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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 구장…'어∼' 하다 애 밴 셈(?)

우상욱

입력 : 2009.04.16 22:15|수정 : 2009.04.16 22:16


지난 WBC에서 우리 대표팀의 1번 타자를 도맡았던 이용규 선수는 SF 영화에 나오는 철인 전사 같았습니다. 강속구에 뒤통수를 정통으로 맞아도,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다 수비 선수 무릎에 부딪혀 헬멧이 쪼개져도 다시 벌떡 일어나 더 무서운 기세로 달려드는 모습이 전설속 언브레이커블(절대 부상을 입지 않는 초인)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용규 조차도 국내 야구장의 펜스는 당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7일 중견수 수비를 하는 가운데 머리 뒤로 넘어가는 공을 잡으면서 펜스에 충돌했는데 복사뼈가 골절됐습니다. 치료와 재활에 2개월 이상 걸린다 하니 적어도 전반기에는 이용규 선수의 모습을 볼 수 없겠군요. 세계적 언브레이커블을 넉아웃시킨 우리 야구장의 펜스는 아마도 세계최강인 듯 합니다.

이용규 선수가 다친 광주 구장 뿐 만이겠습니까. 대구, 대전, 부산 사직 등 모두 낡을 데로 낡아 선수와 관객들에게 편의 제공은 고사하고 겨우 경기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라고 야구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이런 구장에서 전재산과 다름 없는 몸을 부상 위험에 그대로 노출한 채 경기를 하는 우리 선수들이 국제 무대에서 놀라운 활약을 펼치는 것은 거의 '공포의 외인구단' 수준입니다.

이런 판국에 서울시가 돔구장 건립을 결정한 것은 야구계 인사들이나 야구팬으로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입니다. 설사 평소 야구에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이번 WBC에 열광했던 분이라면 크게 반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돔구장 건립이 전격적으로 결정된 배경을 취재하다보니 뭔가 꺼림찍하게 걸리는 점이 있습니다. 평소 이런저런 트집을 잡는 것이 몸에 밴 기자의 직업병인가 싶기도 하면서도 한구석의 찜찜한 느낌을 털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뭐랄까요, 좀 저급하지만 딱 맞는 비유를 들자면 어~ 하다 애를 밴 느낌이랄까요.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자세히 설명해보겠습니다.

이번에 돔구장으로 건립하기로 결정된 고척동 서남권 야구장은 원래 하프돔으로 설계돼 공사가 추진중이었습니다. 말이 하프돔이지 전체 경기장의 25% 정도만 지붕을 씌우는 쿼터돔이죠. 동대문 야구장의 철거로 고교 대회 등 아마 야구 대회를 치를 곳이 없어지니까 서울시가 대체 구장으로 추진하던 곳입니다. 서울의 서남쪽 끝의 놀고 있는 땅을 헐값에 구입해 5백29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2010년 9월까지 완공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완전 돔구장으로 건립하기로 결정되면서 고척동 야구장은 이제 그 위상이 달라지게 됐습니다. 우선 공사비가 적어도 3백억원 이상 늘어나게 됐습니다. 공사 기간도 당초 내년 9월 완공 예정에서 이제 오는 2010년 9월로 1년 이상 늘어날 전망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사업 규모가 두배 가까이 늘면서 천억원 가까운 예산이 들어가는 대형 시책 사업이 됐지만 이에 대한 사업성이나 타당성, 각종 영향 평가는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고척동 야구장은 원래는 동대문 야구장 대신 각종 아마 야구 대회를 소화할 목적으로 건립이 추진됐습니다. 하지만 사상 첫 돔구장이 되면 용도가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당장 임대료가 비싸져 넉넉치 않은 아마 야구대회는 빌리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큽니다. 아마도 서울 지역 프로야구팀의 홈구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지역에 프로야구 홈구장을 두는 것이 타당한지, 장사는 잘 될지, 수익 모델은 어떻게 설정할 지, 교통은 문제가 없는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는지 사전에 조사할 게 한두가지가 아닌데 서울시는 다 무시했습니다. 서울시측에 이런 문제점에 대해 질문을 하자 "앞으로 사업을 추진해나가면서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예산 사업이란 것이 한번 시작하기로 결정되면 돌이키기 대단히 어려운데 타당성 조사를 '나중에 하면' 무슨 효과가 있죠? 아니, 다 떠나서 천억원 넘는 돈을 들여 추진하는 사업의 결과물을 어떤 용도로, 어떻게 쓸 지에 대해서 결정조차 하지 않고 무조건 시작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나요?

또 이번 고척동 돔구장이 야구계가 원하는 내용 그대로가 아니라는 점도 문제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돔구장을 가장 강력히 요구해온 KBO(한국야구위원회-한국프로야구 주관 기관)의 경우 고척동과 같이 야구장 시설만 달랑 있는-정확히 말하면 지하에 수영장과 체력단련장도 있지만 모두 야구장의 부수적 스포츠시설이라는 점을 고려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돔구장이 아니라 도쿄돔과 같이 대형 쇼핑몰과 위락시설, 숙박시설까지 갖춰 경기장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서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돔구장을 원했습니다. 그래야 프로야구 구단이 늘상 수백억원의 적자를 내는 것에서 흑자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따라서 이번 고척동 돔구장은 야구계 입장에서는 '애매'했습니다. 야구계 한 주요 인사는 "사실 고척동 돔구장 추진에 대해 처음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조금 망설였다. 서울시가 '돔구장 하나 마련해줬으니 이제 야구계의 요구를 들어준 것 아니냐'는 식으로 나올까봐 걱정이 돼서 말이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코끼리인데 당나귀를 주고 '됐지' 하는 셈이니까. 우리는 이번에 서울시가 장기적으로 3만석 이상 규모의 본격적인 돔구장을 하나 만들어준다고 약속한데 더 큰 무게를 둔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사업의 가장 큰 수혜자조차 '뜨악'해 하는 일에 천억원 넘는 돈을 쓰는 셈입니다.

사실 그동안 서울시는 야구계의 줄기찬 돔구장 건립 요청에 인색하게 굴었습니다. 1997년 LG그룹이 뚝섬에 LG돔을 세우겠다며 나섰지만 부지 매각에 대한 특혜 시비가 일자 결국 무산시켰습니다. 현대 유니콘스가 2000년 서울 연고 이전을 추진하면서 상암 월드컵 경기장 옆에 돔구장 건립을 추진한 바 있는데 역시 서울시의 소극적 태도로 인해 없던 일이 됐습니다. 민간 기업이 돔구장을 짓겠다고 나서는 것 조차 심드렁하게 대하던 서울시가 이번에는 스스로 엄청난 예산을 들여 돔구장 건립에 나선 것입니다. 왜일까요?

우선 관할 자치구인 구로구청이 워낙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구로구 입장에서는 별로 인기 없는 아마야구 대회나 여는 야구장보다는 사상 첫 돔구장이라는 명물로 프로야구 구단을 유치해 더 많은 사람을 끌어모을 수 있는 돔구장이 입맛에 맞았을 것입니다. 구로구가 돔구장을 원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여기에 야구계의 강한 요청도 더해졌습니다. 돔구장 건립 결정이 있기 며칠 전에 대한야구협회장과 KBO회장이 함께 오세훈 서울시장을 방문해서 고척동 야구장을 돔구장으로 만들어달라는 일종의 건의서를 제출했다는군요. 야구계가 일치단결해서 돔구장을 소리 높혀 외친 셈입니다.

'어! 야구계에서는 고척동 돔구장이 아니라 도쿄돔 수준의 야구장을 요구한다면서?'라고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있을텐데요, '일단 준다는 떡은 받아놓자'가 야구계의 심리였습니다. 서울시와 자치구가 별 기대하지도 않았던 돔구장 건립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괜히 '튕겼다가' 그나마도 놓치면 안된다는 것이죠. 어느 야구인 표현대로 '준다는데 안받았다가 삐지면 어떡하냐'가 야구계의 정확한 심정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의 기저에는 WBC에서 보여준 우리 야구 대표팀의 감동적인 활약이 있습니다. 돔구장 하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경기를 해온 우리나라 선수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거물 선수들로 구성된 야구 강호들을 통쾌하게 물리치는 것을 보면서 열광한 우리 국민들이 원동력입니다. 국민들이 그 어느때보다 '돔구장' 건립에 목소리를 높이게 되면서 돔구장은 이제 구청장에게든, 시장에게든, 대통령에게든 '정치적 차원에서 얘기되는 정책'이 된 것입니다.

좋습니다. 저도 야구팬의 입장으로 돔구장을 원합니다. 하지만 이왕 짓는다면 가장 최적의 규모로, 적합한 위치에, 경쟁력 있는 형태로 조성돼야 하지 않을까요? 앞서 말했듯이 고척동 돔구장은 그런 부분에 대한 심도 있는 고려가 전혀 없었다는 점입니다. '일단 모두가 원하니까 짓고 보자'입니다. 그러다보니 서울시는 3만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돔구장 건설도 장기 과제로 검토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됴코에도 하나 밖에 없는 돔구장을 서울에 두개나 둔다는 것이 적합할까요? 앞서 말한 지방의 낙후된 경기장들 대신 돔구장이 들어서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는 않을까요? 생각해볼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고척동 돔구장 건립 결정에서는 모두 눈과 귀를 닫았습니다. 지금 이순간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에 말이죠. 이제 '어~ 하다 애를 밴 심정'이라는 제 말이 이해가 가지 않나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저는 고척동에 돔구장이 들어서는데 대해 적절한지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솔직히 깊이 있게 연구하거나 취재한 내용이 아니라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는 원칙을 말하는 것입니다. 천억원 넘는 국민의 혈세를 쓰는 일이라면 이렇게 한때의 분위기에 휩쓸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결정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비단 이번 돔구장 문제 뿐 아니라 우리 정부가 수많은 일들을 이렇게 들뜬 채 결정해놓고 그 뒷감당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떠넘기는 사례가 어디 한두건입니까? 지난 2002년 월드컵을 치르기 위해 제주도 서귀포시에까지 세운 축구장들이 지금 어떻게 운영되는지, 국민들에게 얼마나 많은 부담을 주고 있는지 뼈저리게 경험하고도 전혀 교훈을 얻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이렇게 투덜거리는 것입니다.

 

[편집자주]  우상욱 기자는 1995년 SBS 공채로 입사해 사회, 정치,경제부를 두루 거치며 지금은 사회1부에서 서울시청 출입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국민생활과 밀접한 시정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차분하고 성실한 취재로 전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