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8월 15일을 '정부수립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건국일'로 볼 것이냐를 놓고 학계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10월 말 전국 중.고교와 군부대 등에 '건국'을 강조한 책자 3만부 가량을 배포한 것으로 밝혀져 새로운 논란이 일고있다.
문화부와 건국 60주년기념사업회가 의뢰해 뉴라이트 단체인 '교과서포럼' 공동대표인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 등 7명이 공동집필한 '건국 60년 위대한 국민-새로운 꿈'은 1940년대부터 현재까지 역사를 다루고 있다.
총 208쪽 분량의 이 홍보용 책자는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대한민국의 성공적 현대사를 주로 서술하고 있다. 역대 독재정권의 문제점이나 압축 고도성장 과정에서 생긴 사회적 긴장과 민주주의의 왜곡,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자살한 전태일 사건, 1987년 6월 민주항쟁 등도 골고루 소개하고 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역시 그동안 논란을 빚어온 '건국'과 관련된 서술이다.
이 책은 "최근 '건국 60주년'이라는 명칭과 관련하여 이런저런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한 뒤 "대한민국 이전에는 국민(國民)이 아니라 신민(臣民)과 백성(百姓)이 있었을 뿐이어서 대한민국 건국 이후 사상 처음으로 이 땅에 근대적 개인(個人)이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신민과 백성은 절대군주의 통치 대상이며 주권이 없는 존재이므로 엄격한 신분제도가 사라진 때가 건국의 시점으로 맞다는 논리이다.
나아가 "임시정부는 자국의 영토를 확정하고 국민을 확보한 가운데 국제적 승인에 바탕을 둔 독립국가를 대표한 것은 아니었고 실효적 지배를 통해 국가를 운영한 적도 없다"며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의 실제 출발 기점은 1948년 8월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논리를 그대로 따른다면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밝힌 헌법 전문이 부정되는 셈이다.
이에 대해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이 책이 기술한 내용은 대한민국을 '재건'한다고 명시한 제헌 정신에 위배될 뿐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이 정부수립 당시 정권의 정통성을 주장하려고 대한민국 30년이라는 연호를 썼던 것마저 부정하는 것"이라며 "그동안 문제 되지 않았던 이런 역사를 부인하는 것은 독립운동사와 대한민국 건국을 단절시키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백영서 연세대 교수는 "역사 교과서 문제도 논쟁이 되고 있지만 정부에서 특정한 역사관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것은 1970-80년대 안보 교육을 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역사교육이나 해석의 문제는 학계의 논쟁을 거친 다음에 일반인에게 전달하는 게 순서인데 정부가 너무 서두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화부 관계자는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국민에게 우리 역사를 균형 있게 전달하고자 홍보책자를 마련했으며, 내용상으로도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고 해명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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