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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줄 '뚝'…베레조프스키 괴력 연주

입력 : 2009.05.02 09:03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제2번 협주곡의 밤'


타건이 얼마나 강력하면 현악기 줄보다 몇 배나 굵은 피아노 줄이 끊어질까.

피아니스트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에게 해외 언론이 가장 자주 붙이는 수식어 '괴력의 러시아인(The Mighty Russian)'는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다.

베레조프스키의 '제2번 협주곡의 밤'이 열린 1일 저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001년 첫 내한 이후 갈수록 더 입이 딱 벌어지는 프로그램을 들고 찾아오는 베레조프스키를 보러 온 관객들로 빈자리를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객석이 가득 들어찼다.

2007년 차이코프스키와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의 협주곡을 한꺼번에 묶은 '러시안 협주곡의 밤'으로 관객을 놀라게 한 그는 이번에도 웬만한 피아니스트들은 한 곡만 쳐도 지치는 쇼팽과 라흐마니노프, 브람스의 2번 협주곡을 한 자리에서 쳐내는 만만치 않은 프로그램을 짜왔다.

반주를 맡은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자리를 잡고, 지휘자 드미트리 야블론스키가 지휘대에 오르자 베레조프스키가 위풍당당하게 등장했다.

첫 곡인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2번' 1악장이 5분가량 진행됐을까. 오케스트라의 반주가 진행되는 부분에서 갑자기 베레조프스키가 벌떡 일어나 해머와 줄이 자리한 피아노 내부 쪽으로 몸을 숙여 무엇인가를 걷어내는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다름아닌 피아노 정중앙에서 조금 오른쪽에 위치한 G음(솔)의 줄이 끊어진 것. 그는 끊어진 줄의 영향으로 잡음이 나자 끊어진 줄을 아예 피아노에서 잽싸게 떼어냈다.

상황을 눈치 채고,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지휘자 야블론스키에게 괜찮다는 손짓을 보낸 베레조프스키는 당황한 기색도 없이 연주를 이어 나갔다.

쇼팽 곡이 끝나자마자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전담 조율사인 이종률 씨가 무대로 나와 약 15분에 걸쳐 새 줄을 끼우고 피아노를 다시 조율했으며, 이후 연주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강력한 파워와 날렵함, 폭발할 듯한 열정과 냉철함이라는 공존하기 어려운 미덕을 함께 갖춘 베레조프스키는 큼지막한 손으로 섬세한 피아노시모부터 부서질 듯한 힘으로 표현하는 포르테시모까지 현란한 연주로 건반 위를 마치 놀이터인양 뛰놀았다.

한 곡만 해도 기력이 소진되기 마련인 협주곡을 세 곡 씩이나 쏟아낸 그에게 관객은 아낌없는 기립박수로 환호했다.

공연이 끝난 뒤 이종률 조율사는 "피아노의 경우 200번 연주하면 한 번 정도는 줄이 끊어진다는 통계가 있다"면서 "하지만 오늘 끊어진 줄의 위치는 일반적으로 끊어지는 부분보다 한 옥타브 반쯤 낮다는 점에서 매우 보기 드문 경우"라고 밝혔다.

그는 "끊어진 줄은 드라마나 영화를 찍을 때 두 사람의 무게를 지탱하는 와이어의 굵기와 비슷할 정도로 굵다"면서 "건반에 내려놓는 힘이 엄청나기 때문에 끊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베레조프스키와는 세 번째 만남인데 올 때마다 줄이 끊어질까 봐 걱정을 했다"면서 "오늘도 리허설 때부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