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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기생은 종합 엔터테이너이자 전통문화의 계승자였고, 조선조 철저한 신분사회에서 남자와 같은 일을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여성 집단이었다.
또한 기생은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영혼의 뮤즈(MUSE)였다. 그들은 당대 문화예술의 수준을 대변하는 예술가 들이었으며 당대 여성들의 삶에서 가장 멀리까지 나간 자유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구한말을 거치며 철저히 왜곡되기 시작한다. 일제는 '공창제도'를 만들어 매춘부와 예인 집단이었던 기생을 함께 묶어버렸고 그때부터 수많은 오해와 편견이 시작된다.
반면 게이샤는 여전히 오늘날 까지도 예인 집단으로 추앙받으며 살아남았다.
기생들은 겉만 화려하게 치장한 것은 아니었다. 시서화는 물론, 춤과 노래 등에 능했던 기생들은 사대부들과 시재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외부인 여인들이었다.
그들의 시재는 그냥 나온 것 아니다. 이들은 장학원(조선시대 궁중의식에서 음악과 춤을 담당했던 곳)에소속돼 오늘날 '예술 영재교육'과도 같은 집중훈련을 받았다.
이러한 전통은 구한말까지 이어지는데 관기사라진 뒤에는 평양기생학교와 같은 사설 기생학교가 그 역할 대신했다. 기생수업은 총 3년 과정으로 예술, 산술은 물론 외국 예술까지 섭렵했다.
당대 공연 대중예술 담당했던 기생들은 라디오, 잡지, 영화가 보급되면서 '대중 스타'로 급부상했다.
기생들의 운명이 험난해진 건 관기제도가 폐지되면서부터다. 이후 기생들이 설 무대는 요리집 뿐이었다. 거기에 일제가 만든 공창제도가 더해지며 기생 이미지 철저히 왜곡 된다. 기생들은 전통예술이 빠진 유녀라든지 천대 받는 사람들로 인식이 바뀌었다.
(SBS인터넷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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