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극한 대치가 계속되는 국회가 대화와 타협을 포기한 채 결국 정면 충돌로 치닫고 있습니다. 어제(26일) 아침 8시 50분, 민주당이 본회의장을 기습 점거하고 한나라당이 강행 처리를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여야 협상을 통한 국회 정상화의 가능성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민주당이 본회의장을 기습 점거한 이유는 여당의 기습적인 법안 처리를 막겠다는 겁니다. 국회법에 따르면 법안의 상정과 처리는 의장석에만 할수 있습니다. 과거에 빈번했던 날치기 사례를 막기 위해 지난 2002년부터 국회법이 개정되면서, 여야는 단독 강행처리의 기미가 보일 때마다 의장석을 서로 먼저 점거하기 위한 전쟁을 벌여 왔습니다.
민주당의 점거 작전은 가히 전격적이었습니다. 한나라당이 허를 찔린 셈입니다. 민주당의 기습 점거를 한나라당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걸까요? 물론 예상했을 겁니다. 다만 그 시기를 가늠치 못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통상 국회의장이 법안을 직권 상정하고 강행처리 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밟아야 할 단계가 있습니다. 직권 상정에 앞서 국회의장은 모년 모월 모시까지 여야가 쟁점 법안에 대한 심사를 끝마치라고 여당과 야당에게 통보하게 됩니다. 이를 심사기일 지정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통상 여야의 본회의장 점거 시도는 심사기일을 지정한 이후에 진행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민주당은 아예 국회의장이 심사기일도 지정하기 전에 본회의장을 점거해 버린 것이고,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심사기일조차 지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본회의장 점거에 나설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겁니다. 다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국회 사무처에 본회의장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해 달라는 요청만 해 놨을 뿐이었습니다. 민주당은 바로 이런 상황을 역이용해, 기습 점거 하루 전날, 민주당 의원 두 명이 본회의장에 몰래 들어간 뒤 (들어간 경위를 놓고 열쇠 전문가를 동원했느니 아니니 하는 여야 공방도 이어지고 있죠) 다음날 문을 열어 민주당 의원들을 진입시켰던 겁니다.
자, 그렇다면 앞으로 진행될 수 있는 상황을 알아보겠습니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변수는 역시 김형오 국회의장의 판단입니다. 김 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하고 직권상정을 않는 한 한나라당은 어쩔 수 없습니다. 김 의장이 일정 일시를 심사기일로 지정한 뒤 그때까지 여야 협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 경호권을 발동하게 될 겁니다. 경위들이 들어가서 민주당 의원들을 억지로 끌어내려 할 겁니다. 하지만, 경위들이 의원들을 끌어내기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함께 들어가 끌어낼 수 있겠지만 그러면 지난 17대 국회에서 탄핵안 처리 때와 같은 역풍을 맞게 될 수 있다는 점이 한나라당의 고민 가운데 하나입니다.
김형오 의장은 지난번 여야 협상을 중재하면서 경제 법안이나 예산 부수 법안은 연내에 처리하고 나머지 쟁점 법안들은 내년으로 돌려 여야가 협의해 처리하는 중재안을 제시한바 있습니다. 한나라당은 김형오 의장이 직권상정을 해주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김 의장은 정치적 부담을 고려해 직권 상정을 꺼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미디어 관련법의 경우는 직권상정을 통해 강행 처리할 경우 일부 언론들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게 될 우려가 있다는 점도 고려하고 있는 듯 합니다.
반면, 김형오 국회의장이 전격적으로 경호권 발동과 직권상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국회의 수장으로서 본회의장이 점거되는 불법 사태를 방치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여야 대치 상황을 직권 상정을 통해 조기에 종결시키겠다는 판단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다 해도 강행 처리 이후 뒤따를 후폭풍은 같을 겁니다. 김 의장이 지난 25일 직권 중재에 나선 이후 여야 협상이 별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고 민주당이 국회의장실을 점거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김 의장이 여당의 부단한 직권 상정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올해 안에 국회 본회의는 29일과 30일에 잡혀 있습니다. 만일 한나라당이 쟁점 법안의 연내 처리를 강하게 고집하고, 김형오 국회의장이 여당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게 된다면, 여야가 충돌할 시점은 29일과 30일이 될 겁니다. 그러나, 김 의장이 끝내 여당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쟁점 법안의 연내 처리는 사실상 어려워지게 됩니다. 이 다음 본회의 예정일은 1월 5일과 6일입니다. 야당의 본회의장 점거가 그때까지 계속될 경우에는 김형오 국회의장도 어떤 형태로든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역시 김형오 의장의 판단 기준은 여론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현재 여야 대치 상황에 대한 여론의 평가, 그리고 여당이 강행처리를 통해서라도 통과시키고자 하는 쟁점 법안에 대한 여론의 평가, 그리고 강행처리를 감행한 이후 뒤따를 여론의 평가 등을 들수 있습니다. 예산안을 강행처리했을 때는 경제 살리기라는 명분이 있었고, 민주당도 사실상 이를 감안해 방임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 국회의장으로서는 지금보다 판단이 매우 쉬웠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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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0년전 '출동 코끼리 기자' 또 '박병일 기자의 현장출동!' 등에서 맹렬하고 거침없는 시사고발 취재로 이름을 날렸던 박병일 기자는 현재 차장이 되어 정치부 여당팀의 현장팀장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에 이제는 연륜까지 더해진 깊이있는 정치 기사가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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