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30일 통화옵션 거래인 키코 계약의 효력 정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임에 따라 은행권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그동안 키코에 가입했다가 환율 폭등으로 도산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들의 줄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이번 판결에 대해 "자본시장 발전에 굉장히 해가 되는 판결"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키코 가입 기업들은 남은 계약 기간에 환율 급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 관련 손실을 줄임으로써 당장 유동성 위기를 모면할 수 있게 됐다.
◇기업, 유동성 위기 부담 덜어
이번 판결은 외견상 은행과 기업의 입장을 절충한 것으로 보인다. 키코 계약 자체가 무효 또는 취소는 아니지만, 남아있는 계약 기간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키코 가입 기업들은 소송 이전에 환율 급등에 따른 손실은 그대로 떠앉고 가지만 남은 계약 기간에 손실은 부담하지 않아도 돼 키코로 인한 유동성 위기는 넘길 수 있게 됐다.
이번에 소송을 낸 ㈜디에스엘시디의 경우 원·달러 환율 1,300원대를 기준으로 매월 약 70억원의 비용을 부담했는데, 이제 그 부담은 사라진 것이다.
다른 키코 가입 기업들도 은행에 계약 해지 의사를 표시하거나 법원에 효력 정지 가처분 소송을 낼 경우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사실상 법원이 기업들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소송을 진행한 법무법인 로고스 측은 "이번 소송은 충분한 주장과 입증을 한다면 키코 효력을 정지할 수 있음을 인정했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청중앙회에 따르면 중앙회에 키코 피해 사례를 신고한 170여개 기업의 총 피해액은 원.달러 환율 1천300원을 기준으로 약 1조8천억원에 달하고, 이 가운데 앞으로 은행에 갚아야 할 돈만 1조1천~1조2천억원 정도가 남아있는 상태다.
◇은행권 "자본시장 걸림돌 판결"
은행들은 당장 비상이 걸렸다. 이번 소송의 대상이 된 SC제일은행은 "법원으로부터 정식 통보받은 것이 없다"며 "통보를 받으면 내부적으로 협의나 검토해서 대응책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을 아꼈다.
하지만, 은행들에 상당히 불리한 판결이라며 앞으로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계약 체결 이후 옵션 가치 산정의 기초가 됐던 원·달러 환율의 내재 변동성이 급격히 커져 계약 체결 당시의 내재 변동성을 기초로 한 계약 조건은 더 합리성을 갖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즉 환율이 계약 당시 예상과 달리 급등해 기업들의 큰 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에 더는 계약이 효력을 갖기 어렵다는 취지다.
시중은행의 한 파생상품 담당 부장은 "이번 소송으로 금융상품 거래 자체가 안될 수 있다"며 "자본시장 발전에 굉장히 해가 되는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모든 금융거래는 주가, 환율 등 현재 가격을 기준으로 해서 이뤄지는데, 취급 당시의 가치는 무시하고 나중에 바뀐다고 해서 계약을 무효로 한다면 금융 계약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기업들도 당장은 좋을 수 있지만, 앞으로 은행들이 환위험을 헤지할 수있는 파생상품 취급을 꺼리면 오히려 불리해질 것"이라고도 했다.
이번 판결에 따라 기업이 남은 계약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은행도 헤지를 위해 거래한 거래 상대방에게 대신 대지급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 은행들은 당장 손해를 본다.
즉 기업이 보게 될 손실만큼 은행이 고스란히 대신 져야 하는 것이다.
모 은행 관계자는 "이번 가처분 결정만으로는 은행들이 불리해졌다고 보기 어렵고 하나의 케이스에 대해 법원이 기업의 주장을 일정 부분에 대해 인정해줬다는 의미에 불과하다"며 "은행들은 본안소송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더 촉각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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