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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와 탄소경제] ② 발자국에 주목하라!!

정호선

입력 : 2009.01.19 09:42|수정 : 2009.08.31 15:17


편집자주 - 석유와 석탄 등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지구온난화가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선진국들은 이제 기후변화 대응과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국가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와 기업들도 이른바 '녹색성장'에 동참하기 위한 움직임이 한창입니다.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는 독일과 영국 핀란드의 주요 사례를 통해 선진국들의 녹색성장 움직임을 살펴보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알아보는 시리즈를 연재할 계획입니다. <후원 - 언론재단·기후변화센터>

'기후변화와 탄소경제', 두번째 이야기로 제품 생산과정에서의 이산화탄소 배출총량을 표기하는 영국의 ‘탄소 발자국’제도에 대해 살펴봅니다. 

영국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은 '카본 트러스트(Carbon Trust)'를 방문했을 때, 입구부터 흥미로운 '발자국 로고'가 시선을 끌었습니다. 카본 트러스트는 '액트 온 Co2(Act on Co2)' 프로젝트로 유명한 영국의 기후변화 대응 민간기관. 상품의 원료부터 생산, 폐기단계까지 이산화탄소가 어느정도 배출됐는지 소비자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이산화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s) 라벨을 제품에 붙이자는 프로젝트입니다.

      

                             ▲ 영국 런던의 '카본 트러스트' 입구

      

▲ 카본트러스트에 들어서자 '이산화탄소 저감 캠페인'에 참여하는 많은 기업체들의 로고를 전시해놓은 벽면이 눈길을 끌었다.

'카본트러스트'는 2001년에 영국 정부에 의해 독립법인으로 설립됐습니다. 기후변화 위기 문제를 단순히 공허한 구호를 외치는 것에서 접근하지 않고  실제 소비자들과 기업의 행동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이 기관의 목적입니다.  제품 생산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가 발생되는지 명기해 소비자가 제품 선택의 기준으로 삼을수 있도록 하고, 중량에 맞는 적정 배출량을 정해 업체가 자발적으로 탄소배출을 줄일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이산화탄소와 발자국,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사람이 삶을 살면서 발자국 흔적을 남기듯 이산화탄소 또한 제품의 생산활동의 결과로 발생해 세상에 남긴 것이기 때문에 발자국을 상징적으로 택했다고 합니다.

현재 이 캠페인 취지에 찬성하는 영국 내 많은 브랜드가 탄소(Carbon)의 영문 첫 글자 'C'자를 붙인 탄소발자국 라벨을 물건 표면에 붙이고 있습니다.

      

▲ 제품 표면에 생산단계에서 판매까지 360g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했음을 알려주는 표기를 부착한 오렌지주스와 전구 등의 소비재들

20개 회사 75개 제품에 달한다는데요. 예를 들어 감자칩 스낵인 워커스 크리스프는 '탄소 발자국 75g', 부츠 오가닉 샴푸는 '탄소 발자국 148g', 과일 음료인 이노센트 스무디는 '탄소 발자국 294g'이라고 각각 제품에 표기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그만큼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했다는 뜻이지요. 

샴푸와 화장품 등 미용용품 브랜드 부츠(Boots), 의류업체인 컨티넨탈 클로딩(Continental Clothing), 음료업체 펩시 등도 모두 참여업체들입니다. 컨티넨탈 클로딩의 경우 염색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줄여서 과거 남자 흰색티셔츠 1벌 생산에서 6.5kg의 CO2가 나왔었는데 공정을 바꿔 90%나 줄이는 획기적인 성과를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제조업 뿐만이 아닙니다. HBOS는 영국 국민 5명 가운데 2명이 고객인 가장 큰 금융기관 중 하나. 이곳은 효율높은 에너지 전구를 사용하고 빌딩 에너지효율을 높이고 ATM 거래 늘리는 등의 소소한 듯 보이지만 세심한 방법으로 탄소배출을 줄이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영국의 대표 유통업체인 테스코(TESCO)의 참여는 영국 소비자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테스코는 13개국에서 무려 44만명을 고용하고 있는데, 전세계에서 일주일에 무려 3천만명이 이용하는 만큼 파급효과는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협력사와 납품업체에 이산화탄소 저감 운동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고, 그런 제품들을 앞장서 알리는 과정에서 수많은 소비자들은 '탄소를 줄이는 문제'를 일상생활에 가깝게 인지하게 되기 때문이죠.

테리 레히 테스코 CEO는 "녹색운동은 반드시 소비 상에서 대규모로 이뤄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 소비자들에게 정보와 가격의 장벽을 모두 없애 바른 선택을 할수 있어야 한다" 고 밝히고 있습니다. 

테스코가 여론조사를 해본 결과 소비자들은 기후변화 문제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데 관심이 있지만 어떻게 동참해야 할지 정보가 부족하고, 개개인의 미세한 변화가 과연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불확실한 심리상태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테스코가 감자칩, 전구, 세제, 오렌지 주스 4가지로 처음 사업을 시작했던 계기가 바로 이것입니다. (테스코의 국내 진출 유통업체 '홈플러스'에서도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중입니다) 

기업들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기대치 못했던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감자칩 회사 워커스 크리스프의 경우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표기하기 위해 조사를 벌이다가 불필요한 탄소 배출을 줄일수 있는 공정을 조정해 탄소배출량을 3분의 1이나 줄였다고 합니다.

크리스프의 원료인 감자를 생산하는 농가는 납품하는 감자 중량을 불리기 위해 감자의 수분 함량을 늘리는 방법을 통상 쓴다고 합니다(소에 물을 먹이는 것과 비슷하죠?^^) 그래서 감자를 인공적으로 수분을 공급하는 보관하곤 했는데 이 과정에서 다량의 에너지가 사용되고 이산화탄소가 상당량 배출됩니다.  또 수분을 많이 함유한 감자는 얇게 잘라 튀길 때 튀기는 시간이 더 많이 들고, 이산화탄소를 10% 정도 더 많이 배출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때문에 카본 트러스트는 수분이 적은 감자를 생산하는 농가에 보상해주는 방식으로 수분 첨가 과정을 없애면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최대 9천200t 줄이고, 120만 파운드를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는 '윈-윈 전략'을 제시하게 됐던 것입니다. 

이완 머레이 카본트러스트 매니저는 "아직은 초기단계이지만 이미 영국 소비자들은 탄소발자국 표시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며 "앞으로 좀 더 많은 기업들이 이 탄소발자국 캠페인에 동참할 것이고, 소비자들은 슈퍼마켓에서 탄소발자국이 적은 제품을 골라서 구매하게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 프로젝트 담당 이사 데이비드 빈센트 박사는 "소비재를 기반으로 탄소배출을 분석하는 시도는 정부나 기업체에 동시에 저탄소 경제로 가는 매우 강력한 수단을 제공할 수 있다(The consumption-based approach to analysing carbon emissions has the potential to be a powerful tool for both government and business in the drive to a low carbon economy)"고 소비자 입장에서 접근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소비자들의 행동변화를 유도하는 재미난 움직임도 있습니다. 탄소저감에 동참하는 세제 표면에 보니 이런 문구도 있더군요. "40도에서 세탁하는 것보다 30도에서 세탁하면 한번 빨래할때마다 160그램의 이산화탄소를 줄일수 있습니다(help to reduce this footprint. Washing at 30'c rather than 40'c saves 160g CO2 per wash)" 라고요.  즉 탄소 배출 저감이 거창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소비자들이 행동을 조금만 바꿔도 참여할 수 있다는 충실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영국정부가 2003년 에너지 백서에서 205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60%까지 줄이겠다는 공격적 목표치를 제시한 것도 이 같은 일반 소비자들의 광범위한 참여가 기반이 되야 가능한 얘깁니다.

      

 ▲ 국내 탄소발자국에 해당하는 로고.  일종의 '탄소성적표기'라고 할 수 있음. 설명은 '에코 워커' 블로그 참조

국내 움직임은 어떨까요.

영국 것을 벤치마킹한 시도가 진행중입니다. 

제품의 포장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명시하는 '탄소성적표지제도'가 내년부터 시행돼 환경부는 내년부터 배출량을 표시하는 10개 제품(콜라, 즉석밥, 두부, 세탁기, 정수기, 보일러 등) 이 시장에 나올 것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제품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공정에 투입되는 에너지, 연료, 제품에 투입되는 원자재의 종류와 양, 사용 시 쓰이는 에너지, 수송 등에 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계산됩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서서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드럼세탁기를 만든 LG전자는 사용 단계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것을 감안해 물을 가열하는 대신 스팀을 발생시켜 세탁력을 높이고 과다 헹굼을 방지하는 기술을 적용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로 했다고 합니다. 

미국도 올해 초부터 '카본 컨셔스 프로덕트 라벨(Carbon conscious product label)'이라는 이름으로 탄소 배출량에 따라 3단계로 제품에 등급을 표시하고 있고, 스웨덴은 '클라이밋 디클러레이션(Climate declaration)', 캐나다는 '카본 카운티드 카본 라벨(Carbon counted carbon label)'이라는 이름으로 탄소성적표지제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것은 꼭 거창한 개념이 아닙니다. 일반 소비자들이 일상생활에서 탄소배출을 줄이는 활동에 동참하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고, 그때서야 기후변화 어젠더는 영속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외국보다는 약간 시작이 늦었지만, 환경을 중시하는, 다음세대의 삶까지 고려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정부의 기획, 기업의 연구개발, 그리고 소비자의 참여가 우리나라에서도 활발해지길 기대해봅니다. 

  [편집자주] 지식경제부와 산업계를 취재하는 정호선 기자는 1997년에 경제지 기자로 시작해 2005년에 SBS에 입사했습니다. 좌우명인 '긍정의 힘'과 함께 오랜 경제분야 취재경험으로 차분하고 정돈된 기사로 활약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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