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굳게 닫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돈을 받은 사실을 전격 시인하며 국민에게 사과했다.
전직 국회의장들의 잇단 소환과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전격 체포에 이어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까지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등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노 전 대통령은 본인의 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에 올린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정 비서관이 박 회장에게서 수억 원을 받은 혐의에 대해 "저의 집(부인 권양숙 여사)에서 부탁하고 받아 사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데 대해 온 국민이 어마어마한 충격에 빠졌다.
노 전 대통령은 "더 상세한 이야기는 검찰의 조사에 응해 진술하고 응분의 법적인 평가를 받겠다"고 했지만 국민적 허탈감과 배신감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의문이다.
비록 정치는 아마추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도덕성과 개혁의지만큼은 자부한다던 참여정부였기에 충격은 더 크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권력의 원천인 대통령 아내마저 '검은 돈'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에 국민은 한편으로 경악하고 한편으로는 분노하고 있다.
위에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모두 썩어 버린 총체적 부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어쩌다 나라가 이 지경까지 타락했느냐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청탁하다 걸리면 패가망신시키겠다던 노 전 대통령이 아니었던가.
노 전 대통령은 권 여사가 돈을 받은 것은 미처 갚지 못한 빚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돈거래는 대통령 재임기간인 2005~2006년 사이에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이 알았다면 포괄적 뇌물죄가 적용되고, 몰랐다면 권 여사와 정 전 비서관이 알선수재 혐의로 처벌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자칫하면 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통령 내외가 비리 혐의로 사법 당국의 수사를 받는 '치욕의 기록'을 남기게 됐다.
일각에서는 권 여사가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 회장에게서도 돈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니 더 엄청난 파고가 밀어닥칠지도 모를 일이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사과글을 참고하고 그 내용에 대한 조사 여부는 정 전 비서관 조사를 끝낸 뒤 결정하겠다고 밝힌 만큼 사실 여부는 조만간 판명될 것이다.
박연차 게이트라는 '판도라 상자'의 뚜껑이 드디어 열림에 따라 전직 대통령들이나 자식들이 사법 처리된 과거의 아픔이 또 되풀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실체적 진실이 드러난다면 불행하고 슬픈 일이지만 그야말로 법대로 엄정히 처리해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은 "응분의 법적인 평가를 받겠다"고 했지만 위법 사항이 드러난다면 법적인 평가가 아니라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검찰의 칼날도 과거 정권, 즉 '죽은 권력'에만 예리할 게 아니라 '살아 있는 권력'에도 예외를 둬서는 안 된다.
만에 하나라도 병든 싹이 엿보인다면 가차없이 잘라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끝난 뒤에도 이런 일이 되풀이돼 국민에게 더 없는 실망을 안겨주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된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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