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대학 입시 업무를 맡고 있는 대학교육협의회가 결국 판도라의 상자를 활짝 열어 젖혔습니다. 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를 금지한 3不정책을 폐지할 뜻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사실 그동안 이 판도라의 상자는 사방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안에 있는 것들을 철저히 가둬두고 있었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만 어떻든 마지막 뚜껑마저 열어버렸다는 점에서 의미와 파장이 작지 않습니다.
박종렬 대교협 사무총장이 2010학년도 대입 전형 주요 내용을 밝히면서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하는 과정에 이 3불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기자들은 내년 대학 입시 전형도 중요하지만 이런 명목적이고 형식적인 내용들보다는 실질적인 운용사항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다시 말해 학생부 성적을 몇 % 반영하겠다는 표면적인 발표보다는 그 이면에 실질 반영비율을 대폭 줄여 내신을 무력화시키는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논술을 몇개 학교에서 실행하느냐 보다는 논술에 심화된 지식을 측정하는 문제를 내 본고사화하는 기조를 여하히 제어할 수 있느냐 등등을 더 알고 싶어했고 따라서 이런 쪽에 질문이 몰렸습니다. 이에 대해 박 총장이 내놓은 대답은 우리의 기대와 영 딴판인, 아니 어쩌면 우리의 우려에 딱 들어맞았습니다.
왜곡 논란을 피하기 위해 되도록 박 총장의 말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
- 일부 대학의 수리형 논술이 수학적인 풀이 과정과 정답을 요구하는 수학 본고사 형태의 문제라는 논란에 대해
"현재 대교협 이사회에서 결정한 논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논술 문제에 대해서는 문제시 삼고 있지 않다."(본고사형 논술에 대해 아무 제재의 뜻이 없다는 의미로 풀이됨)
- 3불정책이 현재도 사실상 무너지고 있는데 대학에 도덕적 차원의 자제만 요구하는 것이 합당한가라는 질문에
"지금 현재 고교선택제가 2010학년도에서 서울시에서 도입된다. 2012년에 가면 이 학생들이 입시를 치르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된다. 고교선택제를 도입하는 년도에 맞춰서 보면 2012년에 대입자율화는 최소 고교등급제가 무너지는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본다."(3불중 고교등급제 폐지가 2012년에 기정사실화 될 것이라는 의미로 풀이됨)
"고교등급제와 본고사를 폐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자율적으로 둬도 사회가 혼란스럽지 않은 것 아니냐는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대학들 사이에 3불의 폐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됨)
- 3불정책에 대해 대교협에서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 대학들이 공공연히 어기는데 대한 대책을 묻자
"대교협 산하에 특위 3곳에서 대학입시 방안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1월 15일에 총회가 열리는데 연구 결과를 보고할 예정이다. 1월15일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총회에서 대입전형과 관련된 논의가 될 것이라고 본다."(3불 정책을 포함해 대학 입시 방안을 폭넓게 연구하고 있고 1월15일까지 결과를 내놓겠다는 의미로 풀이됨)
==========
박 사무총장의 말을 들어보시면 대교협이 3불 정책을 유지하려고 하는지, 폐지하려는지 바로 느껴지지 않습니까? 박 총장은 이런 대답을 하면서 몇 차례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교협의 실질적인 운영을 총괄하는 사무총장이 공식적인 기자회견 자리에서 행한 발언이라는 점에서 대교협의 전체 의견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대교협 내의 전반적인 뜻이 이런 방향으로 모아지고 있다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3불 정책을 유지해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이미 여러차례 거론됐고 대단히 본질적이고 원론적인 논쟁인 만큼 여기서 다시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당장 수험생들이 맞닥뜨려야 하는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부분을 짚어보죠.
대교협은 2010년 대입 전형에서도 '3불 정책'을 유지한다고 못박았습니다. 아직 3불을 폐지할 사회적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는 이유입니다. 또 매번 3불과 관련해 결정된 바가 없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위에서 박종렬 사무총장이 드러냈듯이 속내는 이미 폐지 불가피쪽으로 기울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일선 대학들이 3불 금지를 지키지 않는 행위를 하더라도 이를 제재할 의지나 방법을 전혀 갖고 있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명목적으로 발표하는 대학입시 요강과 실질적으로 운용되는 요강이 천지차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파열음이 구체적으로 터져나온 것이 고려대 수시 1차 전형 사태이고 최근 유명 사립대의 본고사형 논술 문제입니다. 게다가 대교협이 3불에 대해 상술한 태도를 밝힌 만큼 내년 입시는 비슷한 사례가 더 많이, 더욱 심각하게 나타날 게 뻔합니다. 올해 겪었던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이 내년에는 더 극심해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대교협과 각 대학들은 정정당당해져야 합니다. 도저히 3불이 현실에 맞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면 3불 폐지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할 대안을 제시하고 겉과 속이 같은 입시 요강을 내놔야 합니다. 공교육 정상화를 헤치지 않을 기준을 마련하고 그것만이라도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국민들이 대학의 '눈가리고 아웅'에 속아줄 것이라고 기대하시는지요.
![]() |
[편집자주] '보도국의 신사'로 불리는 우상욱 기자는 1995년 SBS 공채로 입사해 사회, 정치,경제부를 두루 거치며 지금은 사회1부의 교육담당 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큰 교육현장의 이야기를 차분하고 성실한 취재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