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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박 반장] 'All or Nothing'의 끝은?

박병일

입력 : 2009.01.04 14:04|수정 : 2009.01.04 14:05


정치부 박병일 기자입니다.

 야당의 본회의장 점거로 여야의 극한 대치가 시작된 지 오늘로 열흘째입니다. 어제 (3일)는 국회 사무처의 강제 해산 조치가 시작되면서 민주당 당직자들과의 극한 충돌도 벌어졌습니다. 지난 연말 여야의 대표가 모여서 꼬인 정국을 대화로 풀어보겠다고 공언한지 사흘도 안 돼 대화의 통로는 완전히 막혀버렸고, 결국 충돌 상황까지 벌어지게 됐습니다. 어쩌면 어제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음에도 피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생긴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All or Nothing 즉 '전부 아니면 말고' 식의 여야의 태도가 불러온 필연적 결과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방송법과 한미 FTA 비준 동의안, 그리고 금산분리완화 관련 법안 등 이른바 쟁점 법안의 처리 문제를 둘러싼 여야의 현격한 입장차가 이번 ‘법안 전쟁’의 핵심입니다. 여야는 그동안 수차례 원내대표 협상을 벌였지만 입장차를 좁히는데 끝내 실패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입장차를 좁히기를 거부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겁니다.

지난 12월 30일, 여야 원내 대표간 협상이 끝내 결렬됐습니다. 여야의 정면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다음날인 12월 31일 여야 당 대표가 만나 대화재개에 합의했습니다. 사실상 여야가 의견을 좁힐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31일의 회동은 민주당 쪽에서 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기자들 중에 그 이후에 이어진 여야 원내대표 협상이 성공할 것으로 예측한 기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좁혀질 수 없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인데, 기자들의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지난 12월 31일 협상을 재개한 여야 원내대표들은 자유선진당 권선택 원내대표가 양측을 오가면서 그동안 의사 타진을 했던 내용을 토대로 이른바 잠정 절충안을 만들었습니다. 가합의안이냐? 잠정 타협안이냐? 논란이 많았지만 양당 의원들의 내부 추인을 받은 뒤에 합의도출 여부가 결정되는 형식이었던 만큼 잠정 절충안 정도가 맞을 겁니다. 내부 추인 전에는 절대 공개하지 말기로 했지만, 기자들 취재망에 절충안의 윤곽이 포착됐습니다. 대략 이렇습니다.


     1. 언론관련법 특히 방송법은 2월에 상정해 최대한 합의 처리하도록 노력한다.

     2. 한미 FTA 비준 동의안은 2월에 상정해 협의 처리한다.

     3. 금산분리 완화관련 법안은 이른 시일내에 합의 처리하도록 노력한다.

     4. 출총제는 2월에 상정해 협의 처리한다.

     5. 사회개혁 관련 법안은 추후에 합의 처리토록 노력한다.

     6. 여야는 각각 FTA 강행처리와 본회의장 점거에 대해 사과하고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안하기로 발표함과 동시에 민주당은 본회의장 점거를 푼다

     7. 기타 나머지 쟁점법안은 2월에 협의 처리한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모두 이런 내용을 확인해주기를 거부했습니다만, 양측의 협상 관계자들이 대략 80% 이상은 맞는다는 정도는 확인해줬습니다. 참고로 ‘합의처리’라 함은 여야의 합의가 있을 경우에만 처리할수 있다는 뜻이고, ‘협의처리’라 함은 여야가 끝내 이견을 보일 경우 국회법에 따라 표결 처리함을 의미합니다. 여당은 협의처리를 야당은 합의처리를 고집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여하튼, 이 절충안을 들여다보면서 이런 생각이 곧바로 들었습니다. 사실상 모든 쟁점법안 처리를 2월로 미룬다는 것이고, 일부 쟁점에는 ‘합의처리’하도록 ‘노력한다’고 돼 있어, 과연 이 절충안을 한나라당이 추인을 해 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연내 강행처리를 고집하며 야당을 압박해오던 한나라당이 당내 추인을 받기 힘들 정도로 너무 많이 양보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이와 관련해, “어차피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해주지 않는 이상은 쟁점법안 처리는 어렵다. 그러니 일정정도 양보가 불가피하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당 최고위원회의 조차도 이 절충안을 추인하기를 거부했습니다. 당내 의원들 사이에서는 “홍준표 원내대표가 너무 물컹해 일을 그르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또 한가지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이런 절충안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안으로 생각한다는 겁니다. 협상에 나섰던 원혜영 원내대표는 이런 절충안의 내용조차도 부인했습니다. 민주당내 강경파들의 이 절충안에 대한 반응도 한마디로 “택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협상’이나 ‘타협’을 할 경우, 어느 한쪽이 손해라고 생각되면 다른 쪽은 그만큼 이득이 됩니다. 그런데 여야의 협상에서는 어느 한쪽이 손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쪽 역시 손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양측 모두 손해라고 판단하면 협상은 타협으로 이어질수 없는 거지요.

즉,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의 내부 기류는 한마디로 “All or Nothing"의 강경기류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선 한나라당의 경우,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을 거부하고 있다고 해도, 굳이 2월까지 합의 처리하도록 양보할 필요가 있느냐는 겁니다. 국회 점거사태가 계속되면 비난 여론도 높아질 것이고, 점거 해산조치를 국회 사무처가 하는 것이니 만큼 공권력과 민주당이 대치하는 형국이 될 것인 만큼 한나라당이 굳이 법안 처리 시기나 방법을 대폭 양보하면서까지 협상을 구걸할 필요가 있냐는 겁니다.

민주당의 경우도 강경기류가 지배적입니다. 점거가 시작된 이후 야당다운 야당 모습을 보이면서 민주당의 지지도가 높아지고 있는 마당에 방송법이나 FTA, 금산분리완화 법안 등에 대해 ‘합의처리’를 명시하지 않은 협상안은 오히려 상승추세인 당 지지도에 찬물을 끼얹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점거를 하다가 강제 진압이 들어오면 ‘장렬하게’ 끌려 나가는 게 훨씬 나은 방법”이라는 강경론이 대세를 이루는 듯 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협상이 되지 않을 게 자명합니다. 상대방의 완전 항복만을 기대한채 자신이 쥐고 있는 카드는 절대 양보하지 않으려 하니까 말이죠.

그동안 직권상정에 대해 난색을 표했던 김형오 국회의장도 어제(3일)부터 본회의장 앞 로텐더 홀부터 강제 해산에 나섰습니다. 국회가 무법천지가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더 이상 대화가 성립될 것 같지 않은 만큼 강제 해산이 불가피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60여명의 경위만으로 백여명의 민주당 당직자들을 끌어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통상 해산에 나서려면 방어하는 인원수의 4배 이상의 인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일단 밖으로 끌어낸 민주당 당직자들이 다시 진입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전제하에서 최소한 열 차례 이상은 강제해산 조치를 취해야 해산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한나라당은 철저하게 뒷짐을 쥐고 있습니다. 국회의장이 85개 쟁점 법안 전체를 강행처리해준다고 한다면 여론의 비난도 감수하고 강제해산을 돕겠다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여야가 직접 격돌함으로써 일게 될 한나라당에 대한 비난 여론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결국, 여야의 대치 그리고 국회 사무처와 민주당 당직자들 간의 대치는 장기전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돼 버렸습니다. 남은 돌파구는 결국 대화와 타협 뿐입니다. 이미 수 십 차례 협상을 통해서 All or Nothing 식 협상 자세로는 아무런 소득도 거둘 수 없거니와 극한 충돌을 반복하는 악순환만 계속될 뿐입니다.

극한 대치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어느 쪽이건 강경파들이 득세하기 마련입니다. 대치에 이은 충돌이 계속되고 부상자가 속출하고 더 이상 싸울 힘마저 없을 만큼 소모전이 진행된 이후에야 온건파들의 목소리가 비로소 힘을 얻기 시작하게 됩니다. 어제의 격한 충돌 이후 오늘(4일) 여야는 상대를 비난하며 대화를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날이 선 대화 촉구였습니다. 아직까지는 강경기류가 식지 않은 분위기입니다. 따라서, 국회의 극한 대치나 충돌 상황은 최소한 이번 주까지 아니 그 이상도 계속될 수 있습니다. 여든 야든, ‘All or Nothing‘라는 고집을 꺾지 않는 한 말이죠.

 

[편집자주] 10년전 '출동 코끼리 기자' 또 '박병일 기자의 현장출동!' 등에서 맹렬하고 거침없는 시사고발 취재로 이름을 날렸던 박병일 기자는 현재 차장이 되어 정치부 여당팀의 현장팀장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에 이제는 연륜까지 더해진 깊이있는 정치 기사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