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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방송에 촉각세운 파키스탄 주민들

입력 : 2009.01.25 16:15


"저녁 8시 우리는 탈레반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서북쪽으로 160㎞ 지점에 위치한 북서변경주(州) 스와트 밸리.

아름다운 설산과 넓은 목초지가 어우러진 수려한 풍광으로 한때 파키스탄 최대 관광명소로 꼽혔던 이곳 주민들은 요즘 저녁 8시만되면 탈레반 지도자가 진행하는 불법 라디오 방송에 귀를 기울인다.

최근 몇년간 이 지역에서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 사실상 국가를 대신해 통치권을 휘두르는 탈레반이 샤리아 율법에 따른 행동강령 등을 만든 뒤 이 불법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파하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이미 이 지역에서 이슬람 율법에 반한다는 이유로 DVD나 CD 등 음반 판매를 금지했고, 케이블TV 시청도 금지했다.

탈레반을 비판하는 것은 물론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는 행위, 수염을 깎거나, 여자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일도 이 방송을 통해 전파된 금기 사항 중 하나다.

이를 어길 경우 죽음으로 책임을 묻겠다는 탈레반의 엄포가 주민들을 라디오 앞으로 모이게 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여학생의 등교를 막기 위해 사립학교 문을 모두 닫으라고 명령했던 탈레반이 본보기로 학교 5곳을 폭파하면서 주민들은 어린 딸 자식을 학교에 보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파키스탄 정부가 주민들에게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나서지만 이를 신뢰하는 주민은 단 한명도 없다.

지난해 이 지역에서 70여명의 경찰관이 탈레반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150여명이 부상할 만큼 이 지역에서 공권력은 무기력하기 그지없다. 최근에는 탈레반을 두려워하는 경찰관들이 신문에 자신의 사직 사실을 광고하고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라디오를 통한 탈레반의 공포 정치가 공권력을 압도하고 있는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스와트 밸리의 한 주민은 뉴욕타임스(NYT)에 "그들은 주민들의 모든 일상을 라디오를 통해 통제하고 있다. 주민들은 모두 방송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탈레반에 대항하기 위한 민병대가 속속 조직되고 있는 서부 국경지대의 다른 도시들과 달리 스와트밸리에는 저항세력이 전무하다.

이곳에서 활동 중인 탈레반 대원 수가 2천∼4천명에 불과한 반면 현지 주둔 정부군이 1만2천명인 점을 감안하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

이에 대해 일부 정치인들은 탈레반과 파키스탄 군부의 연계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스와트밸리 출신 의원인 마자파르 울-물릭 칸은 "어떻게 탈레반이 그렇게 엄청난 무기와 병력을 갖고 있는지 놀랍다. 또 상황이 이런데도 군 당국이 좌시하는 것도 이유도 알 수 없다. 정부는 아무 것도 못한다"고 비난했다.

(뉴델리=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