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리포트] 한국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 김연아에 쓴 '보약'으로
쇼트프로그램 경기 직전 워밍업 시간, 김연아가 다른 선수들과 함께 천천히 몸을 풀며 은반 위를 미끄러져 나갔습니다.
먼저 더블 악셀, 트리플 러츠,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룹 순으로 점프를 연습했습니다. 쇼트 연기 구성의 역순입니다.
김연아는 점프 연습에서 단 한 차례도 실수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깨끗하게 성공했습니다. 연습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며 스파이럴과 스텝까지 점검했습니다. 오서 코치도 만족스런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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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시계를 돌려 쇼트프로그램 경기 시작 1시간 전,
경기장 밖에서 초조하게 담배를 태우고 있는 김연아 소속사 관계자를 만났습니다.
"연아... 이번에 어떨 것 같아요?" 란 질문에 잠시 뜸을 들이더니...
"흠... 최고 점수 나올 수도 있겠는데.."
소속사 관계자로서 경기 전에 으레 하는 말이거나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일이겠지만 왠지 근거 없는 허풍처럼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사실로 바뀌는 데는 2분 50초면 충분했습니다.
우리 교민과 원정 응원 온 열성팬들, 김연아를 처음 본 외국인들, 그리고 경기에 관심이 없는 듯 앞 자리에서 뜨개질에만 집중하던 캐나다 할머니도 김연아의 연기에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김연아는 퍼시픽 콜리세움 링크에서 피겨 역사를 새로 썼고, 역사의 현장을 지켜본 4천 관중은 뜨거운 박수와 환호로 피겨 여왕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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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에서 만난 김연아의 주변 사람들은 한 달새 김연아가 더 발전한 비결에 대해 한결같이 말합니다.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가 큰 자극이 됐다."
자국에서 열리는 첫 국제대회에서 라이벌 아사다 마오에게 밀렸고, 점프의 교과서라 불리면서도 실전에서 연속 실수를 범하며 무너졌고, 감기로 컨디션 조절에 실패하며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대회 뒤 한 달 동안 각종 행사와 빠듯한 스케줄로 심신이 지쳐 자칫 슬럼프에 빠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김연아에겐 쓴 보약이 됐습니다. 당당한 피겨 여왕은 슬기롭고 현명하게 자신을 다스렸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부상을 거울삼아 시즌 후반 몸 상태를 최고조로 끌어올렸습니다. 파이널의 아쉬움은 경험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싯 스핀 동작에 작은 변화를 주며 스스로를 채찍질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화려하게 날아올랐습니다.
흘러간 유행가 노래 제목 처럼... 아픈 만큼 성숙해졌습니다.
김연아는 지금도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절정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 최고점이 어디일지 정말 궁금합니다.
벌써부터 내일 프리스케이팅이 기다려집니다.
[편집자주] '스포츠가 좋아 스포츠를 택한 사나이' SBS 스포츠국의 훈남 김현우 기자. 2005년 공채로 입사해 사회부 사건팀에서 맹활약하던 김기자는 현재 스포츠취재팀에서 빙상과 축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2008년에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한국 최초 우주인 탄생을 현지 취재하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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