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부, 정 반장 정준형 기잡니다. 새해 복 많이 받고 계시는지요?
쟁점법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의 협상이 6일 극적으로 타결됐습니다만, 여야의 대치과정에서 불거진 폭력적 사태에 대한 비난 여론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無法 국회'를 방치해서는 안된다, 국회에서 폭력을 근절시켜야한다는 논조의 언론 보도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정치인과 국회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시선도 싸늘합니다.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국회에서는 싸움질만 하느냐"는 것이죠.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어느 때보다 떨어졌을지 모릅니다.
일부에서는 국회의원을 뽑을 필요가 있느냐는 비아냥 섞인 소리들까지 나옵니다.
아예 국회를 폭파시켜야한다며 욕을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특히 지난 5일 한바탕 '활극'을 벌였던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는 일부 언론매체들을 통해 국회 격투가로 낙인찍히며,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국회는, 국회의원들은 무엇입니까?
이 대목에서 기자로서 또 한 번 고민을 해보게 됩니다.
국회가 정말 국민에게 피곤하고 짜증나는 대상이 돼버렸는가?
지금의 국회는 대의정치의 기능을 상실한, 존재가치가 없는 죽은 국회인가?
지금 상황에서 국회에서 폭력을 몰아내자며 목소리를 높이는게 가장 중요한 것인가?
지금 언론들이 집중 부각시키고 있고,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국회의 물리적 충돌과 점거 농성,폭력적 행동은 국회가 가진 여러 모습의 한 단면일지 모릅니다. 많은 분들이 그 한 단면을 보고 국회를 욕하고 정치인을 욕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이 이런저런 잘못된 문제들로 지난 수 십년동안 숱하게 국민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아오다보니, 부정적인 한 단면을 끌어다가 국회를 욕해대도, 대부분의 국민들이 쉽게 공감하시는 듯 합니다.
하지만 한 단면을 보고 국회 無用론을 주장하며 국회의원들을 시정잡배 보듯이 폄하해서는 안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국회는 다른 측면에서 소중한 생명력을 갖고있는, 법치국가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국가 기구이기 때문입니다. 또 눈에 보이지않게 의정활동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선량들까지 한꺼번에 매도될 수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될 문제일 것입니다.
여기서 국회를 옹호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잘못된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구태를 되풀이한 여야 국회의원들 모두 자신들의 잘못을 겸허히 되돌아보고 철저한 반성을 해야할 것입니다.
이번에 장기 국회 파행과 물리적 충돌을 불러온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여권의 일방적 밀어붙이기, 야당의 불법적인 점거농성, 대화와 타협의 실종,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됐던 관행 등이 그 원인들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대책도 여러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국회 안에서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아예 충돌을 예방하고 봉쇄해버리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국회안에서 발생하는 폭력에 대한 처벌과 불법 점거를 일삼는 정당과 의원들에 대해 법적인 제재조치를 강화하는 것입니다.
일부 언론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입니다.
하지만 이는 한가지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시킨 나머지 소수정당이 저항할 힘을 없애버리고, 이른바 '다수결의 횡포'라는 또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법적 제제조치를 강화하자고 주장하는 일부 언론의 경우 이런 문제점에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모습입니다.
여야도 각자 아전인수식의 해법을 내놓고 있습니다. 바로 국회법 개정입니다.
한나라당은 폭력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질서문란 행위에 대한 징계를 강화하고, 국회법 외에 별도의 '국회 폭력방지 특별법'을 제정해서 의회 폭력에 대해 가중처벌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찬찬히 뜯어보면 회의장 점거 등 물리력을 동원한 야당의 법안처리 저지를 겨냥한 방안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반면 민주당은 집권 여당의 일방 처리를 제한하기 위해 한나라당과 반대로 질서유지권의 남용을 막고,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엄격히 강화하는 방향으로 국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최후의 저항수단으로 삼고있는 본회의장 점검농성 등 물리적 저항에 대한 제제 강화 문제는 쏙 빼놨습니다.
여야가 모두 향후 쟁점법안 처리 과정에서 상대방을 견제하고 자신들에 유리하도록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발상입니다.
이래서일까요, 한나라당은 여야 협상이 타결된 이후, 연일 폭력사태에 대한 야당의 책임을 강조하며, 폭력 행위를 주도한 이유로 민주당과 민노당 의원 4명에 대해 '사퇴촉구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이에맞서 민주당은 여당이 사전 의견수렴도 없이 일방적으로 법안 강행처리를 추진하는 바람에 충돌이 빚어졌는데도, 자신들의 책임은 쏙 빼버리고 야당 책임만 부각시키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대책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국회 안에서 민주적인 토론을 통한 의견수렴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 관행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다수결의 원칙과 함께 소수 정당의 의견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도 함께 마련해주는 것이 극한 대치를 막을 수 있는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해결책이 상당한 시간과 인내를 요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당장에 싸우면 처벌한다는 식의 주장이 설득력있게 보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싸우다 경찰서를 갈 경우 싸움의 원인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죄의 경중을 가리는 판단의 기준은, 누가 얼마나 때리고, 누가 얼마나 맞았느냐입니다.
다시말해 싸움에 따른 결과가 중요하지, 원인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국회는 달라야할 것입니다. 민주적 토론과 절차가 중요한 곳이지, 시정잡배들의 싸움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민주적 토론을 통해서 합리적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가장 기본이 되는 바탕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이런 민주적 토론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이른바 '목소리 큰 놈이 장땡'이라는 인식이 한국인의 DNA 속에 깊숙이 심어져있습니다.
파국으로 치닫기 직전 여야는 막판 협상을 통해 미봉책이나마 합의점을 찾았고, 7일부터는 상임위원회가 가동되면서 국회가 빠른속도로 제 자리를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야의 합의가 어설프게 봉합된 상황에서, 2월 임시국회에서는 쟁점법안 처리를 둘러싸고 더욱 극심한 대치를 벌이게 될 것이라는 예측들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건강한 생명력으로 스스로 자연치유하는 능력을 가진, 살아있는 국회의 모습을 기대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기대가 자꾸 작아지는 것은 왜일까요?
2월 국회에서도 아귀다툼만이 난무하는 파괴적 국회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국민은 국회와 정치인에 대해 희망과 기대를 접어버릴지 모릅니다.
그 순간 국회는 살아있는 국회가 아닌, 죽은 국회가 될 것입니다.
이제부터가 중요할 것입니다. 여야 모두 자신들의 지지층만을 바라보지 말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할 것입니다.
![]() |
[편집자주] 90년대 SBS 사회부의 민완기자였던 정준형 기자는 법조팀과 경제부 등을 거쳐, 사회부 사건팀을 이끄는 시경 캡을 역임한 뒤 지금은 정치부 야당팀의 현장반장으로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때론 거칠면서도 정이 듬뿍 넘치는 인간미가 담긴 뜨끈뜨끈한 기사들을 보내오고 있습니다.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