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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테러, 예고된 재앙?

이민주

입력 : 2009.03.25 18:31


한국인이 다시 국제 테러에 희생됐다. 그것도 사흘 간격으로 두 번이나 공격당했다. 2007년 7월 모 교회 선교단원 23명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돼 2명이 살해된 사건 이후 1년 8개월 만이다.

 1차 테러는 한국 시각으로 3월 15일 자정 무렵 예멘 동남부의 고대 유적지 시밤 지역에서 일어났다. 전망 좋은 언덕에서 낙조에 물든 유적을 감상하던 우리 관광객 일행 사이로 괴한 한 명이 들어와 몸에 두른 폭탄을 터뜨렸다. 한국인 4명이 목숨을 잃었고 3명이 다쳤다.

그리고 사흘 뒤, 이번에는 예멘의 수도 사나 한복판 도로에서 또다시 자폭 테러가 일어났다. 1차 테러 수습을 위해 한국에서 날아온 정부 대응팀과 유족이 표적이었다. 천만다행으로 테러범이 폭탄을 터뜨리는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자신만 폭사했을 뿐 인명 피해는 없었다. 

두 사건에 대해 예멘 당국은 공식 수사 발표를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두 건의 자폭 테러 모두 10대 미성년자가 저질렀으며 알 카에다가 배후라고 언론에서 흘리고 있다. 폭탄 벨트를 두르고 테러 대상 근처에서 자폭하는 방식이 알 카에다의 전형적인 수법이라는 점, 최근 예멘 알 카에다 지부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대대적인 압박을 피해 흘러 들어온 사우디아라비아 지부와 통합해 세력을 부쩍 키웠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두 지부가 '아라비아 반도의 알 카에다'라는 단일 조직으로 통합해 첫 위력 시위를 벌였다는 분석이다.

관심은 이번 테러가 한국인을 겨냥한 공격이냐에 모아진다. 처음 테러를 당했을 때만 해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공격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즉 알 카에다의 세력 확장에 위협을 느낀 예멘 정부가 대대적 소탕 작전에 나선 상황에서 외국인에 대한 테러를 감행함으로써 정부에 타격을 주자는 의도였다는 추측이다.

하지만 정부 대응팀과 유가족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 이어지면서 한국인 표적설이 설득력을 얻는다. 설령 첫 번째 테러는 한국인을 의도적으로 겨냥하지 않은 것이었을지라도 이 사건에 쏠린 국제적 관심을 목도한 알 카에다가 좀더 판을 키우기 위해 작심하고 우리 정부 관계자와 유족을 노렸을 수 있다. 아니면 외신을 통해 들리는 예멘 보안 당국의 판단처럼 아예 처음부터 한국인을 노리고 일련의 테러를 기획했을 개연성도 높아 보인다.

무엇보다 한국이 이라크에 병력을 파견한 국가라는 점이다. 아무리 평화 재건 임무를 기치로 내건 비전투병 위주였다 할지라도 한국이 미국·영국에 이은 3위 규모의 파병국이라는 점에서 알 카에다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음은 짐작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사마 빈 라덴의 오른팔이자 알 카에다 2인자인 알 자와히리는 2004년 자이툰 부대가 아르빌에 파병된 직후 미국의 동맹인 한국도 테러 목표임을 분명히 했다. 5년 전 경고가 이번에 예멘 땅에서 실행됐을지 모를 일이다.

더욱이 한국이 미국 요청에 따라 아프가니스탄 재파병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이번 연쇄 테러로 한국인 사이에 불안감을 극대화해 아프가니스탄에 다시 한국군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을 법하다. 우리는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선교단원들이 피랍됐을 때 철군을 조건으로 생존자 21명을 구출했다. 최근 한국이 예멘 인접국이자 이슬람 국가인 소말리아 해역에 해적을 소탕하기 위해 청해부대를 파병한 점도 알 카에다를 자극했을 수 있다. 소말리아에 이슬람 과격 단체들이 발호하고 있고 이들이 알 카에다와 연계됐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소말리아에 파병을 결정한 한국이 눈에 거슬렸을 가능성이 크다. 관광객 4명의 목숨을 앗아간 첫번째 테러 용의자가 소말리아에서 테러 훈련을 받았다는 외신 보도도 이 추측에 힘을 실어준다.

얼마 전부터 부쩍 확대된 한국과 예멘의 협력 관계가 알 카에다의 관심을 끌었을 가능성도 있다. 공교롭게도 첫 테러가 발생하기 며칠 전, 한국과 예멘 사이의 각종 대규모 경제 협력 뉴스가 현지 언론에 봇물을 이뤘다. 한국이 예멘 개발 프로젝트에 앞으로 4년 동안 1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소식을 비롯해, 오는 6월부터 한국이 예멘으로부터 사상 처음으로 천연가스를 수입하기로 했다는 뉴스, 예멘 정부가 한국수출입은행과 1,500만 달러에 이르는 장기대출 계약에 관해 의견 접근을 보았다는 기사에 이르기까지. 양국의 교류협력이 확대된다는 사실을 접하게 된 알 카에다가 앙숙 관계인 예멘 정부와 미국의 동맹인 한국에 타격을 줄 방법을 찾았으리라는 추측은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석연치 않은 부분은 알 카에다가 이번 테러의 배후임을 스스로 밝히지 않았고, 어떤 요구 조건도 내걸지 않은 점이다. 국제 테러 전문가들은 갈수록 파편화돼 가는 테러 조직의 최근 경향에서 해답을 찾는다. 최근에는 중앙조직의 통제를 받지 않은 채 정보 수집이나 공격 대상 선정, 자금 조달 등이 세포 단위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이전처럼 테러 조직의 상부가 휘하 조직을 거느리며 대표로 요구 조건과 함께 특정 테러의 배후임을 밝히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테러 조직의 상부조차 하부 조직이 저지른 일을 모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자폭테러의 특성상 죽은 범인은 말이 없고, 자신들이 배후임을 주장하는 단체가 나타나지 않는 한 진상 파악은 어렵고 더딜 수 밖에 없다. 예멘 당국의 공식 수사 결과가 발표돼야 정확한 사건 경위와 배후가 밝혀지겠지만, 위와 같은 여러 정황과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해 볼 때 예멘에서 활동하는 알 카에다 조직의 일부가 이번 두 차례 테러에 책임이 있으며, 적어도 2차 테러에서는 한국인을 의도적으로 겨냥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예멘 당국의 잠정 결론이 사실일 경우, 자폭 테러 두 건을 모두 10대가 저질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독한 가난과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암울한 현실에서 "순교자가 되면 천국에서 수십 명의 미인들과 영생을 누릴 수 있다" 라고 코란을 호도하는 무리의 허황한 꾐에 빠져 무고한 인명을 대상으로 자폭을 서슴지 않는 미성년자가 양산된다는 점에서다. 사업이나 여행, 학업 등으로 중동을 찾는 한국인이 늘고 있는 요즘 10대 테러범의 대거 등장은 심각한 위협이자 재앙이 아닐 수 없다. (3월 28일자 시사IN 기고문)

  [편집자주] 한국 언론을 대표하는 종군기자 가운데 한사람인 이민주 기자는 1995년 SBS 공채로 입사해 스포츠, 사회부, 경제부 등을 거쳐 2008년 7월부터는 이집트 카이로 특파원으로 활약 중입니다. 오랜 중동지역 취재경험과 연수 경력으로 2001년 아프간전 당시에는 미항모 키티호크 동승취재, 2003년 이라크전 때는 바그다드 현지취재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