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성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대법원이 최근 '음란성'과 관련해 노골적으로 성적부위를 노출하거나 성적행위를 표현하지 않는 한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는 판례를 거듭 내놔 성(性)에 대한 달라진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9일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대법원은 1970년 명화 '나체의 마야'를 복제한 그림을 성냥갑에 넣어 판매했던 유엔화학공업사 대표에게 음화(淫畵) 제조판매 혐의로 벌금형을 확정했다.
당시 대법원은 "비록 명화집에 실린 그림이라도 공익을 위해 사용한 게 아니고 성냥갑에 인쇄해 판매한 만큼 명화를 모독해 음화화한 것"이라고 유죄확정 이유를 밝혔다.
1975년 확정 판결이 난 '반노(叛奴)' 사건도 음란물 판결의 고전으로 꼽힌다.
당시 검찰은 "염재만의 소설 '반노' 중 13∼14장 내용이 음란하다"며 기소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전체 내용 흐름이 인간에 내재하는 향락적 성욕에 반항해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으로 매듭된 점으로 미뤄 음란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해 '음란성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또 1995년 소설 '즐거운 사라'의 작가 마광수 교수에 대해서는 "주인공 '사라'의 집단 성관계 등 선정적 묘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문예성, 예술성 등에 의한 성적 완화의 정도가 크지 않다"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했다.
2000년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작가 장정일에게는 "성행위의 묘사 방법이 노골적이고 구체적인 점, 그런 묘사 부분이 양적·질적으로 소설의 중추를 차지하는 점을 감안하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보다 개방된 성 관념에 비춰보더라도 음란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며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확정했다.
2005년에는 중학교 미술교사 부부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맨몸 사진과 남녀 성기 사진 등에 대해 대법원은 "보통 사람의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치면 음란물 "이라며 유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해 벌금 500만 원이 확정됐다.
2006년에는 '먹어도 되고 몸에 발라도 되는 요구르트'를 선전한다며 서울 인사동 한 화랑에서 알몸에 밀가루를 바른 여성 누드모델 3명이 분무기로 요구르트를 뿌려 밀가루를 벗겨 내는 퍼포먼스를 한 데 대해 공연음란죄를 인정, 마케팅 팀장에게 벌금 500만 원을 확정했다.
그동안 '성욕을 자극해 성적흥분을 유발하고, 성적 수치심을 일으켜 성적 도의 관념에 반하는지'를 음란성의 판단기준으로 삼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작년 3월 기존 판례를 깬 것은 아니지만 성 문화에 대한 국민의 시각 변화를 담아 '음란성'의 기준을 보다 구체적으로 내놓았다.
음란 동영상 유포 사건에서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해쳤다고 볼 만큼 성적부위나 행위가 적나라하게 표현돼야 음란물로 볼 수 있다"며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 환송한 것이다.
재판부는 "해당 영상은 성행위와 애무 장면을 묘사했지만 성기나 음모의 직접적 노출이 없다.
전체적으로 평가할 때 상당히 저속하고 문란한 느낌을 주지만 형사법상 규제할 만큼 노골적으로 묘사했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또 최근 여종업원이 '음란행위'를 하도록 한 혐의로 기소된 유흥주점 주인에 대한 상고심에서 "상의를 벗고 속옷만 입은 채 남성 손님에게 가슴을 만지게 하고 허벅지를 보여준 행위가 형사법상 규제 대상으로 삼을 정도는 아니다"라며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풍속영업 장소에서 이뤄진 행위가 '음란행위'에 해당하려면 단순히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주는 정도를 넘어 사회적으로 유해한 영향을 끼칠 위험이 있다고 평가될 정도로 노골적으로 성적부위를 노출하거나 성적행위를 표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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