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까지 파고 든 SI 공포..동포 상인들 긴 한숨
전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돼지 인플루엔자(SI)의 발원지 멕시코는 지금 공포와 침묵에 뒤덮혀 있다. 신문은 SI 관련 소식으로 도배되다시피 하고 방송은 시시각각 늘어나는 감염자와 입원자, 사망자 수를 보도하고 있다.
2천만명이 모여 사는 수도권은 늘 북적대고 시끄러웠으나 SI 파동 이후 시민들은 침묵 속에 종종걸음을 치고 오가는 차량과 사람이 크게 줄어 거리는 썰렁하다. 전염병의 공포에 질려 일상 생활이 위축되면서 사회 전체가 마비돼 가고 있는 상황이다.
시민들에 눈빛에는 그러나 공포와 함께 분노가 서려 있다. 당국의 늑장대처로 사태가 악화됐다는 생각과 국제사회에서 멕시코가 죄인 아닌 죄인 취급 당하는 듯한 분위기 때문일까? 기자가 말을 걸어도 대부분 외면한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고개를 흔들며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밝힌다. 평소 수다스럽고 카메라 촬영에 자연스럽게 응했던 바로 그 시민들이다.
모든 학교가 휴교에 들어 갔고 시민들도 가능한 외출을 삼가고 있어 교통량이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행사들은 대부분 취소됐고, 음식점 마저 정상영업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당국이 곧 대부분 대중 교통 서비스까지 중단 시킬 것이라느 풍문이 돌고 있다. 도시 전체 기능이 정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8일 오전(현지시간) 동포들이 많이 거주하는 멕시코시티 북서 외곽의 인테르로마스에서 승용차편으로 출발해 시내 코리아타운에 도착하는데 30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평소 교통체증으로 1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를 본떠 건설한 레포르마 거리를 중간에 두고 양편으로 오가는 시민들은 한결같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약속이라도 한듯 대부분이 푸른색이다. 보건 당국이 SI 발생과 함께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푸른색 마스크 무료배부였다.
특히 서민들의 발이라 할 수 있는 지하철과 버스에서는 승객들이 거의 빠짐없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현재까지 당국이 200만개를 나눠줬는 데도 약국과 편의점에서 좀처럼 마스크를 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마스크는 SI 재앙 중에 생명 보호의 가장 기본적인 도구가 됐다.
시민들은 한결같이 침울하고 암담한 표정에 말이 없다. 농담 좋아하고 스킨십에 익숙한 멕시코 사람들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숙해서 의례적인 가벼운 인사말을 붙이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보건 당국은 뺨을 비비는 전통적인 인사법은 물론이고 악수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권고했다. 또 최소한 2m는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보건상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이것이 정말 멕시코시티의 풍경인가? 침묵과 불안감 속에 '푸른 마스크' 대열이 이어지는 풍경은 공포영화나 악몽의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한국 식품.잡화점 5개와 한식당 7개가 몰려 있는 코리아타운도 침울한 분위기는 마찬가지다.
멕시코시티를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이 한 번 쯤 찾게 되는 한국음식점 영빈관은 28일 아침 문을 열자마자 구청으로부터 상상하기 어려운 통보를 받았다. 식당에서는 음식을 먹을 수 없도록 하고 모든 음식은 손님이 가져갈 수 있도록 포장 판매하라는 것이었다.
사람이 모이고 접촉하면 SI가 확산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물이 많은 한국음식 특성 상 어려운 일이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멕시코 모든 음식점에 내려진 조치이기 때문이다. 영빈관 주인 박재호 씨는 "이미 26일부터 저녁 6시 이후로는 문을 닫아야 했는데, 이젠 포장판매만 해야 돼 영업을 계속해야 할 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님들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 단신 부임해 온 한국 기업체 간부 강 모(43) 씨는 "하루에 최소한 한 끼를 한국식으로 먹으면서 식욕을 유지해 왔는 데 그것 마저 어렵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코리아타운 다음으로 우리 동포들이 많이 모여 있는 센트로 지역의 잡화 도.소매상들은 기진맥진해 있다. 70여개 상점의 동포들은 세계적 경제위기로 멕시코 경제가 침채된데다 최근 멕시코 당국이 이 지역을 과도한 단속해 왔는데 이번엔 SI까지 닥쳐 3중고를 겪고 있다며 울상이다.
센트로 아르헨티나가(街)에서 8평 가량의 모자 도매상을 하고 있는 교포 김충영(47.여) 씨는 "SI 발생 이후 손님이 줄어들었다기 보다는 아예 없어졌다는 말이 옳을 것"이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중국에서 주문 생산한 모자를 파는 김 씨는 "멕시코시티 반경 300km 지역을 상대로 도매를 하기 때문에 멀리서 찾아오는 소매상을 생각해서 문을 닫을 수도 없다"면서 "그러나 오전 9시에 문을 열고 4시간 동안 소매상 두 사람을 받아선 종업원 4명의 월급도 어찌 주겠냐"고 호소했다.
이곳에서 양말도매업을 하는 김분옥(49.여) 씨의 사정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김 씨는 "매상이 평소의 10분의 1로 줄었다"면서 "가게세를 주기도 어렵게 됐다"며 걱정했다. 김 씨는 게다가 멕시코 당국이 세금 및 상표권 침해 여부 조사를 한다며 밤낮없이 들이닥쳐 정신이 없다면서 한국 가게들이 단속의 표적이 되는 것에 불만을 표시했다.
가방도매상을 하는 정수현(54) 씨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평소 많은 사람들의 내왕으로 유명한 센트로 길거리가 휑하니 비어있는 것을 가리켰다.
동포 상인들은 멕시코시티 당국이 상황에 따라서는 센트로 지역에 대해 일시적으로 폐쇄조치도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며 불안해 하고 있다.
센트로에서 가까운 구 시가지의 중심지 소칼로도 평소에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이지만 지금은 인적이 거의 끊겨 쓸쓸하다. 소칼로 광장을 에워싸고 있는 관공서 건물과 대성당도 한산한 모습이다.
지난 26일엔 주일 미사까지 생략했던 대성당 안에선 마스크를 한 신자 몇 명이 기도하고 있었다. 성당문 앞에는 마스크를 쓰고 들어오라는 안내문이 내걸려 있었다. SI의 공포가 대성당 안에 까지 밀려 들어 온 것이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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