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쟁점 법안의 연내 처리에 대한 '여론 눈치보기'가 한창이다.
여야간 대화가 단절, 협의 처리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있는 만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여론에 의지한 '독자 행보'를 이어가는 모양새다.
문제는 각자 여론에 대한 독해가 다르다는 점이다. '입법 전쟁'이라 불리는 이전투구 속에서 한나라당은 '강행 처리'에, 민주당은 '강력 저지'에 여론의 무게가 실려있다고 각각 판단하고 있어 보인다.
◇한나라당 = 한나라당의 '여론 보기'는 두가지 측면에서 이뤄지고 있다.
하나는 야당과의 협상이 완전히 물건너갔을 경우 '85개 중점 법안'의 단독 처리에 따른 여론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야당이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는 쟁점 법안에 대한 여론의 지지 추이다.
특히 한나라당은 법안 처리 전략과 관련해 '여론의 저울질'을 이미 끝낸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권한을 빌려 법안의 강행처리에 나설 경우나 거꾸로 법안 처리에 한걸음 물러설 경우 모두 여론의 역풍이 예상된다.
한 핵심당직자는 29일 "법안을 강행처리할 경우 다수의 유혹을 버리지 못했다는 비난에 직면할 것이고, 법안 처리를 하지 못할 경우 무능하고 무기력한 집권여당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즉 어떤 선택을 하든 비난의 화살을 감수할 수밖에 없으므로 불가피하게 전략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다. 그리고 그 계산의 결과는 '강행 처리'쪽으로 좁혀지고 있다.
'172석의 힘'을 앞세운 강행 처리로 당장 여론이 불리해지더라도 이명박 정부의 안정적 국정운영, 국정주도권 회복, 정권 교체에 따른 정책 전환 등이라는 긍정적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박희태 대표가 최근 "만약 우리가 법안을 처리하지 않으면 도대체 어떤 여당이냐고 오히려 욕 먹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동시에 한나라당으로서는 강행 처리가 '거여(巨與)의 독주, 오만'으로 비쳐지지 않기 위한 명분 쌓기 및 홍보전에도 주력하고 있다.
법안 처리를 위한 'D-데이'가 임박한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야당과 대화하고 협의한다"고 거듭 언급하고 있는 점도 그 일환이다.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강행처리'라는 말을 입밖에 내지 않고 있다. 민주당이 각 상임위 회의장을 점거하고 있는 만큼 국회법 절차에 따라 법안 처리에 나선다는 점을 알리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와 함께 한나라당은 쟁점 법안에 대한 여론 읽기에도 분주하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최근 "사회개혁 법안 가운데 여론 지지도가 높은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밝힌데 따른 것이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금산분리 완화,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등을 포함한 경제살리기 법안에 대해서는 여론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읽고 있다.
홍 원내대표는 지난 26일 긴급 중진회의에서 "사이버모욕죄, 경제살리기 법안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높은 만큼 과감히 밀어붙여도 된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였다.
◇ 민주당 = 민주당은 일단 한나라당과의 '입법 전쟁'에서 '강경 모드'로 나가는 게 득이 될 것이란 계산이다.
국회 본회의장을 선점한 만큼 이를 통해 '반(反) 민주 악법'으로 규정한 법안들을 저지할 경우 선명.견제 야당의 위상을 과시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 설사 국회 경호권 발동과 의장 직권상정을 통해 한나라당이 강행처리를 하더라도 민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끌려나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여론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섣불리 대여(對與)협상에 나서다가 '반민주 악법' 일부라도 저지하는데 실패할 경우 당의 존립 기반인 전통적인 지지세력마저 잃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을 일방 상정했을 때 물리력까지 동원해 강력하게 대응하면서 '야성(野性)이 부족하다'는 당안팎의 비판과 당내 노선 갈등이 잠재우는 효과를 거뒀다.
이로 인해 지난 26일부터 시작된 본회의장 점거 농성에는 소속 의원 대부분이 동참하고 있는 상태다.
이는 지난 6월 촛불정국 때 장외집회에 참여한 의원들이 현재의 절반 수준인 30∼40명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변화다.
특히 당이 정세균 대표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전통적 지지세력의 결집도 가시화되고 있다.
22∼23일 진행된 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은 1주일 전에 비해 5.4%포인트 상승한 24.2%의 지지율을 기록, 정 대표 체제가 출범한 이후 최고치를 보였다.
민주당은 만일 한나라당의 연내 법안처리 방침을 꺾을 경우에는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면서 4월 재보궐 선거도 유리하게 풀어갈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제 1야당이 물리력까지 동원해 국회를 전면 보이콧한 데 대해서는 취지야 어떻든간에 '국정 발목잡기'란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내심 하고 있다.
또 한나라당이 미디어관련 법안과 집시법 개정안, 사이버모욕죄 법안 등을 강행처리한 다음에는 야당으로서 불리한 주변여건이 조성되면서 '여론전'에서도 쉽지 않은 국면이 펼쳐질 수 있다는 데 대해서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