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성 제고' 미국 압박에 강경 대응
미국 당국의 '은행비밀주의 철폐' 요구를 받아온 스위스 은행이 차라리 미국인 고객의 계좌를 없애겠다는 강수를 뒀다.
13일 영국 일간 가디언 인터넷판에 따르면 스위스 2위 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CS)의 미국인 고객 2천500~5천명은 이 은행 비밀계좌에 30억스위스프랑(약 3조5천억원)을 예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미국인 고객은 지금까지 국세청에 계좌를 신고하지 않았지만 최근 CS 측으로부터 미 당국에 자신의 계좌 정보를 공개하는 산하 계열사 '프라이빗 어드바이저즈'로 계좌를 옮기든가, 계좌를 해지하든가 양자택일하라는 통고를 받았다.
이 같은 조치는 투명성 제고를 압박하고 있는 미 당국과 은행비밀주의 전통을 고수하려는 스위스 은행의 대결 양상을 반영하고 있다.
CS로서는 특히 스위스 최대 은행인 UBS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기도 하다.
미 정부는 UBS를 상대로 탈세 혐의가 있는 미국인 5만2천명의 명단을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었다.
이에 UBS는 소송 대신 7억8천만 달러의 과징금을 납부하는 동시에 미 국세청에 약 250명의 미국인 고객 정보를 넘겨주기로 합의했으며 미국인의 세금 탈루를 도왔다는 의혹을 받았던 미국법인 웰스인터내셔널의 마틴 리히티 대표를 해임하기도 했다.
UBS의 '굴복'은 미국과 스위스 정부 간 긴장도 고조시켰다.
스위스 정부는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2일 조세피난처 블랙리스트를 발표하면서 스위스를 '회색' 국가군에 포함시킨 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 그룹은 현재 국제기준을 준수하고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 준수하겠다고 동의한 국가들이다.
CS의 최근 움직임은 스위스 안팎의 이 같은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CS 측은 미국인 고객에 대한 조치에 대해 논평을 거부하면서 "우리는 모든 법과 규정, 정책에 따라 미국 고객들에게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미국 정부는 이달 스위스와 조세협정 개정 협상을 앞둔 가운데 스위스 은행의 비밀주의에 여전히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미 법무부는 UBS 직원들이 암호화된 노트북을 사용하고 미국 고객을 만날 때 호텔을 정기적으로 바꾸며 아무런 표시가 없는 봉투를 사용하는 등 조세 회피를 원하는 이들에 '호감'을 끄는 행태를 보여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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