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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리스크(risk)

박민하

입력 : 2009.02.19 21:44|수정 : 2009.02.19 21:45


경제 기자를 하는 동안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를 담당한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었다.

금융회사의 CEO들이 가장 신경을 쓰는 건? 내 경험으로는 단연 리스크(risk)다.

안택수. 기자 출신의 15,16,17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대변인과 국회 재정경제위원장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지난해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으로 변신(?)한 그가 지난 17일 기자 간담회를 자처했다.

건전성을 우려하는 은행들을 마냥 압박할 수만은 없는 정부가 보증기관을 동원해 돈을 풀기로 정책 방향을 잡은 이후 신보의 역할이 한층 강화된 터. 신보 이사장의 간담회에 그렇게 많은 기자들이 참석한 적이 있었나? 기억나지 않았다.

간담회의 주제는 대충 이렇다.

-지난해말 30조 5천억원이던 보증잔액을 올해 45조 2천억원으로 확대한다.

-올해 만기 도래하는 보증은 한계기업 등을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전액 만기 연장.

-보증지원 기준등급을 기존의 15등급 이상에서 18등급 이상으로 하향 조정.

-보증심사와 신용조사 방법을 간소화하고 단기 부실 적용 기준을 한시적으로 완화.

-지난해 1.35%였던 보증수수료를 올해 1.2%로 인하.

-정부가 편성하는 추경 예산에서 1조9천억원을 신보에 출연할 것을 요구.

한마디로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보증 규모를 획기적으로 늘리고 보증을 받을 수 있는 기업에 대한 심사기준을 크게 완화한다는 것이다. 안 이사장의 표현을 빌리면 "좀비기업을 빼고는 웬만한 중소기업은 다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애기가 된다. 그러기 위해서 더 많은 국민의 세금을 신보에 달라는 말이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부분은 신용보증기금의 보증부실율.

지난해 말 5.1%였던 보증부실율은 2월 중순에 8.6%로 뛰었다.심상치 않은 추세.

안 이사장이 제시한 올해 보증부실율 목표는 10.7%.

올 연말 보증잔액을 기준으로 보면 약 4조 8천억원의 부실이 생긴다는 얘기다.

97년 외환위기 직후 신보의 보증부실율은 17~18%까지 치솟았다.

다시 안 이사장의 표현을 빌리면,“이번 경제위기는 97년 외환위기에 버금가기 때문에, 아니 오히려 더 심각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10.7%의 보증부실율은 말 그대로 ‘목표’일 뿐 실제는 그 이상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신보의 올해 구상에는 어떻게 보증부실율을 줄이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안 보인다는 점이다. 안 이사장도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신보의 역할 강화를 설명하는 데 장시간을 할애했지, 리스크(risk) 관리를 어떻게 할 지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안다. 보증을 크게 확대하면서 부실율도 줄인다는 게 모순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래도... 언급하지 않을 수는 없다.

미증유의 세계적 불황을 맞아 중소기업을 돕는 특단의 대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아니, 필수적이다. 비상 상황에서 어떻게든 꺼져가는 경제 엔진을 살리기 위해 쓸 수 있는 카드는 (다소 무리해 보일지라도) 다 짜내야 하는 정부, 그리고 정부 산하 기관의 역할도 인정된다. 더군다나 중소기업이라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책임에랴.

하지만 보증이라는 것, 특히 이번 대책처럼 보증비율이 100%로 올라가고, ‘좀비기업’이 아닌 한 모두 받을 수 있는 보증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도덕적 해이를 자극하기 마련. 전문가들은 보증 확대를 통해 어려움에 처한 중소기업을 돕는다는 명제에는 동의하면서도 신속한 구조조정이 수반되지 않으면 오히려 부실을 키우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보증 확대라는 것이 금융회사들이 져야 할 부담을 국민 세금으로 전가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리스크(risk) 관리의 중요성은 일반 금융회사에 비해 더 중요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 그래서 보증 부실을 관리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더 아쉬운 것이다. "금융회사 출신이 아닌, 그래서 리스크(risk) 관리라는 인기 없는 개념보다는 국민경제, 사회적 약자를 생각해야 한다는 배포 큰 명제에 더 익숙한 정치인 출신이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지나친 편견이었음을 안 이사장이 스스로 입증해 주시길.

보증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자괴감을 느낄 때는?

자신이 보증을 서 준 기업이 보증받아 빌린 돈을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냥 '꿀꺽'하는 경우라고 한다. 그 쪽 세계에서는 '차비를 준다'고 표현한다는데 자괴감이 큰 것은 그 '차비'가 바로 국민의 세금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맡았지만 신보가 '차비'를 남발하지는 않았다는 평가가 나오기를.

 

[편집자주] 치밀한 분석력이 돋보이는 박민하 기자는 현재 한국은행과 금융업계를 출입하고 있는 경제부의 핵심전력입니다.  2003년 SBS 보도국에 둥지를 튼 뒤 사회부와 경제부에서 활약해왔습니다. 생활에 직접 도움을 주는 알기쉬운 금융기사들과 경제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심도깊은 글들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