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파워 앞세워 파트너십 구축노력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22일 일본, 인도네시아, 한국, 중국을 잇따라 도는, 취임 후 첫 아시아 4개국 순방일정을 모두 마쳤다.
미국의 외교수장 자격으로 국제무대에 `데뷔'한 클린턴 장관은 이번 아시아 순방을 통해 조지 부시 전 행정부 시절 국무장관들과는 차별화된 이른바 `클린턴 표' 외교를 선보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퍼스트레이디와 뉴욕주 연방상원의원을 지낸 정치적 경륜과 브랜드파워를 앞세워 버락 오바마 행정부 이후 달라진 미국의 `스마트 파워' 외교를 전파하는 동시에 북한 핵문제 등 역내 안보 이슈는 물론 세계적 경제위기 극복, 기후변화협약 이행 등 국제적 과제 해결을 위한 파트너십 구축에 돋보이는 역량을 과시했다는 것.
또한, 그는 북한의 후계구도 언급 등 거침없는 소신발언, TV쇼 출연과 대학강연 등 다양한 이벤트, 재래시장과 교회 방문 등 과거 미국 국무장관이 외교적 틀에 갇혀서 보여주지 못했던 행동과 발언으로 숱한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순방지마다 구름청중을 몰고 다닌 클린턴은 마치 대선 선거운동을 하듯, 더 나아가 현직 대통령이 외국순방에 나선 듯 외교적 의전에 얽매이지 않고 대중과 소통하는 등 미 국무장관의 역할개념을 다시 쓰고 외교 외연을 확장했다는 지적이다.
클린턴의 아시아 순방을 소개한 미 언론 기사의 제목은 이러한 클린턴발(發) 외교변화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국제적 청취 투어"(워싱턴포스트), "아시아에서 국무장관의 각본을 다시 쓰다"(뉴욕타임스), "아시아에서 선보인 클린턴 표 외교"(NPR)와 같은 제목은 클린턴의 첫 순방이 남긴 의미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클린턴의 파트너십 구축노력은 부시 전 정권을 반면교사로 삼은 결과로 해석된다. 이는 나 홀로 이라크전 감행으로 국제적인 비난과 국내 정치적 부담을 모조리 뒤집어썼던 부시 시절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전쟁의 명분과 우방을 동시에 잃는 외교적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클린턴은 이번 순방에서 동맹 및 우방과 사전협의를 강화해 나가겠다는 신뢰의 메시지 심기에 주력했다.
클린턴은 미 상원의 국무장관 인준청문 때부터 "지금과 같은 복잡다기한 국제사회에서 미국 혼자만의 힘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라고 선언, 공동의 목표를 위한 파트너십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이번 아시아 순방은 이런 철학을 현실외교에서 구현하는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다.
클린턴이 첫 기착지로 일본을 택한 것은 `재팬 패싱(일본 건너뛰기)' 우려를 불식시키는 노력의 일환이었고, 일본인 납북자 가족들과 면담한 것은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로 상심했던 이들을 다독이려는 신호였다는 점에 미 언론의 해석은 대체로 일치한다.
클린턴이 중국의 인권문제를 후순위로 밀어놓고 경제문제와 기후변화협약 문제에 중국 방문의 초점을 맞춘 것도 분명한 변화다.
지난 1995년 퍼스트레이디 자격으로 베이징 세계여성대회에서 중국의 인권문제를 성토하는 연설로 중국을 불편하게 했던 일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외교적 배려에서다.
한국 방문에서도 그는 "북한은 한국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한국을 비난함으로써 미국과 다른 형태의 관계를 얻을 수 없다"라고 언명, 이른바 북한의 `통미봉남' 의도에 쐐기를 박고 한국 정부의 입지를 강화시켜줬다.
이번 순방에서 클린턴의 강단과 내공을 가늠하게 해준 대표적인 장면은 북한 후계구도 관련 발언일 것이다.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으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극도로 꺼리는 후계구도를 정면으로 다뤘던 것.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이었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발언을 클린턴은 주저 없이 언급했다. 클린턴은 "은둔 왕국의 후계문제를 얘기하는 것을 터부로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실제 있는 사실을 그렇다고 얘기한 것일 뿐이며 이런 내용은 대북정책 검토과정에 반영돼야 한다"라고 발언 배경을 설명했다.
이는 곧 미 국무부가 대북정책을 수립할 때 현 집권세력인 김정일 정권뿐 아니라 `포스트 김정일' 시대까지 염두에 두고, 경우의 수에 따른 중장기적인 대책까지 반영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라는 관측을 낳고 있다.
그러나 이를 놓고 미 외교가에서는 정치인 출신인 클린턴이 앞으로 국무부 내부에서 조율되지 않은 입장을 여과 없이 발언한다면 예기치 않은 `설화'에 휩싸일 수도 있다는 우려 섞인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클린턴의 화려한 아시아 외출이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는 바람에 그의 순방기간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던 미 행정부와 의회 주요인사들의 의미 있는 외유일정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19일 캐나다를 당일치기로 방문했지만 언론들은 이를 크게 취급하지는 않았다. 마침 클린턴이 북한의 후계구도를 언급해 파장을 일으킨 것도 초점을 클린턴 쪽으로 쏠리게 한 이유로 지적된다.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의 첫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방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이탈리아, 바티칸 방문도 이들의 위상에 비해 언론에서 인색한 대접을 받은 편이었다.
(워싱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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