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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의 권위와 한계

이민주

입력 : 2009.01.30 10:33|수정 : 2009.02.17 14:10

UN 반 총장 중동순방 동행취재기 ④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중동 각국의 예우 수준은 국가 원수급이었습니다.

각 나라에 도착할 때마다 붉은 카페트가 깔리고 장관급이 공항 영접을 나왔습니다.

이동할 때는 숱한 경호차량의 호위 속에 최고급 방탄 차량이 제공됐습니다.

       

 ▲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청사 방문. 장관급 인사들이 도열해 극진히 환대.

다소 급하게 이뤄진 순방이었지만 방문국마다 국왕이나 대통령, 총리와의 회담이 빠짐없이 진행됐습니다.

반 총장이 워낙에 국제 외교무대에서 잔뼈가 굵어서인지 대부분 정상들과 이전에도 인연이 있는 듯 다들 친근하게 대하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 故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사진 앞에서 기자회견.

      

           ▲ 반기문 총장을 위해 이스라엘 대통령궁에 차려진 만찬 테이블 

의전면에서는 이렇듯 세계 어느 강대국 정상 부럽지 않은 최상의 대우를 받았지만 막상 유엔의 영향력을 냉정하게 따져 보면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입니다.

미국의 기권으로 14대 0이란 압도적인 찬성으로 채택된 유엔 안보리의 휴전결의안이 이스라엘과 하마스에 의해 곧바로 거부된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반 총장 자신도 개전 이후 무수히 많은 자리에서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했지만 상당한 시일이 지나서야 이스라엘의 공격이 중단됐습니다. (물론 총장이 이스라엘에 절대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국을 움직이고 또 여러 자리에서 줄기차게 휴전을 촉구하는 모습이 이스라엘에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해 공격 중단 시기를 앞당긴 측면은 분명히 있습니다.)

또 가자지구내 유엔 시설에 대한 이스라엘의 잇단 공격도 따지고 보면 유엔의 권위가 손상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 총장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어조로 불만과 비난을 쏟아낸 부분도 바로 이 대목입니다. 이스라엘은 대통령과 총리가 나서 사과를 하긴 했지만 이후에도 필요한 경우 유엔이 세운 학교나 병원 가리지 않고 폭격을 퍼부었습니다.

강제력을 갖지 못한 유엔으로서는 말 안듣는 회원국에 대해 강력한 비난 말고는 딱히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수단을 갖지 못한 한계라고 하겠습니다.

       

▲ 쿠웨이트에 새롭게 단장된 유엔 건물 내 반 총장 사진. 유엔의 수장임을 새삼 확인하고 가슴이 뿌듯했던 기억.

반 총장에게는 아프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 부분에 대해 따로 만난 자리에서 질문을 던져봤더니 유엔은 무력이 아닌 도덕적 권위를 앞세울 수 밖에 없는 조직으로 회원국, 특히 강대국들의 리더들을 끊임없이 접촉해 유엔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설득해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답을 내놓았습니다.

비유하자면, 말썽꾸러기 깡패를 완력으로 굴복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 동네 어른으로서 깡패의 부모와 주위 친구들을 설득해 깡패로 하여금 말을 듣게 만드는 방법밖에 없는 셈인데, 깡패가 동네 어른도 몰라보는 '왕싸가지'인 경우엔 그저 혀만 끌끌차는 것 외에 달리 어쩔 도리가 없는 형국이라 하겠습니다.

  [편집자주] 한국 언론을 대표하는 종군기자 가운데 한사람인 이민주 기자는 1995년 SBS 공채로 입사해 스포츠, 사회부, 경제부 등을 거쳐 2008년 7월부터는 이집트 카이로 특파원으로 활약 중입니다. 오랜 중동지역 취재경험과 연수 경력으로 2001년 아프간전 당시에는 미항모 키티호크 동승취재, 2003년 이라크전 때는 바그다드 현지취재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