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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연가-학림다방 그리고 대학로

주시평

입력 : 2009.02.27 09:38


       

학림다방으로 들어가는 계단 입구에는 작은 입간판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학림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꼭 한번 학림다방에 가시면 읽어보시기를...... 

학림은 아직도 여전히 60년대
언저리의 남루한 모더니즘 혹은
위악적인 낭만주의와 지사적
저항의 70년대 쯤 어디선가
서성거리고 있다.
 
학림은 지금 매끄럽고 반들반들한
현재의 시간위에 과거를 끊임없이
되살려 붙잡아 매두려는 위태로운
게임을 하고 있다.

이 게임은 아주 집요하고 완강해서
학림 안쪽의 공간을 대학로라는
첨단의 소비문화의 바다위에
떠 있는 고립된 섬처럼 느끼게
할 정도이다.

말하자면 하루가 다르게 욕망의
옷을 갈아입는 세속을 굽어보며
우리에겐 아직 지키고 반추해야 할
어떤 것이 있노라고 묵묵히 속삭이는
저 홀로 고고한 섬 속의 왕국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대학로에서
현재에서 1970년대 혹은 1960년대로
시간 이동하는 흥미로운 체험을
할 수 있는 데가 학림 말고
또 다른 곳이 있는가?
그것도 한 잔의 커피와 베토벤,
맥주쯤을 곁들여서......

이제 곧 봄이다. 나의 몸을 스쳐가는 바람은 아직 쌀쌀하지만 계절은 시나브로 봄을 향해 가고 있다. 첨단의 소비문화의 바다위에 '학림'은 서 있다고 누군가는 말했다. 그럴 것이다. 60대와 70년대의 향수를 잊지 못하는 이들은 대학로가 갈수록 첨단의 상업지구가 되어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우려하고 있다. 공연을 하는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젊은이들의 낭만과 고민은 점점 더 옅어지고 대신 먹고 마시는 술집과 식당과 옷집과 액세서리 가게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런 걱정과 우려가 맞을지도 모른다. 갈수록 대학로가 상업화가 되면서 땅값은 올라가고 몇몇 극단들은 대학로의 중심에서 떨어져 나가 '오프 대학로'를 형성하고 있다. 고 김수근씨가 세웠던 샘터사옥의 붉은 벽돌 건물 옆으로는 색깔만 비슷한 아류의 건물들이 첨단 상업문화의 전령처럼 서서 대학로를 호령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크게 걱정하거나 우려하지 않는다. 대신 어스름한 저녁 무렵 대학로를 쉬엄쉬엄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공연장 주변 마다 공연을 안내하는 젊은 미래의 배우들을 길거리에서 볼 수 있고, 조금 일찍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풀로 도배된 포스터는 없지만 잘 차려진 메뉴판처럼 깔끔한 게시판이 있고, 공연 배너 광고가 열 맞춰 나란히 선 채 당신에게 손짓할 것이다. 그리고 공연 시간이 임박하거나 조금 지나면 서둘러 극장을 향해 뛰어가는 관객들 또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것이다. 70년대 80년대 문화의 불모지대에서 대학로라는 씨앗을 뿌리고 가꿨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 지금도 대학로를 뉴욕의 브로드웨이나 런던의 웨스트엔드처럼 키워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리고 관객들이 있다.

물론 대학로는 변했다. 70년대와 80년대의 대학로의 모습과는 분명히 달라졌다. 대학로만 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가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그래서 대학로는 외형 뿐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달라졌다. 무거운 주제의 연극 보다 가볍고 말랑말랑한 소재의 연극이 더 많아졌고 또 즐겁고 신나는 뮤지컬도 더 많아졌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가벼워진 대학로의 모습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곤 한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그 시대에 맞는 이야기가 무대에 오르는 법. 학전의 김민기 대표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버전의 '지하철 1호선'을 올리려고 하는 이유가 그렇듯 말이다.

공연이 끝나는 시간이면 대학로는 공연장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로 붐빈다. 친구끼리, 연인끼리 온 관객은 물론 부모님을 모시고 온 관객, 중년의 부부나 중년의 지인들끼리 온 관객 등 다양한 관객의 스펙트럼을 볼 수 있다. 나는 가끔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오히려 옛날 사람들보다 요즘 사람들이 더 '공연을 정말 즐기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사회성 짙은 내용의 재미없는 공연보다 나는 재미있는 공연이 더 낫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나는 가벼운 연극, 즐거운 뮤지컬을 보고 마음 편하게 웃고 즐길 줄 아는 관객이 진지하거나 감동적인 공연을 보고 눈물 흘릴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공연예술은 정신적 카타르시스다. 웃음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실컷 웃을 수 있게, 울음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펑펑 울을 수 있게 그리고 그 웃음과 울음을 통해 마음의 때와 찌꺼기를 씻어내는 카타르시스다. 좋은 공연은 그래서 머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혹 각박한 세상살이 속에서 인간의 냄새를 그립고, 인간의 정이 그립고, 인간적인 행복한 웃음이 그립다면 나는 당신에게 대학로를 가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당신의 정신과 마음을 '웃음'과 '울음'의 냉온탕을 오가며 깨끗이 한번 씻어보라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