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품 출시 시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2003년였습니다. 당시 IT 담당 기자를 하면서 SK텔레콤을 출입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하루, 홍보실에 있는 한 직원이 새로운 휴대전화 단말기를 보여주겠다며 자기 책상으로 저를 데려갔습니다. 책상 위에는 PDA가 있었습니다. 요즘 PDA를 사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PDA는 만능기능의 디지털기기였습니다. 전화번호부, 메모장, 사진보기 등 손바닥만한 작은 크기의 제품 안에 정말 많이 기능이 내장돼 있었습니다. 또 전자수첩에는 입력할 수 없는 어마 어마한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직장인들과 학생들에게 인기제품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 직원은 이런 기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PDA를 통해 전화를 할 수 있는 기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새로운 기능이었습니다. PDA 뒷부분에 별도 장치만 부착하고 이동통신사에 등록만 하면 바로 휴대전화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모델은 HP의 HP3850이었습니다. 이 제품은 PDA를 이용한다는 점, 그리고 화면 위에 있는 전화번호를 손가락으로 직접 눌러 번호를 입력하는 기능 때문에 많은 휴대전화 마니아들로부터 사랑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제품 크기와 무게가 소비자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됐고, 무엇보다 당시 PDA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됐습니다. 결국 PDA폰은 1년도 가지 못하고 시장에서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때 사용하던 터치형태의 휴대전화가 지난해 새로운 모양의 터치폰으로 돌아왔습니다.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터치폰은 그때 PDA폰과 그다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전화통화 기능은 기본, 거치대를 이용하거나 통신 모듈만 장착하면 인터넷 접속이 가능했고 날씨, 주식정보도 바로 바로 확인이 가능했는데, 요즘 터치폰을 보면 이런 기능을 모두 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손가락을 이용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오늘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싶어서입니다. 2002년만 해도 하루가 멀다하고 갖가지 새로운 IT 기술과 제품이 등장했습니다. TV 방송을 컴퓨터 화면을 통해 보면서 저장하는 기술, 애니메이션 기술, 등 당시만 해도 국내기술로 만든 새로운 기술은 IT강국의 새로운 희망이 됐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희망이 얼마가지 못하고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2000년부터 2002년 사이 IT담당을 하면서 취재한 새로운 기술과 제품 가운데 30% 정도는 지금 시장에서 아예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당시 놀라운 기술이라고 뉴스를 통해 소개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제품에 대한 소비가 그다지 크지 않은 국내 시장이 문제가 됐고 또 소비자의 필요 보다 너무 빨리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다 보니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말았습니다. 제품에 대한 홍보 부족도 또 다른 이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대에 너무 앞서나가다 보면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면 그 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자가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필요하다고 느끼지 못하게 되면 그 제품은 시장에 얼마 남지 못하게 됩니다. 아무리 최신 기술을 내장한 제품이라고 해도 소비자들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 시장에서 오래 남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시장 진출이 너무 늦게 이루어져도 성공하지 못합니다. 경쟁제품에게 시장을 빼앗기기 때문이죠. 결국 제품 출시 시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 시점을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출시 시점이 중요하다는 것은 디지털 제품뿐만 아니라 다른 제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같이 경기가 좋지 않을 때 고가의 제품을 출시하면 과연 누가 그 제품을 구입할까요?
'ㅇ'사의 휴대전화를 한번 보시죠. 이 제품은 기능과 디자인으로 국내외 소비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또 지금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회사나 제품 이름을 언급하지 않아도 많은 분들이 브랜드 이름은 알고 계실 것이라고 믿습니다.)그러나 이 제품에는 그다지 새로운 기술이라고 볼 수 있는 기능은 없습니다. 그러나 소비자가 원하는 기능(터치기능)을 적절한 시기에 맞게 출시하면서 제품은 히트 제품으로 변했습니다.
결국 경쟁사는 비슷한 제품을 출시하고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소비자들을 다시 잡기란 쉽지 않습니다. 제품의 기능, 디자인 못지않게 출시 시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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