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사회

'정몽준 재판'은 짜고친 고스톱?

김요한

입력 : 2009.03.17 21:52|수정 : 2010.09.10 10:05

음모 결과일까 합리적인 선고일까?


정몽준 의원의 1심 선고가 있었습니다.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는 '80만 원' 선고가 나왔기 때문에 방송, 신문들에게서 얼마나 조명을 받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혹시라도 궁금해하실 분들이 계실까 싶어 내용을 자세히 올려보겠습니다.

우선 사건의 개요부터 정리를 해보죠.

모두가 아시는 것처럼 정 의원은 지난 2008년 4월 9일 실시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동작을 선거구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습니다.

문제가 된 건 총선 유세에서 정 의원이 했던 발언 때문인데요. 정 의원은 2008년 3월 27일 오후 사당역 앞에서 유세를 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 동작을구에 많은 주민이 원하시는 사당동과 동작동의 뉴타운을 만들겠습니다. 흑석동에 뉴타운 개발이 지연되지 않고 조속히 실현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울산 촌사람인데 울산에서 오자마자 오세훈 시장을 만나서 사실은 이런 얘기 다하고 오세훈 시장께서도 흔쾌히 동의하셨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실제로 정 의원은 열흘 전인 3월 17일 오후, 김우중 동작구청장과 함께 서울시청을 방문해 약 15분 동안 오세훈 시장과 면담을 했더랬습니다.

이 자리에서 정 의원은 '동작동과 사당동을 뉴타운 지역으로 추가 지정해달라'고 요구했고요.

오 시장은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고 기존 뉴타운 사업이 진전되는 상황이 되어야 뉴타운 추가지정을 검토할 수 있고, 만약 이런 두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되어 뉴타운을 추가 지정할 경우에는 동작, 사당지역을 뉴타운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취지로 답합니다.

쉽게 말하면, 면전에서 딱잘라 거절할 수는 없고 하니.. 최대한 에둘러서 완고하고도 정중하게 '쫌 어려운데요' 이렇게 거절을 했던 거지요. 정 의원이 이 대답을 듣고 "내 요구를 수락했구나"하고 느꼈을까요? 글쎄요.. 상식적으로 생각하자구요. ^^

                                            + + + + + + + + + + + + + + + + +

기억이 나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이 발언은 후에 언론 보도로 문제가 됐고요, 유세 초반 이런 발언으로 세간이 시끄러워지자 정 의원은 두 세번 정도 이런 취지의 연설을 하다가 나중에는 그만둡니다. 그리고 여차저차 유세가 진행되고 큰 표차이로 당선이 되죠.

하지만 민주당이 정 의원을 고발했고, 정 의원은 결국 지난해 9월 검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혐의는 <허위 사실을 공표해서>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것이었는데요.

검찰은 어떻게 결론을 내렸을까요?

검찰은 <일부 과장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정 의원이 오 시장이 전반적으로 동작 뉴타운을 건설하는데 동의한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면서 정 의원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민주당이 가만히 있었을까요?

짐작하시는대로.. 말도 안된다고 발끈하며 재정신청을 했습니다. 자.. 이쯤되면 <재정신청이 뭐야>하고 머리를 긁적이시는 분들이 나올법 합니다. (하하. 저도 그랬으니까요.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재정신청이란 쉽게 말하면.. 고소나 고발이 있는 특정 범죄사건을 검사가 불기소 처분했을 때, <억울하니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고등법원에 불복하는 걸 말합니다.

그럼 고등법원은 관할 지방법원에다 <재판을 하라>고 결정을 하게되고, 그러면 형사소송법상 그 사건에 대해 공소가 제기된 것으로 보는 거죠. (기소, 공소.. 이런 것에서 막히시는 분들은.. ㅋㅋ 검색창을 활용해 주시는 센스를)

어쨌든 그래서 법원은.. 지난 1월 5일, "오 시장은 부동산가격 안정 등의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 뉴타운을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을 설명했을 뿐, 뉴타운 사업에 동의한 바 없다"며 검찰이 정 의원을  기소하도록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재판이 진행됐고, 오늘(17일) 선고가 난 것이죠.

                                            + + + + + + + + + + + + + + + + +

길고도 긴 판결문을 짧게 요약해 보겠습니다.

정 의원측은 총 4가지 이유로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1. '오 시장이 동의했다'는 발언은 정 의원의 행위가 아닌 오 시장의 행위다.

2. 발언 내용은 <사실의 적시>가 아니라 <의견의 표명>이다.

3. 오 시장이 뉴타운 추가지정 필요성에 대해 동의했으므로 허위사실이 아니다.

4.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을 듣고 말한 것이니 고의성이 없었다.

다소 말장난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 하기도 하고 그렇지요?

그렇다면 법원은 이 4가지 주장에 대해 어떻게 판단했을까요.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4가지 모두 유죄라고 봤습니다.

1. 직접행위가 아니라 제 3자 말을 인용하는 경우에도 선거인의 올바른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면 후보자의 행위로 보는 게 법의 취지에 맞다.

2. 당시 시기, 장소, 경위, 배경 등을 살펴볼 때, 선거구민들이 뉴타운 지정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점 등을 고려하면 단순한 의견 표명을 넘어 구체성을 가진 사실의 적시라고 할 수 있다.

3. 연설 내용은 오 시장이 뉴타운 추가지정의 '필요성'에 동의했다기 보다는 뉴타운 추가지정 자체에 대해 동의했다고 받아들일 수 있고, 당시 오 시장의 대답도 거절하는 취지의 발언이었으므로 허위사실에 해당한다.

4. 구체성이나, 파급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대화 내용이나 당시 대화 분위기, 정치경력, 사회 분위기 등을 고려하면 오 시장의 발언이 의례적인 인사나 공감 정도에 불과했다는 걸 정 의원이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으므로 미필적으로나마 고의성도 인정된다.

                                            + + + + + + + + + + + + + + + + +

재판 경험이 미천한 저로서는,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보는 동안 솔직히 '호오.. 이 정도 되면 형이 좀 세게 나오는 거 아냐?'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재판부는 벌금 80만원 형을 선고했지요. 선고의 이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정 의원의 추가지정 요청이 실제로 있었고, 오 시장에게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대답을 듣기도 했으므로 연설내용 전부가 허위사실은 아니고,

2. 원고 없이 진행된 연설에서 해당 내용은 30분 중 1분 정도 나왔으며 선거인들을 계획적으로 속일 의도로 한 발언이라고는 보이지 않고,

3. 선거 유세 초반에 문제가 되자 1, 2회 정도 더 하다 언론 보도로 문제가 되자 그 뒤에는 이 내용을 이야기 하지 않았고,

4. 당시 경쟁 후보자였던 민주당 정동영 후보도 뉴타운 개발을 공약했고, 18대 총선 서울 지역 출마자들이 대부분 뉴타운 개발 공약을 내세웠었고,

5.오 시장도 서울시장 선거 당시 뉴타운을 50개까지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가 (현재 서울시에서 뉴타운으로 지정된 곳은 35곳 입니다.) 여건이 악화되자 입장을 바꿨고,

6. 정 의원이 정동영 후보자와 상당한 표차로 당선됐는데 동작동과 사당동에서 정 의원의 득표율은 다른 지역보다 오히려 낮았고,

7. 20년 이상 국회의원으로 재직하면서 선거법을 위반한 사실이 없고, FIFA 부회장으로서 스포츠 외교에 많은 공헌을 해 온 점 등을 고려해 보면 당선무효형을 선고하는 것은 과중하다고 보인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 + + + + + + + + + + + + + + + +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현직 여당의원에게 (아무리 재정신청을 받아들였다고는 하지만) 법원이 의원직이 취소될 수 있는 벌금 100만 원 이상되는 형을 선고하는 게 부담스러웠을테니 법원 체면도 살리고 비난도 피하는 <짜고치는 고스톱>이다.

뭐 이렇게 판단하시는 분들도 계신 것 같습니다. 반대로 법원의 판단이 적절했다고 보시는 분들도 있고요.

정 의원은 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제 뜻이 잘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면서도 "항소 여부는 검토하겠다"고 답하더군요.

의원직 유지가 확실한 상태에서 굳이 계속 세간의 주목을 받을 필요가 있을까, 그렇다고 반박 내용이 모두 유죄라는데 의원직은 유지되니 그냥 죄를 지었다고 인정해야 하나, 뭐 이런저런 고민이 있지 않겠습니까.

                                            + + + + + + + + + + + + + + + + +

최근 신영철 대법관 사건도 있고 해서 법원이 국민들에게 신뢰를 많이 잃었지요. 그렇다고 해도 괜히 덮어놓고 제기하는 음모론은 어째 뒷맛이 개운치가 않으니까요. ^^ 비판은 충분히 알고, 생각해 보고 하는 게 맞겠다 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사 때문에 날씨는 참 뿌였습니다만, 어느새 성큼 봄이 왔습니다. 화사한 봄 날들 보내세요. ^^

  [편집자주] '겸손과 존중'이 취재의 좌우명이라는 김요한 기자는 2006년 SBS 보도국에 입사해 사회2부 법조팀에서 활약 중입니다. 섬세하고 끈질긴 취재력과 함께 수준급 실력의 '드럼' 연주까지 보도국의 팔방미인으로 꼽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