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스타탄생 프로그램서 우승 뒤 아버지 생각에 눈물 쏟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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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아는 올해 26살입니다. 나이를 어리게 말하라는 충고를 많이 듣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얼굴 성형은 한 적이 없습니다. 노래하는데 필요를 못 느꼈습니다. 코가 오뚝 솟아있어 성형 했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어린 시절은 부유하게 자랐습니다. 아버지 사업이 잘 됐습니다. 피아노 레슨을 받아서 지금도 피아노는 자신 있습니다. 하지만 10대 후반부터 사정이 안 좋아집니다. 아버지 사업이 망하면서 김미아는 소녀 가장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CCTV 스타탄생 프로그램인 '싱광다다오' 우승 직전 아버지가 돌아가십니다. 우승한 뒤 김미아는 펑펑 울었습니다. 아버지 생각이 나섭니다.
지금은 어머니 남동생 이렇게 가족이 셋입니다. 남자친구는 없습니다. 한동안은 없을 것 같습니다. 노래 부르는 지금 생활이 너무 좋아서 결혼은 생각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당분간 그럴 것 같습니다. 대학은 연변대학 예술학원을 나왔습니다. 지금까지는 김미아가 저에게 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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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아는 취재진 앞에서 노래 2곡을 불렀습니다.
먼저 앨범 취입을 앞두고 연습중인 중국 노래 그리고 마야의 '진달래 꽃'을 불렀습니다. 노래를 들으면서 전율을 느꼈습니다. 노래 잘한다는 표현을 어떻게 더 잘 할까요? 고음처리는 대단했습니다. 얼마나 올라가는 지 시험해보고 싶은 충동도 느꼈습니다. 전문가도 아닌데 어설픈 그녀의 노래 실력 평가는 그만 하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CCTV의 '싱광다다오'를 이해해야합니다. 한국의 전국노래자랑과 자주 비교합니다. 하지만 아주 다릅니다. 주 단위, 월 단위, 분기 단위까지 세 번의 우승을 해야 연말 결선에 출전할 수 있습니다.
전국 노래자랑과 다른 것은 처음 출전 때부터 엄격한 사전 심사로 어느 정도 수준의 인물만 참가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이 가수 지망생이거나 무명 가수들입니다. 노래만 잘해서도 안 됩니다. 연기도 해야 하고 춤도 잘 춰야합니다.
이 프로그램에 김미아는 우승을 전제로 출전합니다. 그렇게 자신이 있었습니다. 대회 수상은 싱광다다오 뿐만 아닙니다. 연길 출신인 김미아는 베이징에 오자마자 2005중국인 외국노래 부르기 대회에서 수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상이 하나 있습니다. 2008년 4월 중국 정부가 주관한 'CCTV 청년가수대회'입니다. 김미아는 베이징 민간대표로 출전합니다. 우승과 준우승은 군 대표로 나온 가수가 받았습니다. 물론 대회는 전국으로 중계됐습니다. 하지만 최고 인기는 우승 준우승자보다 김미아였습니다. 출중한 노래 실력 때문입니다.
이후 출연 섭외가 이어졌습니다. 성공은 문밖에 와 있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다음달 12일 사천대지진이 일어납니다. 이후 중국 TV에서 연예 프로그램이 사라졌습니다. 희생자 추모 등을 위해서 중국 정부가 내린 조치입니다. 그해 7월 김미아는 싱광다다오에 출전합니다. 그리고 올해초 우승때까지 각고의 가수 지망생의 생활을 계속해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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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아가 소속한 기획사인 '백첩문화예술유한공사'는 조선족 라성철 씨가 이끌고 있습니다. 라 사장은 조선족 남성 4인조그룹인 아리랑 그룹을 만든 사람입니다. 중국에서도 꽤 성공했고 한국에서도 활동했다고 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무실은 베이징 북쪽 대학가가 모여있는 해정구의 한 아파트에 있습니다. 이곳에 월드컵 가수로 유명한 미나가 속해있습니다. 미나의 중국 활동을 맡아서 기획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김미아는 라성철 사장에게 무작정 자신의 노래를 담은 테잎을 보냈습니다. 김미아의 가수로의 운명은 이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김미아는 이제 라사장의 보물이 됐습니다. 중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출연 섭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미아를 취재하기전 걱정이 있었습니다. 아리랑을 불렀는데 정작 우리말은 잘 하는 지가 문제였습니다. "우리말도 못하는 사람이 아리랑을..."은 잘 안어울리는 조합이었습니다. 하지만 김미아는 유창한 한국말을 뽐냈습니다. 연변 사투리도 없었습니다. 조부님이 청나라때 함경도에서 연변으로 오셨다고 하니 이민 3세대인 셈입니다.
예전에 미국 이민 2세대인 미국의 유명 여류작가 이혜리 씨와 연변지역 취재를 같이 한 적이 있습니다. '할머니가 있는 풍경'이라는 소설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이혜리 씨는 한국말을 잘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조선족들을 보면서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말했습니다. 3세대가 넘도록 우리의 문화 전통을 완벽하게 지키며 살고 있는 모습이 충격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김미아는 색동저고리 입고 아리랑 부르기를 좋아하는 조선족임을 자랑했습니다. 그리고 한번도 가본적은 없지만 말이 통하는 동포의 나라 한국에도 가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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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995년 SBS에 공채로 입사한 보도국 표언구 차장은 사회부와 정치부, 국제부 등을 거쳐 2008년부터 베이징 특파원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의 실상을 알리며 큰 충격을 준 다큐멘터리 '이용운 일가의 북한탈출'을 취재하기도 했던 표 기자는 선이 굵고 의미있는 기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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