서는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3월 초 자신의 측근인 오쿠보 다카노리(大久保隆規) 비서관이 니미마쓰(西松)건설로부터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 혐의로 체포되면서 본인도 구시대 정치인이라는 낙인이 찍히면서 국민의 불신을 받으며 정권교체를 위한 막판 장벽을 넘지 못했다.

그는 주변에서도 감탄할 정도로 전국 선거구 정세나 지역구별 상황, 선거 실무에 해박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07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여소야대를 구현함으로써 선거에 강한 '오자와 신화'를 재현한 것이 최근의 대표적인 예다.

다만 강경파 지도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닐 정도로 강압적이고 자신의 결정에 대해 주변에 제대로 이해를 구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따라왔다. 실천력을 겸비한 강력한 정치가라는 평가와 함께 고압적이고 편견이 심하다는 비판도 항상 뒤따랐다.

지난 2006년 4월 민주당 대표로 처음 취임했을 때는 "우선 나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면서 이미지 변신을 강조했지만 2007년 11월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당시 총리와의 영수회담에서 대연정 구상을 논의했으나 고위 당직자회의에서 거부당하자 돌연 사의 표명을 했다가 번복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여 사려가 깊지 못한 인물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의 국가관은 일본이 패전국이란 멍에에서 벗어나 보통국가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자민당에서 정치인생을 시작한 보수파 정치인이지만 아소 총리와는 노선상 차이가 있다.

그는 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아시아 외교를 중시하고 있다.

한국, 중국과의 갈등 소재인 야스쿠니(靖國)신사 문제와 관련해서도 합사된 A급 전범의 분사가 기본 입장이다.

오자와 대표는 자민당 핵심파벌인 다나카(田中)파, 다케시타(竹下)파 출신이다. 27세의 젊은 나이에 중의원에 첫 당선됐다. 47세의 젊은 나이에 간사장을 역임하는 등 한때 집권 자민당의 황태자로 불리기도 했다.

93년 6월 정치개혁을 내걸고 지지세력과 함께 탈당, 호소카와(細川) 연립정권을 탄생시켜 '정계개편의 설계자'라는 평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파괴자'라는 별명도 따라다닌다. 양대정당제를 겨냥, 신진당을 창당했으나 내분이 일자 당수이면서 스스로 당을 해체했다.

자유당 대표 시절에는 오부치(小淵)내각과 연립정권을 구성했지만 자민당과의 합당이 이뤄지지 않자 정권을 이탈, 자유당의 분열을 초래한 전력도 있다.

그의 이번 낙마는 정치적 스승인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와 가네마루 신(金丸信) 전 자민당 부총재의 낙마 과정과 흡사하다는 점도 이야깃거리다.

다나카 전 총리는 1976년 미국의 록히드사로부터 5억엔을 받은 혐의로, 가네마루 전 부총재는 1992년 사가와규빈(佐川急便)으로부터 5억엔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역시 도쿄지검 특수부의 수사를 받으면서 정치생명을 잃었기 때문이다.

취미는 바둑. 이와테(岩手)현, 게이오(慶應)대 출신의 13선 중의원 의원이다.

다음은 오자와 대표의 주요 경력.

▲1989년 8월 = 자민당 간사장 취임

▲1993년 6월 = 자민당 분열, 신생당 결성. 대표간사 취임

▲ " 7월 = 40회 중의원 선거, 자민당 과반 미달

▲ " 8월 = 비자민 8당 연합의 호소카와 정권 탄생

▲1994년 4월 = 호소카와 총리 퇴진. 소수 여당인 하네다(羽田) 내각 발족

▲ " 12월 = 신생당 결성 간사장. 취임

▲1995년 12월 = 신생당 당수 취임

▲1997년 12월 = 신생당 당수에 재선. 그 이후 당 해체

▲1998년 1월 = 자유당 결성. 당수에 취임

▲1999년 1월 = 자민, 자유당 양당 연립내각 발족

▲ " 10월 = 자민, 자유, 공명 3당 연립내각 발족

▲2000년 4월 = 자유당 연립 이탈. 자유당 분열

▲2003년 9월 = 민주, 자유당 합병

▲2003.7.23 = 간 나오토(菅直人) 민주당 대표와 회담, 민주당과 자유당(당시 오자와 대표가 당수) 합당 합의

▲ " 9.24 = 민주, 자유당 합병 조인

▲ " 12.11 = 민주당 대표대행 취임

▲2004.5.17 = 연금 미납 파동으로 사임한 간 나오토 대표 후임 대표로 취임할 예정이었으나 연금 미가입 때문에 포기

▲ " 11.16 =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대표 요청으로 부대표 취임

▲2006.4.7 = 마에하라 대표 중도 퇴진 이후 실시된 대표선거 승리로 대표 취임

▲ " 9.12 = 무투표로 대표 재선

▲ " 12.18 = '정권 정책 기본방침' 책정

▲2007.7.29 = 참의원선거에서 60석 획득, 참의원 최초 여소야대 구현

▲ " 11.2 = 후쿠다 총리와 당수회담에서 대연립 논의. 당직자회의서 거부됨

▲ " 11.4 = 사의 표명 후 이틀 뒤 철회

▲2008.1.16 = 당 대회에서 정권교체 결의 표명

▲ " 9.1 = 대표출마 공식 발표

▲ " 9.21 = 3선 대표 취임

▲2009.3.3 = 도쿄지검이 제1비서관인 오쿠보씨를 정치자금규정법 위반 혐의로 체포.

(도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