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한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의 운명을 쥐고 있는 것은 다가올 위험에 대한 각국 정부의 정책 대응입니다. 언론의 특성때문에 "2009년 말에 세계 경제가 완만하게 회복할 것" 이라고 결론만 보도하고 있지만 이런 진단을 하고 있는 IMF(국제통화기금)이나 OECD, World Bank 모두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의 재정지출 등 정책대응과 정책공조가 잘 이뤄질 경우' 라는 전제를 달고 있습니다. 그렇지않다면 올해 말에 대단히 완만하게라도 회복되기 어렵다는 뜻이겠죠.
그럼 우리 정부의 정책대응 기조는 어떤 것일까요? 이걸 살펴보기 전에 간략하게라도 1930년대 이후 경제이론과 주류 정책의 변화를 설명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경제정책에 대한 논의를 할 때 이론적 토대보다는 '이념적' 입장에 따른 '정치적 구호'로 논쟁을 할 때가 많기 때문에 지금 세계적으로 합의를 이루고 있는 정책적 토대가 무엇인지를 짚어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요즘 자주 거론되는 대공황은 1929년 주가폭락에서 시작돼 대략 1940년 초까지 이어진 경기불황기를 말합니다. 1930년대 초 대공황이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경제학자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하는 지 조차 몰랐는데 이때 케인즈가 '일반이론' 을 통해 문제는 '총수요(aggregate demand)부족'에 있고 시장에서 수요가 충족되지 못하는 '시장실패'가 일어날 경우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려 경제 내에서 물건을 사주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주장했죠. 이를 정책을 받아들인 사람이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고 '뉴딜' 정책이 탄생하게 된 배경입니다.
이후 1970년대까지는 케인지언(케인즈 경제학을 추종하는 학자들)의 전성시대였습니다. 케인지언의 이론은 정책으로 반영됐고, 중산층이 회복돼 '잘 먹고 잘 사는' 황금기가 됐죠. 만약 케인즈의 이론이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사회주의가 훨씬 더 위력을 발휘했을 것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일부에서 약간 오해를 하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케인즈 이론의 핵심은 '시장기능은 최대한 존중하지만 실패가 생길 수 있고 이럴 때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 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70년 오일쇼크가 닥치고 케인즈 이론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실업률과 물가가 동시에 오르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케인지언들이 당황하기 시작했죠. 이때 소수이론으로 등장한 것이 시카고 대학 프리드만 교수가 이끄는 시카고 학파가 중심이 된 '통화주의자' 들입니다. 정부개입은 최소화하고 통화량 조절을 통해 인플레이션 없는 성장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이론가들입니다. 소수였던 이들은 프리드만과 뷰캐넌이 잇따라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던 것처럼 다수이론으로 떠올랐고 로버트 멘델 같은 '공급주의 경제학'과 접목돼 영국의 대처-미국의 레이건 정부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어주고 경제성장을 이끄는 시대를 열게 됩니다.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장한 '부유층의 세금을 깍아주면 이들이 소비를 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고 결국 서민층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이른바 'Trickle down' 정책이나 래퍼곡선도 1980년대 이들이 만든 이론이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이들 이론의 핵심은 '정부는 문제의 출발점이고 모든 것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략하게 설명하면 여기에 금융자유주의까지를 합치면 바로 '신자유주의' 이론이 되는 것이고 부시 정부까지 주류를 형성하다 '서브프라임 위기' 로 몰락하면서 힘을 잃게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경제학계에서는 이미 프리드만 등 '통화주의자' 들의 이론은 거의 설 땅이 줄었습니다. 각국 중앙은행이 통화주의자들이 주장하는 '통화량'이 아니라 이자율을 통해 경제성장이나 물가안정이라는 최종 목표를 달성하려는 정책을 택했고, 각국 정부는 유례없이 강도높은 개입을 통해 '모두가 케인지언' 인 시대가 됐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 역시 정부개입이라는 측면만 놓고 보면 '시장주의자'라기 보다는 '케인지언'인 셈이죠. 보수적 성향의 파이낸셜 타임즈(FT)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조차 최근 칼럼에서 프리드만과 케인즈의 싸움에서 케인즈의 승리를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만 결국 현 위기 국면은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해 최초 소비자가 되고 중앙은행이 최초 자금 대부자가 되는 시대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뭘 어떻게 개입해야 하느냐에 있겠죠. 정부가 이익집단에 휘둘려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결과를 낳는다면 '시장실패'에 이어 '정부실패'까지 가져오게 될 테니까요.
걱정스러운 점은 지난 글들에서 설명한 2009년 변수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이 '정부실패'를 가져오는 것아니냐는 것입니다. 정부에게 재량권이 많아진 지금 국면에서는 그동안 문제가 있었던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며 '중산층 회복'을 이끌 수 있는 정책을 펴야하는데 '이익집단 도움주기'에 더 주력하는 것 같다는 걱정때문입니다.
정부의 정책 대응 기조를 보면 건설경기 활성화를 통한 내수부양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2009년 한국 경제의 두 가지 변수로 제시했던 중국의 경기둔화와 가계발 복합불황 위기 가운데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가계발 복합불황을 막는데 주력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공식 통계로는 사상 최대치인 16만호에 육박하는 미분양 주택을 일부 매입하고 4대강 정비와 경인운하 등 ‘한국형 뉴딜 10대 프로젝트’를 선정해 45조원(국고14조8천억원)을 조기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지방 SOC 사업의 경우 지방 건설사를 사업에 참여하도록 배려해 부실 위험에 빠져있는 지방 건설사를 지원할 방침입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만든 분양가 상한제, 재건축 규제, 투기지역지정 등 부동산 규제는 대부분 풀면서 거품이 형성된 수도권 부동산의 가격 하락을 막는데도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또, 건설업과 부동산업에 대한 은행대출이 9월말 현재 133조 2천억원에 이르고 있고
은행권의 부동산 PF 대출금 잔액만 47조 9천억원에 이르는 현실을 감안해 정부와 한국은행이 은행의 후순위채를 매입해 건전성 우려를 덜어줘 PF 부실로 인한 건설업계의 위기가 금융권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겠다는 대책도 내놓았습니다.가계 빚으로 인한 채무상환 부담을 겪고 있는 가계를 위해서는 주택담보대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변동금리주택담보대출의 기준금리가 되는 CD 금리 상승을 억제하고 하락을 유도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부 정책 기조는 1990년 일본의 거품붕괴 당시 실패했던 일본 정부의 정책과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당시 일본의 정책기조도 부동산 가격만 안정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판단아래 부동산대출 총량규제 해제, 세금경감, 규제완화, 유동성 공급 등을 종합 처방하며 공공투자 중심의 경기활성화 대책에 매달렸습니다. 그런데도 부실의 근원인 금융과 건설업의 구조조정에는 소홀해 '잃어버린 10년’에 접어들었고 확대된 재정적자는 아직까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시장과 건설업 활성화 대책은 결국은 물건을 팔아야 사라지는 재고나 다름없는 미분양 아파트 16만호를 줄이는데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됩니다. 오히려 신도시 건설 등 추가 공급 정책은 재고를 더 쌓이게 해 부실 확산에 대한 걱정을 키우고 있습니다. 더욱이 유동성 공급과 정부의 정책 드라이브로 은행이 가계에 대한 주택담보대출과 건설부동산업에 대한 대출을 더 늘리게 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위기국면에서 중산층 가계들이 부채 조정 국면을 거치지 않고 오히려 키우게 된다면 앞으로 시장 수요가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닥칠 경우 가계발 복합불황의 위기가 현실화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건설부동산업에 대한 대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008년 6월말 현재 은행의 산업대출에서 건설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25.9%로 2001년 말 10.8%의 2배가 넘었습니다. GDP에서 건설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14%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편중된 상황인데 부실에 대한 제거 없이 대출 증가로 이어진다면 2003년~2004년 카드대란 극복 과정에서처럼 호미로 막을 수 있는 부실을 더 큰 공적 자금을 들여서 가래로 막아야 될 수도 있습니다.
[은행의 산업대출에서 건설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유인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들어 가계 대출의 원리금 상호나 구조를 선진국들처럼 20~30년으로 장기화해 금융기관의 가계대출 연체율을 축소시키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주택을 담보로 과도한 대출을 받은 사람이 개인 파산할 가능성에 대비해 사회안전망을 확충해 중산층 파산에 따른 급격한 소비 축소 가능성을 방지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금융과 건설업에 잠재하고 있는 부실을 단순히 지연시키기보다는 '외과적 수술(Surgical Strike)'을 통해 도려내 부실이 유동성 확대와 맞물려 시간이 지난 뒤 재앙이 돼 돌아오는 상황을 막아야 합니다.
하지만 정부 정책을 구체적으로 반영하는 2009년 예산에 이런 사회안전망 확충에 대한 예산이 별로 없습니다. 복지부문예산이 74조 7천억원으로 가장 많기는 하지만 대부분 법정의무지출 항목으로 새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닙니다. 반면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는 24조 7천억원으로 지난해 예산보다 16%나 늘었습니다. 저소득층 복지예산이 1조원, 청년 등 실업대책 예산이 3천억원에 불과한데 말이죠. 물론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는 부분이긴합니다만 정부가 추진하려는 사회간접자본투자는 일단 땅을 사야하기때문에 예산의 40% 가까이가 토지 소유자인 중앙거주 부자들에게 돌아가고 사업을 수주한 대형건설사들이 중소하청청업체들에게 바로 대금을 결제해 주거나 임금을 한꺼번에 주지 않기때문에 실제 내수진작 효과는 '속도전'이 이뤄질 수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새해 국정연설에서 강조한 '따뜻한 국정' 의 주요 프로젝트인 폐업하는 영세사업자를 '위기가구'로 분류해 긴급 생활비를 준다는 구상은 예산조차 확보하지 못한 실정입니다. 정부의 정책은 예산으로 반영된다는 점에서 볼 때 '중산층 회복' 과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을 빈곤층을 위한 예산 확보는 '평상시 수준'도 안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이 오해하고 있지만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에서 건설부문 예산은 10%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 90%는 복지와 사회안전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실업급여와 의료보험 등이 대부분 이때 만들어진 정책들입니다. 이를 위해 한때 부유층에게는 전쟁 중이라는 상황을 고려해도 무지막지한 70% 수준의 소득세를 부과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출범할 오바마 정부의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이자 전 재무장관이 최근 칼럼에서 밝힌 오마마의 '뉴딜' 역시 '일자리 창출' 과 '중산층 회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더군요. 사회간접자본 투자도 우리처럼 일단 토지를 사야하는 사업보다는 낡은 학교와 도로보수, 그리고 인터넷 고속망설비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미래를 생각한 사회간접투자라고 할 수 있는 거죠.
"Some argue that instead of attempting to both create jobs and invent in our long-run growth, we should focus exclusively on short-term polices that generate consumer spending.But that approach led to some of the challenges we face today--and it is that approach that we must reject if we are going to strenghen our middle class and our economy over the long run. Far from being an excuse for inaction or delay, the magnitude of the work ahead is all the more reason to begin that work"
국제통화기금(IMF)의 수석경제학자들도 최근 위기극복을 위한 정부재정정책(Fiscal Policy for the Crisis)'라는 보고서를 통해 우리 정부가 추진한 부유층 감세나 법인세는 현재 위기극복에 별 효과가 없으며 즉시 '생계형 소비'를 해야하는 중산층 이하 서민층에 대한 특별감세와 재정지출, 그리고 재정지출의 대폭 확대가 위기극복에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주요 선진국들은 위기를 극복하면서도 그동안 체질을 개선해 미래를 대비하는데 비해 만약 우리는 문제가 된 체질은 그대로 둔 채 시간만 벌어보는 수준의 정책에 그친다면잠시 위기를 극복하더라도 '글로벌 동반 위기'가 아니라 '우리만의 위기'가 다시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아직 시간이 있고 정책은 변할 수 있습니다. '정부실패'라는 단정보다는 2009년의 변수 가운데 하나로 분류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달라지길 기대한다는 뜻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마지막으로 대공황 시절 아픈 기억에도 불구하고 점차 머리를 들고 있는 '보호무역주의' 흐름을 짚어보고 다른 변수는 어떤 것이 있는 지 간략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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