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뉴스 > 정치

"아듀! 2008" 바람 잘 날 없었던 올해 정치권

입력 : 2008.12.31 15:45|수정 : 2008.12.31 15:45

글로벌 경제위기 한파…정부 집권초기부터 난항


올해 정치권은 대규모 지각변동의 파도에 빠졌다.

그 전면에는 2월25일 이명박정부 출범이 놓여 있다. `10년 진보정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의 중심축이 진보 진영에서 중도.보수 진영으로 이동하면서 정치권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실험무대에 설 수 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부적응과 미숙함에서 야기된 시행착오가 속출했다. 주연과 조연이 뒤바뀌면서 달라진 역할에 선뜻 적응하지 못한 탓이다. 더욱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접적 영향권에 들면서 이 같은 부적응증은 더욱 두드러졌다는 분석이다.

새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난항을 거듭했다. 정권인수위 당시에도 `아린지'로 통칭되는 영어 공교육 논란 등으로 끊임없는 구설수에 시달렸다. 정권 교체기의 성급함과 오만의 해독이 빚은 결과였고, 이명박 정부로서는 어두운 전조였던 셈이다.

새 정부는 첫 조각과 청와대 진용 구축 과정에서도 극심한 인사 잡음을 빚었다. 시중에서는 `고소영(고대.소망교회.영남)', `강부자(강남땅부자)' 내각이라는 신조어까지 떠돌 정도로 반감이 팽배했다. 실제 탕평인사보다 `네편.내편'에 치중하는 인사 독선이 없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10년 만의 정권교체가 가져온 국정 무(無)경험의 후유증은 5월 쇠고기 파문에서 극단적인 양상으로 치달았다. 한달여 간 시위대의 거리 점거와 벼랑 끝으로 내몰린 국정 장악력은 탈 이념의 `실용과 변화'를 내세운 이 대통령의 통치력에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이 대통령은 두 차례의 사과와 미국과의 재협상, 청와대 전면 개편과 3개부처 장관 경질 등을 통해 쇠고기 파문을 가까스로 수습했지만 그 후유증은 심각했다.

절반 가까운 대선 득표의 든든한 뒷 힘은 10% 중반까지 추락한 지지율로 대체됐고, 국정동력이 훼손되면서 공기업 개혁, 노사관계 개혁 등 개혁 드라이브가 줄줄이 실종되거나 후퇴했다. 한반도 대운하 포기는 새 정부의 아이콘(상징) 상실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쇠고기 파문 과정에서 드러난 뿌리깊은 보.혁간 대립.반목 구도는 국민화합이라는 쉽지 않은 명제를 남겼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절충과 조정 보다는 `보수 재집결'로 노선을 재정립 하면서 스스로 한계 속으로 빠져들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국회도 늘상 따라붙는 `정치 후진'의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제18대 국회가 출범했지만 구태에서 단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임기 개시후 82일 간이나 공전한 것이 18대 국회가 선보인 첫 작품이었다. 이후 국회는 내내 정파적 이해관계에 기반한 대립과 반목을 거듭하면서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줬다.

이에 앞선 `4.9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이 153석, 민주당이 81석을 얻어 1, 2당의 지위를 획득했으나 자유선진당, 친박연대의 부상을 감안하면 보수 진영이 개헌선에 육박하는 압승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행정부에 이어 입법부 권력도 중도.보수 세력의 차지가 된 셈이다.

종합부동산세법, 금산분리 완화 및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집단소송법, 북한인권법 등을 둘러싼 논란도 이의 직접적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좌파 때 벗겨내기'를 위한 보수 세력의 공세와 이에 맞선 진보 세력 간 갈등은 도처에서 충돌을 빚었다.

정치권은 또 총선을 전후해 분화(分化)를 거듭했다. 당 공천 분란 등을 매개로 한 이른바 새 판 짜기다.

박근혜 전 대표측 공천탈락자들을 중심으로 `친박연대', `친박 무소속연대'가 등장했고,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정치 재개를 선언하면서 충청권을 기반으로 하는 자유선진당을 창당했다. 민주당은 손학규 대표체제 구축에 반발한 이해찬 전 총리를 비롯한 친노계 일부가 탈당했고, 민주노동당은 진보신당창당으로 세력이 나눠졌다.

이 처럼 정치권은 재편됐지만 기존 행태에는 변화가 없었다는 평가다.

미국발(發)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늑장 대응으로 일관하다 뒤늦게 추경예산안 4조5천685억원을 처리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첫 정기국회 국감에선 쌀 직불금 부당 수령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정조사까지 했지만 신구(新舊) 정권의 책임 공방으로 일관하는 등 정치 공방에 치중했다.

예산안 심사는 상임위 소위 구성을 놓고 신경전을 펴다 예산안과 예산부수법안 심의가 늦어져 법정 처리시한(12월2일)을 넘기는 `위헌 상황'이 또 다시 재현됐다. 내수 진작과 경기 부양을 위해 예산안 처리가 시급하다는 데는 인식을 같이하지만 매끄럽지 못한 절충력과 정파 이기주의 등에서 헤어나지 못한 때문이다.

급기야 국회는 한미 FTA 비준안 상정을 놓고 해머까지 동원하는 극단적인 폭력 사태를 빚었다.

특히 여야는 쟁점법안의 처리를 놓고 민주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을 실력 점거하고 이에 맞서 국회의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 농성중인 야당 의원들에 대한 강제해산을 검토하는 등 세밑까지 접점없는 파국으로 치닫았다.

여야 지도부는 당내 강경파들의 목소리에 끝없이 밀리기만 할 뿐 이렇다할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한 가운데 12월30일 최종협상을 벌였으나 방송법 등 언론관련법안과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의 처리방식과 시점을 놓고 결국 쟁점을 좁히지 못한 채 결렬을 맞았다.

경제.금융 위기로 온 국민이 고통을 당하는 `혹한의 터널'에서 국회가 이처럼 민생을 외면하고 정쟁으로 일관한 데 대해선 예의 국회 무용론이 나온다. `불임국회', `식물국회'를 언제까지 지켜봐야만 하느냐는 것이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올 한해 정치권은 방향감을 잃어버리고 국정운영의 리더십도 상실한 채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면서 "한마디로 정치부재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내년부터는 소신과 신념을 갖고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틀이 마련돼야 한다"면서 "정치지도자들이 정치란 무엇인지 근본부터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SBS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