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역사에 커다란 전환점을 마련했다. 무엇보다 첫 흑인계 대통령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1789년 취임한 조지 워싱턴 이후 미국 대통령 가운데 비백인계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백인 순혈 전통을 이어온 것이다. 흑백 혼혈인 오바마의 백악관 입성은 그래서 일대 혁명이라고 할 만큼 의미가 깊다.
오바마가 미국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올해는 노예해방선언을 했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탄생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여서 감회가 더 새롭다.
미국 정치사에서 이색기록을 남긴 대통령은 누가 있을까? 오바마 정부 출범을 계기로 화제의 기록들을 살펴보자.
● 대통령과 독립기념일 = 미국 독립기념일은 7월 4일. 공교롭게도 이날 타계한 대통령이 몇 있다. 존 애덤스(2대)와 토머스 제퍼슨(3대)이 그들. 이들은 1826년 7월 4일 똑같이 세상을 떠났다. 제임스 먼로(5대)도 1831년 7월 4일에 숨졌다.
독립기념일에 태어나 백악관에 들어간 대통령은 캘빈 쿨리지(30대)다. 그는 1872년 7월 4일에 태어났다.
● 대통령의 주 = 초창기 미국 대통령들은 거의 한결같이 버지니아 주 출신이었고, 연임에 성공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초대 워싱턴을 비롯해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제퍼슨(4대), 먼로가 그들이다.
이들을 포함해 버지니아 출신 대통령은 8명에 달한다. 윌리엄 해리슨(9대), 존 타일러(10대), 제커리 테일러(12대), 우드로 윌슨(28대)이 모두 버지니아 주 출신. 버지니아를 대통령의 주로 부르는 이유다.
1869년에서 1913년까지는 오하이오 주가 백악관의 산실 구실을 했다. 율리시스 그랜트(18대)를 시작으로 러더퍼드 헤이스(19대), 제임스 가필드(20대), 벤저민 해리슨(23대), 윌리엄 매킨리(25대), 윌리엄 태프트(27대)가 그렇다.
● 한 가문 두 대통령 = 한 가문에서 두 명의 대통령을 낸 경우는 넷이 있었다. 존 애덤스와 존 퀸시 애덤스(6대)는 아버지와 아들이 대통령에 오른 첫 사례. 둘은 미국 역사상 재선에 실패한 첫 번째와 두 번째 대통령이기도 하다.
부자 대통령의 두 번째 기록은 조지 부시(41대)와 조지 W 부시(43대)가 작성한다.
밴저민 해리슨은 윌리엄 해리슨에 이어 대통령직에 오른 특이한 경우. 다시 말해 이들은 손자와 할아버지 사이다. 시어도어 루스벨트(26대)와 프랭클린 루스벨트(32대)는 당숙과 조카 사이다.
● 대통령과 결혼 = 그로버 클리블랜드(22ㆍ24대)는 백악관에서 결혼식을 올린 첫 대통령. 두 번째 백악관 결혼식은 우드로 윌슨(28대)이 올린다. 윌슨은 백악관에서 영부인을 잃은 첫 번째 대통령이었다.
토머스 제퍼슨은 영부인 없이 대통령직을 수행한 최초의 대통령. 평생 동안 결혼하지 않은 유일의 대통령은 제임스 뷰캐넌(15대)이었다. 유일하게 이혼 경력이 있는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40대)이다.
● 재선 실패 기록 = 마틴 밴 뷰런(8대)에서 링컨에 이르기까지 8명의 대통령은 남북대결 와중에서 한결같이 임기중 사망하거나 재선에 실패하는 진기록을 세운다. 뷰런과 존 타일러, 제임스 포크(11대), 재커리 테일러, 밀러드 필모어(13대), 프랭클린 피어스(14대), 제임스 뷰캐넌, 링컨은 모두 단임으로 만족해야 했다.
윌리엄 해리슨과 링컨 대통령은 임기중 사망하는 비운을 겪었다. 취임 후 한 달도 안돼 죽은 해리슨은 백악관에서 사망한 첫 대통령이라는 기록도 갖고 있다.
율리시스 그랜트(18대)가 모처럼 재선된 뒤 20년 동안 단임에 그치다가 윌리엄 매킨리(25대)에 와서야 또다시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다.
반면,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4선이라는 최장기 집권의 영예를 안았다. 1933년부터 1945년까지 12년 간 재임했는데, 대통령 임기를 2기 8년으로 제안하는 수정헌법 제22조는 그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루스벨트는 4선 취임 한 달 만에 뇌일혈로 쓰러졌다.
● 최고령ㆍ최연소 대통령 = 최고령 대통령은 레이건. 나이 70세 때 백악관에 들어갔다. 두 번째 고령은 해리슨이다. 그는 68세로 대통령이 됐다.
최연소 대통령은 시어도어 루스벨트였다. 그는 매킨리가 취임 여섯 달 만에 암살되자 42세라는 젊은 나이에 부통령으로서 대통령 자리를 승계했다. 역대 두 번째로 나이가 적었던 대통령은 43세에 백악관에 들어간 존 F 케네디(35대). 다시 말해 케네디는 선거로 당선된 최연소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다.
● 대통령이 된 부통령 = 대통령이 암살돼 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경우는 앤드루 존슨(17대)과 체스터 아서(21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등이 있다. 반면, 제럴드 포드(38대)는 전임자의 사임으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첫 부통령이다.
부통령을 지낸 뒤 선거로 대통령이 된 첫 사례는 뷰런. 두 번째는 조지 부시였다. 그는 1980년과 1984년에 각각 부통령에 당선됐다가 1988년에 대통령으로 피선됐다. 뷰런에 이어 150년 만의 일. 바버라 부시는 부자를 재선시킨 첫 여성이다.
● 키와 몸무게 = 가장 키가 컸던 대통령은 링컨. 신장이 무려 193cm에 달했다. 이는 최단신(162.5cm) 대통령인 매디슨보다 30.5cm가 더 크다.
몸무게가 가장 많이 나간 대통령은 175kg의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27대). 재임 2년 동안 무려 50kg이 불어난 그를 위해 백악관에는 성인 남자 세 명이 들어갈 수 있는 특별욕조가 설치됐다.
두 번째로 체중이 많이 나간 대통령은 125kg의 클리블랜드(22ㆍ24대). 클리블랜드는 유일하게 두 번의 임기를 수행한 대통령이다. 아서 대통령 역시 체중이 112kg이 넘어 만만치 않았다.
● 탄핵 위기 = 최초로 탄핵안이 제출돼 곤욕을 치른 대통령은 앤드루 존슨(17대)이다. 부결되긴 했으나 치명적 타격을 입고 이후 정치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이후 리처드 닉슨(37대)이 워터게이트 사건에 휘말려 탄핵위기에 몰리자 사임했고, 빌 클린턴(42대)도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 등으로 탄핵될 뻔했다가 겨우 살아 남았다.
● 엇갈린 행운과 비운 = 유권자의 유효투표에서는 뒤졌으나 선거인을 더 확보해 아슬아슬하게 이긴 대통령도 있었다. 러더퍼드 헤이스(19대)가 그 한 사례. 그는 1876년 선거에서 득표수에서는 상대후보에 크게 못 미쳤으나 단 한 명의 선거인을 더 얻어 간신히 승리했다.
클리블랜드는 1888년 선거에서 득표수에서 이겼지만 선거인수에서 뒤져 경쟁후보인 해리슨에게 백악관을 내줘야 했고, 이런 일은 2000년 선거에서 다시 일어나 부시 대통령이 논란 속에 행운을 잡았다.
● 임기중 사망 = 임기중 암살되거나 암살위기에 몰린 대통령들도 많았다. 링컨이 그 첫 번째 암살 대통령이었고, 두 번째는 제임스 가필드였다. 매킨리와 케네디도 암살로 숨졌다.
임기중 병사한 대통령으로는 윌리엄 해리슨을 비롯해 워렌 하딩(29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등을 들 수 있다.
● 전쟁영웅 대통령 = 전쟁영웅이 대통령이 된 경우는 다섯 명이 있었다. 워싱턴, 해리슨, 테일러, 그랜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34대)가 바로 그들. 하지만 성공한 대통령은 워싱턴과 아이젠하워 정도가 꼽히고 나머지는 평가가 시원찮다.
대표적 성공 케이스인 아이젠하워는 연합군총사령관으로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감행해 성공해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만큼 미국인의 존경을 받는다. 미국 대통령의 휴양지인 캠프 데이비드는 그의 손자 데이비드의 이름을 딴 것이다.
● 기타 = 이밖에 20세기에 태어난 첫 대통령은 케네디. 그는 첫 가톨릭 신자 대통령이기도 하다.
린든 존슨(36대)은 베트남전을 시작했다가 패배했다. 이로써 그는 전쟁에서 진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후임 닉슨 대통령은 1973년에 베트남전 휴전협정에 서명해 10년 가까이 끌어오던 전쟁을 굴욕적으로 마감했다.
선거에서 사상 최다 선거인단을 확보했던 대통령은 레이건. 그는 1984년 선거에서 무려 525명을 차지해 13명에 그친 상대후보를 압도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첫 대통령은 2차대전 종전 이듬해에 태어난 클린턴이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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