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23일 예산집행 실명제 도입을 지시한 것은 예산집행에 관한 비리가 위험 수위에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극심한 경기 침체 속에 정부가 대규모 재정 지출로 사회 소외계층 지원에 나서고 있는데 정작 일부 공무원들은 복지 보조금과 예산을 횡령하고 있어 이를 철저히 막을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특히 복지 공무원의 비리에 대해서는 횡령금의 두 배까지 추징하고 예산집행 실명제를 통해 꼭 필요한 곳에 나랏돈이 쓰이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 연이은 복지비리..정부 신뢰 상실
정부에서는 소외 계층을 돕겠다고 목소리를 높여왔지만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저소득층을 울리는 일이 빈번한 실정이다.
지난달 서울 양천구청 하위직 공무원이 장애인 보조금 수십억 원을 빼돌린 데 이어 지난 10일에는 전남 해남군청과 강원 춘천시청 공무원이 저소득층과 노인, 장애인 등에게 지원되어야 하는 예산 10여억 원을 횡령했다가 적발됐다.
수법도 거의 똑같다. 가족 명의로 차명 계좌를 만들어 몇 년에 걸쳐 매달 복지 지원금을 가로챘다. 이처럼 장기간 횡령을 해도 근무하는 동료조차 몰랐다는 것은 정부의 행정.감시 시스템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이는 돈을 내려 보내는 중앙 정부와 실제 예산을 집행하는 지자체 사이의 연결고리에서 생긴 문제다. 복지 지원금 항목은 무수히 많은데 어떻게 배분되는지 감시할 체계도 없으며, 일은 많은데 담당 공무원 수도 부족한 형편이다.
◇ 실명제 도입..횡령금 두배 추징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방안은 장기적으로는 통합 복지전달체계의 구축이다. 단기적으로는 예산 실명제 도입과 횡령 금액의 두 배 추징 등으로 비리 가능성을 사전에 막는 것이다.
정부는 생계, 자활, 보육 등 여러 분야로 나뉜 복잡한 복지서비스가 올 하반기에 통합되면 중복 또는 부당 수혜자가 없어지고 공무원의 부정 개입 여지도 줄어들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단기 처방이 시급하므로 예산 실명제가 도입된다. 그동안 예산 집행은 중앙에서 교부금 형식으로 지자체에 할당하면 지자체 임의로 쓰기 때문에 정확한 내역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이에 따라 중앙 정부에서 교부금을 주는 단계부터 관련자들의 실명을 기록을 남겨 최종 지자체 실무자까지 알 수 있도록 해 공무원의 책임감을 강화하고 비리가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특히 내달 추경안이 통과되면 수조 원 규모의 뭉칫돈이 지자체로 내려가기 때문에 실명제를 통해 적절한 곳에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예산 가운데 지방 교부금 같은 것은 일단 지자체에 넘기면 그 사용처를 확인하기가 매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면서 "중앙에서부터 지자체 말단까지 담당 공무원의 실명을 기록하면 보다 책임감 있는 예산 집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부는 복지예산 집행 가이드라인을 각 지자체에 전달할 방침이다. 비리가 적발되면 해임과 동시에 검찰에 고발하고 횡령금의 두 배까지 물어내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총리실 중심의 관계 기관 합동으로 복지지원체계가 제대로 전달되는지 현장 점검을 한다. 지자체의 부단체장을 단장으로 하는 복무기강 점검단을 구성해 지원금 횡령과 유용 등에 대한 현장감시를 강화한다.
지자체의 보조금 지급 현황에 대한 상시 점검, 복지급여 지급부서와 회계지출 부서 분리, 지자체 담당 직원에 대한 정기인사 교류 등을 복지보조금 관리를 강화할 계획이다.
아울러 감사원이 상반기 중 특별 감사를 통해 복지 체계 전반을 자세히 조사하기로 해 지자체 공무원의 비리가 상당 부분 일소될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 새는 구멍 막을 수 있을까
이처럼 대통령까지 나서 복지 및 예산 집행 관련 비리 척결을 외치고 있지만 지자체 공무원의 복지 비리를 근절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전국의 모든 지자체를 수십 명의 중앙정부 인력으로 제대로 점검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현행 보조금 수혜 대상자를 선정할 때도 심사 과정 자체가 부실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데 일선 시.군당 수천 명에 달하는 수혜 대상자를 일일이 점검하는 것은 공무원 몇 명으로는 벅찬 실정이다.
정부는 상시 점검을 외치지만 표본 감사에 그칠 가능성이 크고 가짜 수혜자가 감사 대상에 포함될지도 불투명하다.
지자체들은 복지 비리가 터진 뒤에야 직원들을 대상으로 청렴 교육을 하고 감사 횟수를 늘리겠다는 대책을 내놓는데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현행법상 지방교부금은 자치단체장의 판단에 따라 임의로 쓸 수 있기 때문에 비리 방지를 위한 지자체의 적극적인 의지가 중요하다.
결국 중앙 정부에서 최종 수급자로 이어지는 통합 복지전달체계의 조기 구축이 답이 되겠지만 비리 적발 때 손해배상 청구 등 강력한 제재가 뒤따른다는 점도 각인시키는 게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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