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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연가 - 연극인들의 분노

주시평

입력 : 2009.02.05 11:55


  

# 1. 대학로 연극인들의 분노

지난 해 연말 연극계 원로들이 모여 문화부의 새로운 극장운용 정책을 성토했다. 이 자리에서 원로 연극인들은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을 앞으로 무용 공연을 주로 하는 무용 중심의 극장으로 운용하겠다는 문화부의 정책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그리고 극단 미추 손진책, 연출가 이윤택, 연출가 심재찬, 서울연극협회장 박명성 등 연극인 100인의 이름으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다양한 공연문화공간으로 활용된 아르코예술극장의 쓰임새를 무용중심공간으로 제한, 축소한다는 문화부의 일방적인 통보에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각 공연계 실무자들과의 논의와 합의 없이 진행된 이번 발표를 철회하고 현장 예술인들의 목소리를 수렴하라!!! 공연장의 특성화는 문화적인 흐름, 관객의 동향, 창작자들의 성향에 따라 자연스럽게 정해지고 완성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인 정책의 재단을 통해 완성하려고 하는 구시대적 발상은 문화 자체를 재단하는 것과 같다!!!"

연극인들은 현장 예술인들과 한마디 상의나 의견 수렴도 없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이는 정책 추진 과정이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또 공연계를 잘 아는 유인촌 문화부 장관에 대한 섭섭함을 숨기지 않았다. 연극인들은 아르코 예술극장을 무용 중심의 극장으로 운용하겠다는 발상 자체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고 했다. 그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 2. 명동의 부활

요즘 명동 한 복판에는 옛날 바로크 스타일의 일본 건축물이 한창 보수공사 중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금융기관 건물이었던 이 건물에는 과거 국립극장이 들어서 있었다. 1948년 김자경씨가 베르디 오페라 '춘희'를 공연했고, 이해랑씨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연출해 무대에 올렸고, 차범석씨의 '산불'도 이곳에서 초연됐다. 이 뿐만 아니라 가수 윤복희씨가 7살 때 데뷔한 무대이기도하다. 명동은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서울의 대표적인 예술의 거리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옛 국립극장이 있었다. 

그러나 1973년 장충동에 지금의 국립극장이 세워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우리나라 상업의 중심지인 명동 국립극장은 결국 문을 닫았고 그 건물에는 금융회사가 들어섰다. 그렇게 명동 국립극장이 문을 닫기 전까지, 명동 국립극장에서는 전체 공연 횟수의 절반이 넘을 정도로 연극 공연 횟수가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창극, 무용, 오페라 클래식 음악 공연들이 열렸다. 명동 국립극장은, 대학로가 아직 생기지 않은 시절, 그곳은 연극의 메카였다.

장충동에 새 국립극장이 건립되고 난 뒤에도 한 동안은, 적어도 1981년 대학로에 아르코 예술극장이 문을 열기 전까지, 명동은 연극의 메카로서의 명성을 유지했다. 장충동 국립극장에는 주로 국립극단의 공연들이 무대에 올라갔고 일반 극단들은 여전히 명동의 카페식 살롱 극장에서 연극을 올리곤 했다. 당시 명동 주변에 자리 잡고 있었던 삼일로 창고극장, 카페 떼아뜨르, 살롱 떼아뜨르 추, 엘칸토 예술극장 등이 명동의 명맥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장수를 잃은 군대가 힘없이 무너지듯 연극공연의 중심축이었던 명동극장이 없어지면서 점차 명동도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서의 명성을 잃어갔다. 그리고 명동은 점점 더 번화해져 갔고, 점점 더 상업지구로 변해갔고, 땅값은 점점 더 올라갔다. 반면 문화 예술의 공간은 그만큼 더 좁아져 갔고, 결국 사람들은 떠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30여년이 흘러갔다.

명동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곳이 됐다. 명동은 번화한 쇼핑 1번지가 됐고 일본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곳이 됐다. 명동이 과거 문화 예술의 중심지였다는 얘기는 나이든 사람들의 추억거리일 뿐이었다. 그렇게 명동은 옛 상징을 잃어버렸다. 급기야 지난 1994년 아예 옛 국립극장 건물을 헐고 새 건물이 들어설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자 명동상가 번영회와 문화관련 단체들이 옛 국립극장을 살리기 위해 나섰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지난 2003년 드디어 문화부가 금융회사로부터 옛 국립극장 건물을 매입했다.

명동예술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는 옛 국립극장은 오는 6월 정식 개관할 예정이다. 옛 국립극장 건물을 살리는데 가장 큰 힘을 썼다는 명동상가 번영회는 벌써부터 기대가 높다고 한다. 예전만 못한 명동에 옛 국립극장이 다시 들어서고 공연과 예술의 새 기운이 돌면 명동이 화려하게 부활할 것이라고 그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극인들, 그리고 연극 메카 시절의 명동에 대한 추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상징의 부활로 여기며 반가워하고 있다.

"새로 복원되는 게 문 닫은 지 33년이 지나서 명동극장이 새로 선을 보이게 돼서 젊은 세대들은 모르고 계시고 연세 드신 분들은 향수를 갖고 계신 분들은 많을 줄로 압니다. 명동예술극장이 연극계에서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고 합니다. 60년대 70년대 한국 연극의 어떤 싹을 틔우고 잠시 황금기를 누리던 시절이라고 할 수 있는데, 명동예술극장이 국립극장이 문을 열게면서 연극인들이 보금자리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을 잃어버린 상태였죠. 지금 명동극장이 새로 복원된다는 큰 의미는 연극을 전문으로 하는 그런 공간이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로의 100여개의 이상의 소극장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본격적인 규모와 시설을 갖춘 무대 메커니즘을 갖춘 무대공연장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은 연극하는 사람들이 공간 부족에 대해서 갈증을 많이 느끼고 있었던 터에 이번에 명동예술극장이 복원되면서 연극인들이 하고 싶은 연극을 아주 좋은 여건에서 공연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것이고, 명동예술극장 복원을 계기로 해서 한국의 연극에, 작년이 한국 연극 100년이 되는 해였는데 금년이 새 100년을 시작하는 해인데 새 100년에 아주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구자흥 명동예술극장 초대극장장>

# 3. 아르코 예술극장

문화부는 연극인들의 반대를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아르코 예술극장을 무용 중심 극장으로 운용하는 대신 대학로에 아르코시티라는 새로운 연극 중심의 극장을 개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연극인들이 진정으로 잃고 싶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연극인들이 잃고 싶지 않은 것은 바로 대학로의 상징이라는 것을.

"아르코예술극장은 사실 저희 연극인들한테는 충무로 연극인 회관, 광화문 연극인 회관 쎄실 극장을 거쳐서 연극인 회관으로서 아르코 예술극장이 생긴 것이거든요. 그래서 상징성이 대단한 곳입니다. 아르코 예술극장이 대학로에 자리를 잡으면서 연극인들이 하나둘씩 모이고 소극장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사실상 지금의 대학로가 만들어 진 것입니다. 아르코예술극장이 생김으로 인해서 대학로가 형성이 되고 이런 과정에는 연극뿐만이 아니고 무용, 여러가지 공연의 여러 분야들이 극장에서 어울려져서 아주 자연스럽게 공연예술 현장으로써는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공간이 된 것 입니다. 그런데 여기를 무용전용극장이라고 해서 축소 한정을 시켜버린다면 이 극장에 대한 이미지는 크게 손상을 하게 됩니다."       <원로 연극 연출가 심재찬>

그랬다. 1981년 고 김수근씨가 건축한 아르코 예술극장이 대학로에 들어서면서 그동안 명동, 충무로, 광화문 일대, 신촌지역에 흩어져 있었던 극단들이 - 물론 당시 연극 극단은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고 한다 - 서서히 대학로로 옮겨오기 시작한다. 물론 극단들이 공연을 아르코 예술극장 무대에 올리기 시작한 것이지 지금처럼 극단들이 대학로로 이사를 온 것은 아직 아니었다. 그러나 아르코 예술극장은 명동 국립극장이 사라진 후 잃어버린 연극의 중심 역할을 점차 대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5년 대학로가 정식으로 대학로로 명명되고, 문화예술지구로 선정되고, 주말이면 차 없는 거리가 되면서부터 점차 대학로에 극단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한다.

아르코 예술극장이 생긴 지 3년 뒤인 1984년, 샘터 사옥 건물에 지하에 샘터 파랑새 극장이 들어섰다. 대학로에 들어선 최초의 민간 극장이었다. 그리고 2년 뒤 1986년 바탕골소극장, 마로니에 소극장, 아리랑 소극장이 대학로에 들어왔다. 또 이듬해인 1987년에는 신촌에 있던 연우무대가 대학로로 옮겨왔다. 그리고 1991년에는 학전소극장이 대학로에 둥지를 틀었다. 이렇게 극단들이 하나 둘 대학로로 모이면서 일종의 클러스터 효과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연극하는 사람들이 모이면서 또 다른 연극인들을 모여들었다.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대학로로 모이면서 점점 대학로는 공연의 중심지가 돼 갔다. 사람들이 모이자 식당, 술집, 커피숍 등등 가게들도 하나 둘 들어섰고 점점 더 많아졌다. 그렇게 대학로는 지금의 대학로의 모습을 만들어갔다.

대학로에는 현재 100개가 넘는 소극장들이 모여 있다. 연극인들은 그다지 넓지 않은 이런 공간에 이렇게 많은 극장이 밀집해 있는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들 말한다. 그렇다. 그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문화 공간 대학로, 이 대학로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첫 씨앗은 아르코 예술극장이었다. 연극인들은 그래서 그 상징적인 무대 공간을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