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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물 터진 마천루…너도 나도 '랜드마크'

우상욱

입력 : 2009.03.30 16:58|수정 : 2009.03.31 14:59


얼마전 정부가 '제2 롯데월드 건립 허가'를 사실상 공식화했습니다. 국무총리실 주재로 열린 정부 행정조정협의회의 실무협의회는 '제2 롯데월드'가 건립되더라도 서울공항의 비행 안정성에는 별 문제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이에따라 정부는 늦어도 다음달 쯤에는 행정협의회 본회의를 열어 건립을 허용할 전망입니다. 롯데가 10년 넘게 초고층 빌딩 건립을 준비하며 지반 공사를 상당 부분 진척시켜온 만큼 2014년까지는 560미터 넘는 112층의 마천루가 우리나라에도 등장할 전망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30일 서울시는 대우건설을 중심으로 한 컨소시엄과 상암DMC에 무려 130층짜리 빌딩을 건립하는 협약식을 맺었습니다. 서울시가 앞장 서 강력히 추진해온 초고층 프로젝트이니 만큼 제2 롯데월드와 백층 이상 초고층 선두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가하면 용산 철도창부지에 추진되고 있는 620미터로 현존 계획 가운데 최고층인 드림타워의 설계공모당선작 발표도 다음달에 이뤄질 예정입니다. 최근에 현대차그룹이 뚝섬 삼표레미콘부지에 역시 110층짜리 사옥을 건설하겠다고 공식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밖에도 강남구 삼성동 한전부지에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114층 규모의 그린게이트웨이 빌딩, 송파구 잠실 종합운동장 부지에 세우려고 하는 121층의 국제컨벤션 센터까지 합하면 서울에만 백층 이상 마천루가 6개나 건립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따지면 인천 송도지구의 '151인천타워'(600m), 부산 '롯데월드타워'(510m), 역시 부산의 'WBC솔로몬 타워'(550m) 등이 이미 건립허가를 받고 공사를 준비중입니다. 이 모든 마천루가 현실화될 경우 오는 2020년 예상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 20개 가운데 한국에서만 10개 가까이 솟아오르게 됩니다. 과연 '다이나믹 코리아'라는 감탄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백층 이상 마천루들이 우리에게 세계적인 지명도와 관심, 관광객과 투자금을 가져다줄 '축복'일까요? 아니면 돈을 엄청나게 먹는 애물단지로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게 될 '재앙'일까요? 지금 시점에서 그 누구도 단정지어 말할 수 없습니다. 이 건물들이 완공될 시기의 경제 상황과 산업 구조, 세계적인 경기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모든 초고층 빌딩이 대박을 불러올 것이라는 꿈은 '환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선 초고층 빌딩은 경제적인 효율성의 차원에서만 봤을 때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선택입니다. 초고층 빌딩 하나를 짓는데 드는 건설비는 대략 1조5천억원에서 2조원입니다. 같은 면적의 40층 이하 빌딩 2개를 짓는데 들어가는 돈의 2~3배가 더 든다는 계산입니다. 100층 이상의 건축물이 강풍이나 악천후, 지진 등 각종 외부 충격에도 견디기 위해서는 첨단 공법과 특별한 건축 자재를 써야 할 테고 당연히 더 많은 건축비가 들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초고층 빌딩 개발업자가 수지를 맞추려면 임대료나 분양비를 2~3배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비싸게 책정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비싼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초고층 빌딩에 들어오는 개인이나 기업은 단순히 주거나 업무 공간을 확보하는 것외에 또다른 가치를 얻으려는 것입니다. 이름하여 '랜드마크'죠. 서울, 또는 한국에서 누구나가 알고, 단순히 구경하기 위해서라도 가보고 싶고, 나라를 대표해 전세계 관광객까지 끌어모으는 빌딩에 입주한 기업, 또는 개인이라면 그 이미지를 크게 높일 수 있습니다. 이런 무형의 가치를 얻기 위해서라면 임대료가 2~3배 일지라도 감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필수적인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희소해야 합니다.

백층 넘는 빌딩이 하나일 경우 진정한 랜드마크로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습니다. 하지만 2개, 3개…6개로 늘어나면 그중에 가장 높거나, 아름다운 1~2개의 빌딩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그저 높은 빌딩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런 곳에서는 '랜드마크'로서의 가치를 누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입주하려는 사람이나 기업이 없겠죠.

사실 세계의 랜드마크였던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도 초기에는 '엠프티(empty,비어있는) 스테이트 빌딩'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였습니다. 대만의 랜드마크인 '타이베이 101' 역시 완공 5년이 가까운 지금까지도 30% 넘는 공실로 골치를 앓고 있습니다. 그만큼 초대형 건물을 채우기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랜드마크의 가치마저도 없는 초고층 빌딩의 경우 '공실'문제는 대단히 심각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전문가들은 특히 포디엄 부분의 중복 문제에 대해 우려를 많이 합니다. 포디엄이란 초고층 빌딩의 1~10층 부분, 즉 저층 부분을 말합니다. 초고층의 메리트가 없는 부분이지만 건물의 연면적에서는 대단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라 이 부분을 어떻게 활용할 지가 초고층 빌딩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합니다. 대부분은 가장 방문객의 통행과 접촉이 빈번한 공간이기 때문에 쇼핑이나 공연 등 상업, 문화 시설을 배치하는 계획을 짜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유동인구를 자랑할 초고층이니 만큼 이곳에 가게를 낸다면 쉽게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이 역시 희소할 때의 얘기입니다. 생각해보세요. 현재 계획으로만 따지면 테헤란로를 따라 삼성동에서 잠실역 사거리까지만 3개의 100층 이상 초고층 빌딩이 세워집니다. 채 2킬로미터도 안되는 구간에 코엑스몰과 같은 대형 규모의 상업, 문화 시설이 기존 코엑스말고 3개가 더 생기는 것입니다. 거의 유사한 개념의 4개의 코엑스몰을 무슨 수로 서로 다른 브랜드의 상점으로 다 채우죠? 결국 거의 똑같은 물품을 파는 성격이 중복되는 4개의 대형 공간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서울 시민이 다 이 구간으로만 몰릴 것도 아닌데 4개의 대형 상업, 문화 시설이 다 수익을 낼 수 있겠습니까?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도 대략 난감입니다.

초고층 빌딩의 상업성만 따지고 보더라도 '한계'가 분명해 보입니다. 교통문제, 환경문제, 주거문제 등 다른 심각한 문제들은 아예 논외로 하더라도 무분별한 초고층 빌딩 건설붐은 바벨탑 쌓기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100층 이상 초고층 빌딩은 적정수만 있어야 하고 서울이라는 도시 규모를 놓고 볼 때 그 수는 1~2개, 많아도 3개를 넘을 수 없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세계의 금융 중심지로 전세계인들이 몰려드는 뉴욕과 무려 6개의 초고층 빌딩을 쌓다가 총체적인 경제 위기에 빠진 두바이를 제외한다면 세계의 거대 도시들이 대부분 1~2개의 초고층 빌딩만 갖고 있는 것이 그 증거라고 설명합니다.

전문가들은 또 초고층 빌딩은 원활한 접근과 출입을 위해서 2개 이상의 지하철 노선이 겹쳐지는 교통의 중심지여야 하고 주변 지역의 일조와 경관을 헤치지 않기 위해 큰 강가나 호수가에 위치해야 하며 기왕에 비지니스나 상업 지역이어서 물산의 집적지여야 성공적으로 기능할 확률이 높다고 지적합니다. 이 기준에 비춰 봤을 때 현재 추진되는 6개 가운데 적합한 입지조건을 갖춘 곳은 채 2곳도 안되는 것 같군요.

초고층 빌딩을 가장 발빠르게 추진하고 있는 기업체의 임원을 만나서 이런 문제점을 지적해봤습니다. 그러자 이 임원은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며 서울에 결국에 들어서게 될 초고층 빌딩은 3개를 절대 넘지 않을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2개도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단언했습니다. 이 임원은 "지금은 마치 옛 미·소의 군비경쟁처럼 서로 기선을 제압해 다른 한쪽의 항복을 받기 위해 초고층 경쟁을 벌이는 형국과 같다. 하지만 일단 한 곳에서 실제로 초고층 빌딩 건립에 들어가 사업을 선점하면 자연스럽게 나머지 프로젝트들은 사장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앞서 상술한 경제 논리에 따라 시장에서 정리될 것이라는 설명이죠. 하지만 미·소가 핵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던 것처럼 합리적인 판단과 상관없이 각 지자체와 사업자들이 무조건 '고'를 외쳐 실제 5~6개의 100층 넘는 빌딩이 우후죽순처럼 세워지면 어쩌죠? 제 기억으로는 그와 유사한 사례가 없었던 게 아닌데요. 

초고층 빌딩은 성공할 경우 그 주변 일대까지 일약 서울의, 아니 한국의 중심지로 우뚝 올라서게 할 수 있고, 현존하면서 눈에 뚜렷이 보이는 결과물로 위용을 뽐낼 수 있는데다, 사업에 들어가기만 하면 5년 안에 승부를 볼 수 있는 사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지역 자치단체장들이나 정치 지도자들이 눈독을 들입니다. 또 민간업자들은 핑크빛 미래를 담보로 투자만 끌어낸다면 향후 10년 가까이의 벌이를 확보할 수 있는 만큼 무조건 추진하려는 유인을 갖게 됩니다. 다시 말해 '시장의 실패'를 가져올 여러 요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분석해봤듯이 초고층 빌딩이 낙원을 향한 계단이라는 보장은 전혀 없습니다. 자칫 거대한 애물단지로 전락해 그 지역의 경제를 나락으로 빠뜨리는 자살바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늘 높이 치솟고자 하는 욕망은 우리 인류의 역사에 뿌리 깊은 본능입니다. 하지만 이카루스의 날개나 바벨탑의 결말이 해피엔딩이었던가요? 제 기억은 아닌데요.

 

[편집자주]  우상욱 기자는 1995년 SBS 공채로 입사해 사회, 정치,경제부를 두루 거치며 지금은 사회1부에서 서울시청 출입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국민생활과 밀접한 시정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차분하고 성실한 취재로 전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