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서민과 중소기업 보호에 역점을 두겠다", "기업 규제는 완화하지만 반칙행위에 대한 제재는 강화하겠다." 취임 2년차를 맞은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이 제시한 올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정책 방향이다.
백 위원장은 15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기업들이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작년에 많은 규제 개혁 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올해도 규제 완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5대 중점 감시업종으로 소비자 생활과 밀접한 식음료, 교육, 문화콘텐츠, 물류 및 운송, 지적재산권 관련 업종을 제시했고 글로벌 휴대전화 부품업체인 퀄컴에 대한 제재가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과 바른정책연구원장,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 등을 거친 백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철학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충남 보령 태생인 그는 중앙대 경제학과와 뉴욕주립대 대학원 등을 거쳐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경실련 상임집행위원, 삼성경제연구소 객원연구위원,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 등도 역임했다.
◇ "서민.중소기업 보호에 주력"
-- 올해 공정위 정책의 방향은.
▲ 작년 말 대통령 업무보고 때 기존의 형식을 파괴했다. 예전에는 대기업 정책을 처음 보고 했는데 이번엔 서민과 중소기업을 위한 공정위가 되겠다는 내용을 앞세웠다. 경기침체기에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계층이 서민과 중소기업인 점도 있지만 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공정거래 정책에서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약자를 배려하는 정부가 존재해야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다.
-- 민생 안정을 위한 공정위의 역할은.
▲ 대부업, 상조업, 다단계판매업, 방문판매업 등은 서민 생활과 직결된 업종이다. 서민들이 이런 업종에서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감시를 강화할 계획이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제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전감시를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소비자정책 관련해서는 각종 법률이 우리 소관으로 들어와 있기 때문에 체계적인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다문화 가정과 이민자, 대학 졸업자 등을 중심으로 소비자 교육을 강화하려고 한다.
-- 중소기업 보호 대책은.
▲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나 기술 탈취, 그리고 대물변제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공정 하도급거래를 중점 감시하겠다. 백화점과 대형할인점 등 유통분야의 불공정 행위도 상시 감시해 부당 반품이나 판촉비용 전가 행위 등을 근절시키겠다.
중소기업들은 작년에 납품단가 연동제를 도입해달라고 했는데 이것은 어렵다고 판단해 대신 납품단가 조정협의 의무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 제도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문화를 정착시키는 일이다. 공정위는 작년부터 주요 기업에 대해 상생협력 문화를 정착시키려고 노력했고 올해는 상생협력 모범사례를 공개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같이 나가야 한다는 점을 보여줄 계획이다.
◇ "대기업 규제 완화..지주사 전환유도"
-- 공정위의 규제 완화에 대해 기업인은 체감이 잘 안 된다고 하는데.
▲ 작년에 발표한 규제 완화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어 기업들이 아직 체감하지 못할 수 있다. 늦어도 이달 안에는 통과되도록 노력하겠다. 대기업 정책에서는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년에 많은 규제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규제는 완화하고 법 위반 행위에 대한 제재는 강화하겠다.
-- 대기업 규제 완화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 지주회사가 아닌 대기업집단에는 금융자회사 보유를 허용하면서 상대적으로 엄격한 규제를 받는 일반지주회사는 금융자회사를 둘 수 없도록 하는 것은 형평성 면에서 문제가 있다. 지주회사로의 전환 자체를 어렵게 하는 문제도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가장 큰 시스템 위험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출자구조와 채무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보면, 이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의 하나가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정위가 추진하는 지주회사 규제 완화는 지주회사로 쉽게 전환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것이다. 금산분리 완화라는 또 하나의 규제 완화를 위해서 물꼬를 트는 것이다.
◇ "상호출자.채무보증 제한은 유지"
-- 경제위기 상황에서 공정위도 기업 조사를 유예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 양식 있는 기업들은 그런 주장을 안 할 것이다. 경기침체기에는 반칙 행위가 증가할 수 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법을 어겨도 되지 않겠느냐는 인식이 있을 수 있다. 게다가 독과점 사업자나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가진 업체, 원사업자 등이 공정거래법을 어기는 경우가 많고 그 피해가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 간다.
서민과 중소기업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도 경쟁법 집행은 엄격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대신 투자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내겠다.
-- 대기업들은 대폭의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데.
▲ 정부의 규제 완화도 필요하지만 대기업들은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국회의원들이 기업에 공격적인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국민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이다. 기업을 공격하는 것이 너무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이 국민과 시장의 눈치를 봐야 한다.
출자총액제한제를 폐지한다고 하니 전경련 등을 중심으로 대기업정책을 버리라고 주장한다. 상호출자제한과 채무보증 규제를 폐지하라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국민의 신뢰를 잃게 한다. 정부가 폐지한다고 해도 필요한 규제니 그냥 두라고 해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상호출자 금지와 채무보증 제한, 그리고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제도 등은 규제라기보다는 우리 경제의 시스템 위험을 줄이고 시장 작동을 위해 꼭 필요한 준칙들로서 유지돼야 한다.
◇ "식음료.교육 등 5개 업종 집중감시"
-- 올해 중점 감시 대상 업종은.
▲ 작년에는 자동차와 이동통신, 석유, 의료, 사교육 등을 집중적으로 감시해 성과를 거뒀다. 이들 업종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시정명령 이행 점검, 불공정거래 모니터링 등 사후관리를 철저히 하겠다.
올해는 전통적인 독과점 업종보다는 소비자생활과 밀접한 식음료와 교육, 문화콘텐츠, 물류.운송, 지적재산권 관련 업종(IT와 제약 등) 등 5개를 중점 감시 업종으로 선정했다. 식음료업종은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교육업종으로는 사교육과 교복, 참고서 등이 있다.
문화콘텐츠는 게임이나 오락 등이고 운송.물류와 지적재산권도 소비자 생활과 밀접한 업종이다. 이들 업종의 불공정 행위는 제재도 하겠지만 시장에 미리 신호를 보내 불공정 행위를 예방하자는 취지가 있다.
-- 사교육 시장의 불공정행위는 어떻게 단속하고 감시할 것인가.
▲ 학원은 작년에 조사했는데 앞으로는 학생들이 많이 쓰는 참고서 등도 들여다 보겠다. 문제가 되는 교복 가격을 최근에 조사했는데 다행히 일부 교복업체는 가격을 내리겠다고 발표했다.
학부모들도 교복 공동구매 활성화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교복업체들의 담합 혐의와 제재 여부는 검토 중으로, 조만간 결과를 발표하겠다.
◇ KT-KTF 조건부 합병 승인 시사
-- KT와 KTF의 합병 심사는 어떻게 결론을 내릴 것인가.
▲ 이 문제로 통신업계가 첨예하게 의견 대립을 하고 있다. KT와 경쟁업체인 SK텔레콤으로부터 입장을 들어봤다. 통신시장 뿐만 아니라 모든 시장의 발전은 경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통신시장의 발전과 경쟁촉진을 위해 어떤 것이 좋은가를 기준으로 삼아 판단할 것이다.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가능한 빨리 결론을 내리겠다.
-- 시장에서는 조건부 합병 승인을 예상하고 있는데.
▲ 고민하고 있다.
-- 공정위가 기업결합 문제에 유연하게 접근하고 있는데.
▲ 작년에 위원장에 취임하고 나서 기업결합에 대한 시각을 바꾼 것이 큰 변화였다. 시장의 변화가 워낙 빠르게 때문에 기업결합을 동태적으로 봐야 한다. 공정위의 고민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것과 경쟁을 촉진하는 것은 배치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달리 시장규모가 작은 국내 현실을 감안할 필요가 있으며 글로벌한 시각에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밖에 인수.합병 (M&A) 전략 등 다양한 시각으로 기업결합을 보려고 한다.
현재의 시장점유율 등 정태적 경쟁 제한성을 봐야 하는 품목도 있겠지만 변화하는 시장 상황에 따라 기업결합에 대해 새로운 각도로 보려고 한다.
기업결합은 시장의 동태적인 진화에서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M&A를 어렵게 하는 장치들의 도입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포이즌 필' 제도(기업이 적대적 M&A에 직면했을 때 임금 인상 등을 통해 매수 비용을 높여 상대방의 M&A 시도를 포기하게 하는 것)는 기업의 경영권 보호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공정 경쟁에는 바람직하지 않다.
◇ "공기업 부당행위 조사"
-- 공기업의 불공정거래 관행을 집중 감시한다고 하는데.
▲ 국민 생활과 밀접한 공기업이 많은데도 그동안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조사나 제재에서 비켜간 측면이 있다. 이제는 공기업도 사기업과 동일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감시대상 공기업은 서민 생활에 필수적인 재화나 서비스를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등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주는 곳이 될 것이다. 공기업의 불공정 약관으로 인한 소비자 불만사항, 가격 인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계열회사 지원 행위 등이 주된 감시대상이다. 가격 결정 구조나 하청업체와의 관계 등도 조사할 계획으로, 현재 자료를 모으는 등 사전 조사를 하고 있다.
-- 휴대전화 부품업체인 퀄컴을 조사한 결과는.
▲ 퀄컴은 이동통신 관련 핵심 특허를 기반으로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갖고 있는 회사다. 이러한 시장지배력을 바탕으로 한 불공정행위 혐의 여부를 조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지금은 마무리 단계에 있다.
퀄컴은 올해 5대 중점 감시업종인 지적재산권과도 관련이 있는데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불공정 거래를 했다면 제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은 최첨단 산업분야로서 사건내용이 매우 복잡할 뿐만 아니라 고도의 경제 분석과 법리검토가 필요해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지만 될 수 있는 대로 이른 시일 안에 처리할 예정이다.
◇ "보호무역주의 강화 경계해야"
--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면서 미국과 유럽, 중국 등이 다른 나라 기업에 자국 경쟁법 적용을 강화할 것으로 우려되는데.
▲ 미국이 예산을 투입해 사들이는 제품을 미국산에 한정한다고 해서 논란이 됐다. 이는 대표적인 보호무역주의이고 경제적 국수주의로 볼 수 있다. 보호무역주의는 자국 경제에 이익을 가져올 수 있지만 세계경제의 동반 침체를 가져올 수 있다.
세계경제의 회복은 좀 더 많은 개방과 규제 완화, 경쟁촉진을 통해 가능하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보호무역주의를 부활시키는 것은 재앙이다. 다만, 전 세계적으로 경쟁법 위반행위를 엄격하게 처벌하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공정위는 국내 기업이 외국의 경쟁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예방노력을 강화할 것이다. 주요 외국 경쟁 당국과의 양자협력 협정 체결 등을 통해 우리 기업들이 부당한 법 집행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우리 기업들도 외국에서 제재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국내에서부터 글로벌 기준에 맞추어 경쟁법을 철저하게 준수해 체질화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공적자금을 받아 회생한 기업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한국에 진출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 보조금 투입을 통한 기업 육성은 기본적으로 반경쟁적이다. 각국이 국내 기업 회생을 위해서 공적자금 투입을 하는 것은 경기 회복을 위한 비상조치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이것이 고착되면 경쟁질서를 해칠 수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사안별로 봐야 할 것 같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