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사회

자율형 사립고③ 막연한 유토피아, 명확한 디스토피아

우상욱

입력 : 2008.12.31 15:23


여행을 간다고 가정해봅시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목적지를 정해놓고 그에 가장 합당한 길을 찾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에 가면 역사적 고적이 많고 문화 유산이 많아 선조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데다 유명한 향토 음식이 많아 식도락도 즐길 수 있다'며 목적지를 정한 뒤에 그 곳에 가기 가장 좋은 경로를 모색합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 보다는 어느 길이 잘 닦여있고 차선도 많고, 고급 외제차도 많이 다니니 그 길로 가면 분명 좋은 곳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쪽으로 가자'고 나선다면 뭐라고 대응하시겠습니까? '그 길로 가면 어디가 나오는지를 먼저 알아야지'하고 면박을 주시겠죠.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후자와 같은 논리로 밀어붙이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자율형 사립고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고등학교에 이런저런 자율성을 허용해 경쟁을 부추기면 더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추진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런데 그 '양질의 교육 서비스'란 어떤 것이죠? 자율형 사립고를 많이 만들어 경쟁을 시키면, 각 학교가 길만 보고 달리는 타조와 같은 '지식형 인간' 대신 하늘 높은 곳에서 전체 지형을 조망하는 독수리 타입의 '지혜형 인간'을 키워낼 수 있다는 뜻인가요? 나만의 영달이 아니라 내 동료, 이웃, 우리 민족이 함께 번영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는 '민주시민의 소양'을 충분히 갖춰준다는 의미인가요? 생활의 수단이 될 지식을 체득하는 교육에만 몰아넣기 보다 예체능 등의 취미 생활을 통해 삶을 더욱 풍성하게 꾸밀 수 있는 학창 생활을 만들어준다는 이야기인가요?

자율형 사립고 정책에는 궁극적으로 우리 교육이 지향하는 목표가 무엇이고 자율형 사립고가 그 목표를 이루는데 어떤 식으로 도움을 줄 지에 대한 설명은 아예 없습니다. 그냥 학교간 경쟁을 하면 좋아질 것이라는 주장 뿐입니다. 자율형 사립고가 교육의 유토피아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유토피아가 어떤 모습인지는 전혀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눈에는 빛으로 충만해야할 유토피아는 안개에 가려진 채 전혀 알아볼 수 없지만 그 그림자라 할 수 있는 디스토피아의 세계는 너무나 분명하고 선명하게 보이니 어쩌죠? 자율형 사립고들이 서로 더 좋은 학생을 선발하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은 자명합니다. 갖가지 선별 방법이 동원되겠죠. 토플, 토익 점수일 수도 있고 경시대회 수상 경력일 수도 있고, 전국 단위 학력진단 평가 성적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지필고사를 보는 것 외에는 어떤 방식이든 가능하니까요. 앞서 쓴 글에서도 얘기했듯이 시간이 지나면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 자율형 사립고들 사이에도 서열이 형성될 것입니다. 그럼 지금 대학 입시에서 보는 것과 같은 사교육 광풍이나 국·영·수 편중 현상, 내신 성적을 올리기 위한 학부모들의 치맛바람, 각종 경시대회 응시 열기 등이 고교 입시에도 넘쳐날 것이고 1류 고교를 가기 위한 재수, 삼수생도 생길 것입니다. 중학교 학창생활은 내신을 올리기 위한 피 터지는 경쟁으로 점철되고 친구를 사귀고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간들은 뒷전으로 밀릴 수 밖에 없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해 천만원 가까운 학비를 대기 힘든 부모들은 자녀들의 자율형 사립고 수업료를 마련하기 위해 부업 전선에 내몰릴지도 모르죠. 20%의 사회적배려 대상자 전형으로 입학한다 하더라도 이들은 친구들이 일상적으로 받는 과외를 들어볼, 누구나 가는 학원에 등록할 경제적 능력이 없다보니 학교안에서의 경쟁에서 밀리게 되고 결국 한 학교에 뚜렷이 나눠지는 두 계층을 이루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런 끔직한 지옥도가 제 눈에만 보이는 것일까요?

오래전에 썼던 글에도 상술했듯이 자본주의 사회가 계층간 고착화로 썩거나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가장 확고한 대들보는 교육의 기회균등입니다. 좀 가난하게 태어났더라도 국민 의무 교육을 통해 잘사는 계층의 아이들과 비슷한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태생적 계층에서 벗어나 더 나은 환경을 획득할 수 있다는 희망이 불평등한 사회를 지탱해주는 지주입니다. 특히 교육열이 높은 우리 사회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그 자신도 그리기 어려운 막연한 희망을 내세워 너무나 명확한 부작용들은 애써 외면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이런 버팀목에 도끼질을 하는 것 아닐까요?

다시 한번 정권과 교육 당국에 간곡히 부탁합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은 그만큼 신중하게 계획을 세우고 조심해서 실행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일부 계층이 아니라 우리 전체 학생과 학부모, 국민들이 원하는 교육의 상이 무엇인지를 먼저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육이 어떠한 모습을 가져야할 지, 무엇을 가르쳐할 지. 시민들에게 무슨 소양을 키워줘야할 지 명확히 청사진을 그린 뒤에 그곳으로 가기 위한 방법과 경로를 긴 안목에서, 더 많은 국민들의 동의를 받아 정해 나갑시다. 이명박 대통령이 강조한 대로 교육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편집자주] '보도국의 신사'로 불리는 우상욱 기자는 1995년 SBS 공채로 입사해 사회, 정치,경제부를 두루 거치며 지금은 사회1부의 교육담당 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큰 교육현장의 이야기를 차분하고 성실한 취재로 전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